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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예레미야애가3장19~39절

매일성경 큐티, 10월 22일

by 양승언

10월 22일(화)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예레미야애가 3:19~39


고초와 낙심 중의 소망 19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고난을 수용하고 구원을 기다리라 22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25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화와 복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34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35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37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38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39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묵상하기

1. 예레미야는 시온의 멸망으로 인해 큰 슬픔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소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어떻게 소망을 발견하였는가? (19~21절)


2.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성품을 소망의 근거로 삼는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고백하는가? (22~24절)


3. 인자와 긍휼의 무궁하심이 아침마다 새롭다는 예레미야의 고백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당신은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가? 혹시 당신은 과거의 은혜에만 머물러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맛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라.


길잡이

현재 직면한 절망적인 상황을 탄식하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옮겨간다. 예레미야는 현재의 절망스러운 상황이 오히려 소망이 된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 하나님 밖에 소망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절망이 오히려 소망으로 나가는 시발점이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통을 기억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19~21절).

그럼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 즉 인자와 긍휼에 있다. 인자는 언약관계에 근거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뜻하며,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가 유효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진멸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소유로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으로,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자신의 기업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소망의 근거로 삼는다(22~24절).

예레미야는 고통 중에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베푸실 구원을 기다리라고 역설한다. 예레미야는 사람이 젊을 때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고난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수단임을 암시한다. 실제로 소들이 짊어지는 멍에는 소들로 하여금 바른 길을 나아가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고대 사회에서 “입을 티끌에 대는 것”은 나이 많은 연장자나 상사 앞에서 자신을 낮춰 경의를 표하는 행동이었다. 즉 하나님 앞에 겸손히 징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심지어 때리는 자에게 빰도 내어줄 정도로 철저히 낮아져야 함을 강조한다. 왜인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25~33절).

예레미야는 세상의 불의와 억압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갇힌 자를 발로 밟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불의를 저버리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공의가 왜곡되거나 변절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34~38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인지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다고 고백한다. 우리가 매일 맛보는 은혜는 광야와 같은 이 땅을 살아가는 매우 중요한 동력이 된다. 당신은 어떤가? 매일같이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있는가? 혹시 과거의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닌지 정직히 점검해 보라.


기도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의지함으로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삶 속으로

집사님 한 분이 있었다. 아들이 재수를 하였다. 그래서 아들을 위해서 새벽기도를 나가서 기도했다고 한다. 덕분에 아들은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당시에는 아들이 재수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 때가 그립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새벽기도를 통해 받은 은혜 덕분이었다. 그 때 정말 간절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날마다 기도의 자리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특별했다는 것이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이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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