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인 곳에 가야 했다. 객차 문이 열리자 흩어져 있는 빈자리 몇 개가 보였고 나는 정면에 바로 보이는 자리로 직진했다. 오른쪽엔 여자분, 왼쪽엔 남자분이 계셨는데 앉고 보니 그들의 겨울 외투가 양쪽에서 내 자리를 침범해온 탓에 나는 의자에 엉덩이만 걸터앉는 꼴이 됐다. 그새 다른 좌석들도 이미 주인들을 만났기에 다른 데로 옮길 수도 없었다. 이내 몸은 오른쪽으로 점점 기울어갔다. 왼쪽에서 뿜어내는 담배냄새에 서서히 밀려난 거다. 그의 검은색 패딩과 나의 흰색 코트는 닿아있었고, 나는 그 악취가 내게 스며들어올까 신경이 쓰였다. 마침내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 일어설까?
/ 한 시간 동안 서서 가게?
- 자리 안 날까?
/ 지금이 그럴 시간대니?
- 토할 것 같은데?
/ 후각은 금방 적응해. 조금만 참아.
- 숨이 막혀.
/ 그래, 우선 살고 보자.
나는 벌떡 일어나 출입문 모퉁이로 갔다. 그 즉시 들숨의 질이 달라졌다. 상쾌해졌달까. 극한에서 살짝 들어 올려주면 그것만 한 달콤함도 없다. 싫은 순간은 영원처럼 길어도 기분 좋을 땐 시간이 마구 달아나버리니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이어폰에 쉼 없이 흐르게 하고 메모장에 글을 끄적여보았다. 결과적으로 중간에 다리를 몇 번 구부렸다펴긴 했지만 괴로워지기 전에 도착했다. 조금 더 앉아있겠다고 계속 그 자세로 낑낑대고 있었으면 호흡도 가빠지고 결국 다리까지 저려왔을 테지.
내가 하는 선택들이 항상 최상의 것이면 좋겠다. 그러나 실상은 '저걸 했어야 했어, 내가 그걸 왜 했을까'하며 몇 년째 후회하고 있는 것들 투성이다. '하필' 지하철 그 자리를 골랐을 때도 그랬다. 감정 소모의 가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어코 기분에 흠집을 내고야 말았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피드백을 적당히 받아들이면서 다음으로 거침없이 나아가야 한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는 찬란한 문구를 남겨주신 사르트르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를 기억해보겠다.
또 하나의 중대 결정이 내 앞에 놓여있다. 사는 게 무미건조하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삶에 이런 스릴을 허용한 건 어쩜 격려받을 일일지도. 그런데 결정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엎치락뒤치락 정반대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마음 가는 쪽은 명확한데 과연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붙들고 따지지는 않을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 스토리를 아는 사람들은 '인생에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될 것 같냐'며 제발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한다. 그리고 한 발 물러서 있는 많은 조언가들은 그냥 받아들이라고 한다. 나는 마냥 이상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사람이라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정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양쪽 중 어디에 싸인을 할지 각각 1%씩의 여지를 남겨둔 입장에서 당분간 최대한 거리를 유지해보려 한다. 머리가 더 차가워지면 그 1프로의 향방이 쉬워질까 해서다. 꿈조차 무의식 세계를 반영하는데 아무리 찰나라도 내 것이 녹아들지 않은 판단은 없다. 삶에 진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선택 당시의 자신을 존중해주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