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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언 Sep 25. 2019

강남에 살면 진보가 될 수 없다?

KBS 김재원 아나운서의 <마음 말하기 연습>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유학 중에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자, 급히 귀국한 그는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병원생활을 하던 중에 아나운서의 길을 가게 되었다. 힘든 연수기간을 보내고 춘천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새벽에 춘천으로 출근해서 아침방송을 하고, 오후에 퇴근해서 서울에 돌아와 병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돌보는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백혈병으로 고통받던 성덕 바우만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골수기증 캠페인이 펼쳐졌다. KBS에서도 전국의 각 도시를 연결하여 특별생방송으로 캠페인을 이끌었는데, 그때 김재원 아나운서는 춘천 명동에서 중계를 하면서 텔레비전에 얼굴을 드러내게 되었다. 방송을 마치고 돌아온 그 날 저녁, 병실에 있던 아버지와 병실 식구들이 방송에 나온 그의 모습을 보고 모두 기뻐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을 받고 들뜬 마음이 가라앉을 무렵, 병실 창가 쪽에 누워 있던 한 환자가 그를 불렀다.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한 채 재활훈련을 하고 있던 중년의 환자였다. 그는 그와의 대화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 수고했소. 화면을 잘 받더군. 말솜씨도 수려하고, 잘했소. 그런데 그래, 골수 기증은 했소?"

"네? 아, 골수기증이요? 아, 아니요."

"아, 그래. 아마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군. 그러면 혹시 헌혈은 했소?"

"아, 네. 그게 좀… 제가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아, 그랬군, 난 그냥 하도 골수 기증하라고 말을 잘하기에 당연히 했거니 싶어 물어본 거지. 신경 쓰지 마시오." 


그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고통 받는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을 위해 골수기증을 하라고 외치면서도 실상은 자신은 행동 없이 빈말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도와준 중년의 환자와의 대화는 방송인으로 살아가는 그의 삶을 비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고 한다. 


제임스 M. 쿠제스와 베리 Z. 포스너는 미국 전역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연구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는 리더의 특징이 무엇인지 물었다.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수위를 차지하는 특성은 "일관성"이었다고 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싶은가? 최대한 사람들을 멀리하라. 사람에게 변화를 주고 싶은가? 최대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모 장관후보자의 "강남에 산다고 진보가 되면 안되냐"는 발언이 관심을 끈 적이 있다. 분명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말과 행동에 일관성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느냐가 아닐까 싶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우리의 말과 행동, 삶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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