캄보디아 - 앙코르 와트(Angkor Wat)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 서북쪽에 위치한 씨엠립(Siem reap) 주변에는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수리야바르만 2세는 힌두교 비슈누 신에게 봉헌하고자 앙코르와트를 축조합니다.
당시 이곳은 세계적인 대도시였고
수많은 인원과 기술을 동원하여 이 거대한 사원을 37년 만에 완성했지요.
오천만 톤에 이르는 석재는 여기서 30km 떨어진 산에서 코끼리와 뗏목으로 운반했대요.
그러나 제국은 무리한 원정과 사원 건설로 급격히 쇠퇴해 영토를 점차 상실하다가
급기야 1431년 태국의 아유타야 왕조에 의해 수도를 점령 당해 멸망합니다.
학자 본인은 그다음 해 1861년에 라오스에서 탐험활동을 하다 말라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표본 채집을 위해 1년 넘게 밀림을 탐험하다 낚은 대어인데 이렇게 생을 마감하다니
하지만 1954년 프랑스군이 인도차이나 전쟁에 패하여 철수하면서 고고학 탐사작업은 중단되었고
사원은 다시 황폐해지기 시작했어요.
1972년부터 외부인에게 폐쇄된 이후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가
이후 유엔이 들어와 평화 유지 활동을 시작한 1992년,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됩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수수께끼를 간직한 앙코르와트의 찬란했던 영광을 마주하러
세계인들은 끊임없이 다가가고 있고요.
앙코르와트는 제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중학생 때부터 버킷리스트에 꼽았던 곳입니다.
그러다 스물여덟 살에, 그것도 다른 목적으로 캄보디아에 가게 된 김에 들르게 됐어요.
그런데 그토록 고대하던 곳에 왔는데 왜 이렇게 무덤덤한 거죠?
가슴이 두근대고 상상의 나래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마음이 그냥 차분하네요.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그동안 접한 시청각 자료 속 물체와 동일하다는 느낌 정도였어요.
원래 기대가 크면 그에 미치기 힘들죠.
처음 제 눈에 들어온 이래 십 년 넘게 관심을 쌓아 올려놔서 그런가 봐요.
여건의 문제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뭐든 너무 참거나 기다리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시간의 심술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왜곡의 여지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 뜨뜻미지근의 명백한 이유 하나가 더 있어요.
여럿의 동행인들과 스텝을 맞춰야 했던 것 말입니다.
이전 일정과 다음 일정이 정해져 있고, 현재도 같은 동선으로 일정 시간 안에 움직여야 했거든요.
여행이 아니라 그저 관광이었죠.
나의 능동성이 전혀 개입될 수 없는 것들엔 감동도 개입되기 어려운 거 아니겠어요.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도 그런 모먼트에서 자주 찾아오지 않던가요.
몇 백 년 동안 울창한 숲에 가려져있던 앙코르와트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줬던 이처럼
숨겨진 나의 성격,
숨겨진 나의 환희,
숨겨진 나의 우울을
드러내어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축하해주길 바라죠.
그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맥 말고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를 가장 관심 있어하고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본인이잖아요.
그럼에도 우리는 나보다 남을 더 의지할 때가 은근히 많죠.
나 자신의 통찰력이 먼저 필요하겠어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더 귀기울여야겠어요.
내가 그토록 갈구하는 정답들은 사실 이미 마음속에 있을 테니까요.
세상에 나온 이후 온몸으로 전쟁을 겪어야 했던 사원의 운명을 곱씹어보자면
앙코르의 돌들은 나무들이 철저한 보호막이 되어주어 고요 속에 잠들어 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진 않을까,
우리 입장에선 발견이지만 그들 입장에선 발각된 것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적당히 표현하고 적당히 입 다물고 살 줄 알아야겠어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남들이 다 내 맘 같지도 않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아직 내공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