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뭔데

삶이 계속되고 있는 걸

by 다온

스물셋에 처음 배낭여행이란 걸 갔고 두 달 중 하루도 빼지 않고 일기를 썼다. 뭘 쌓아두는 성격이 아니라 인생에서 꼭 간직하고 싶은 것들만 상자 하나에 보관두는데 거기엔 그 일기장도 있다. 일기엔 래 속마음이 기지만 그 글들은 곤함을 무릅쓰고 남겨놓은 것들이라 유독 의식의 흐름 충실하고 있 그래서 매우 사실적다. 한 번도 제대로 다시 읽어보진 않았는데, 최근 찾아볼 내용이 있어 펼쳤다가 깜짝 놀랄만한 한 줄 보게 되었다.


'그 30살 아저씨는 퇴사를 하고 유럽에 왔다고 한다'


서른 살을 '아저씨'고 해놨네? 본인이 이십 대 초반이라는 우월감이었을까, '그분'이나 '오빠'등을 대신한 단순 지칭 수단이었던 걸까. 의미 있는 타자가 아닌 이상 서너 살 차이 너머로는 그저 연장자일 뿐이고 더욱이 나이 앞자리까지 다르니 그냥 윗세대로 확정 지어버린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스무 살 때 스물다섯 복학생 선배도 한참 위로 느껴졌었다.


사회 변화는 내내 가속화되었고 가 언제 서른의 문턱을 넘었는지도 까마득하다. 한국인은 숫자에 진심이고 그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서른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한다. 나도 삼십 살이 되면 대격변이 일 줄 알았다. 이대로 청춘이 끝나는가, 하는 허무도 있었다. 그런데 상 닥쳐보니 별 거 없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이 되면 나이가 하나 올라간다는 빅 이벤트가 있지만, 해가 갈수록 연말연초의 호들갑은 시들어 갔다. 여느 날들처럼 하루가 흘러 새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서른 된 지인은 자신이 더 이상 2로 시작되는 나이가 아닌 것에 침울해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30보다 29를 받아들이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원래 주사 맞기 전이 더 떨리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 떨림은, 지나간 열 번의 해와 다가올 열 번의 해 그 전환기에서 당연히 느껴야 할 긴장감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십 대는 생의 최고 찬란함을 선사하고 누구도 그를 부인할 수 없다. 그다고 그 이후가 저물어가는 것도 아니다. 실의 MZ 세대는, 나이가 3으로 시작한다 해도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지 몇 년 안되거나 한창 취업을 준비 중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인간의 성숙도가 숫자의 상징성에 미치기 힘들다는 말이다. 나의 경우도,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인 학창 시절을 보낸 터라 취업을 한 이후에서야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고 감성에도 날개를 달았다. 성인으로서의 사고가 늦게 발현된 거다. 는 그에게 하고 싶은 거 다해보라고, '어려서' 좋겠다고 했다. 마 그녀 또한 신의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사실 나도 앞자리가 4로 시작될 순간이 머잖은 것에 대해 아찔한데 이런 동요에 대해 선배들도 말했다. "네 나이가 부럽다"


상대성을 망각하면 우리는 이렇게 남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이란 컨베이어 벨트처럼 시간이 직선으로 나아감에 따라 그냥 내 앞에 주어진 것이니 마다할 수도 없고 나를 제대로 표현해줄 수도 없다. 본인의 의지 없이 수동적 또는 강제적으로 획득된 것이라 나이 든다는 게 그렇게 억울한 것인가 보다. 인정할 수 없는 이 숫자놀음이여. 삶은 계속되고, 시간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나타내는 표식이 무엇이든 간에 그저 오늘을 살아내면 된다. 가능한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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