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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길벗 소로우 Jul 08. 2022

메타버스의 나

이것은 메타버스가 가져다 줄 미래에 대한 상상이다.


메타버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메타버스로 진입을 했었다. 그러나 그건 온전한 메타버스 체험은 아니었다. 그건 실제의 나와 메타버스 안의 나가, 둘로 분리되는 형태였다. 메타버스 안의 나는 내 '아바타'였지 나 자신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래의 메타버스는 통합된 자아 경험을 지향한다. 조끼 형태의 얇은 웨어러블 키트를 착용하면, 바로 완벽한 메타버스 세계로 진입을 하게 된다. 원래 인간이 구성한 세계는 자신의 감각기로 들어오는 오감의 정보(시, 청, 후, 미, 촉)를 수용하고 해석함으로 이뤄진 세계이다. 감각기가 인식한 물리 정보는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뉴런을 타고 뇌에 이른다. 미래의 메타버스 기술은 인위적으로 전기신호를 만들어 전달하고, 동시에 몇몇 신경전달 물질도 조절한다. 그렇게 인간의 오감을 완벽히 조작한다.

메타버스 조끼를 착용하면 그냥 바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래픽 전문업체 Ovidia라는 회사가 Hoogle이라는 플랫폼사와 제휴를 맺고, 이들은 우주에 슈퍼컴퓨터로 수천 조 기가의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해서 개인 메타버스 키트와 교신했다.


어느 날, 나는 메타버스 조끼를 입고, 시공간을 1990년 대 히말라야로 세팅했다. 나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안나푸르나 원정팀과 같이 있었다. 나는 베이스캠프 스탭 역할을 하며, 엄홍길 대장의 안나푸르나 동반을 지원했다. 이런 역사적 순간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격스러웠다. 정상에서 내려온 엄홍길 대장이 스태프들을 일일이 포옹하고 고맙다고 했다. 그 산 사나이의 말을 듣고 내 가슴 또한 벅찼다. 그때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저 산악인 같진 않고... 혹시 여기, 메타버스로 오신 거죠?"

그동안 내가 계속 버벅대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챈 것 같았다. 그도 사실은 메타버스로 여기로 온 것이라고 하며, 배낭에서 웨어러블 조끼 하나를 꺼냈다. 자기가 최근에 경험한 1987년 한국 민주화 시대 kit라며 한번 입어 보라고 했다.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그 조끼를 받아 걸쳤다. 그리고 곧 1987년 연세대 정문 앞에 서게 되었다.


나는 최루탄 가스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학생들과 함께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때가 이한열 열사가 목숨을 잃은 직후인지, 그 직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죽음의 기운이 학생들과 나를 점점 옥죄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 고통스러운 죽음의 현장에 도저히 더 머무를 자신이 없었다. 그때 최루탄 먼지 속에 누군가 내 팔을 잡고 소리쳤다.

"저기, 연세대 학생 아니죠? 그냥 메타버스로 잠깐 오신 거죠? 그럼 이것 쓰고 얼른 나가세요. 여긴 점점 더 위험해져요."

나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그가 준 조끼를 서둘러 걸쳤다.


그 조끼는 2010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난 산티아고 시청 광장에서 비둘기들을 보고 있었다. 그곳은 히말라야의 환희와 연세대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고요한 곳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파블로 네루다의 생가를 방문하기 위해 택시로 이동을 했다. 그의 시는 잘 몰랐지만 '일 포스티노'라는 이탈리아 영화를 보고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기념관에 도착은 했지만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날은 12월 24일이었고 기념관은 휴관이었다.

'어떡하지...?' 난 매표소 앞에 난감히 서 있었다.

그때 한국 청년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저기요. 여기 메타버스로 오신 거죠?"

그는 자기 가방에서 메타버스 조끼를 건넸다.

그 조끼에는 "Real Mode'라는 버튼이 있었다.

나는 히말라야, 연세대를 거쳐 산티아고로 왔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려면 지금의 역순으로 돌아가야 한다. 근데 그걸 또 반복한다는 게 너무 고생스러울 것 같다.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그는 말했다.

"번거롭게 가실 필요 있나요? 그냥 이것 입고 2021년 리얼 모드로 바로 돌아가시면 되죠."

난 잠시 고민했다. 그리곤 그 조끼를 착용하고 2021년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 가족들이 메타버스 여행이 재미있었냐고 묻는다. 근데 뭔가 좀 이상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진짜 내 가족인지, 아니면 내가 진입한 네 번째 메타버스 세계 속 환상들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만 아는 비밀들, 예를 들면 여행 추억, 교통사고 경험 등에 대해서 슬쩍 물어보았다. 이 사람들은 너무도 정확하고 능청스럽게 대답을 잘한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메타버스 조끼를 몇 번이나 입고 벗고 하는 동안, Hoogle사가 이미 나의 대뇌피질과 해마에 기록된 모든 기억 정보를 프로세싱해서, 자기들 클라우드로 옮겨 갔다. 이것도 그들이 만든 환상 세계일지도 모른다.


나는 귀환 이후에 계속 후유증에 시달렸다.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온 건지, 아니면 여전히 메타버스 속에 있는 건지 너무도 헷갈렸다. 그리고  모든 감각 자체도 의심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친구들을 만나서 내 고민을 얘기했더니,

'니가 그동안 인터스텔라와, 융 등등 심취하다가, 메타버스 조끼 좀 경험하고 결국 오따구로 빠지고 있다.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메타버스라면, 인생의 방향과, 레이어들의 순서를 생각하며 골치 아플 필요가 있을까? 절대정신이 자신의 키트를 벗는 순간, 그땐 저절로 정리가 되겠지?


나는 집에 와서 TV를 켰다. 어느 정치인에 대해 파렴치한의 대명사인 것처럼 묘사를 한다.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니, 아까 그 사람을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 보도한다. 하는 꼬락서니들을 보니, 내 원래 세계로 돌아온 게 틀림없다, 그런데 한 사람에 대한 너무도 다른 두 관점이 병존하는 것을 보니, 이 또한 거대한 메타버스 세계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감각기로 구축한 세계들. 환영과 실체가 섞여 있다. 혼란스럽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내가 이 세계에서 계속 회의한다는 것이다. 그때 만은 메타버스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뉴스를 보며 이 세계가 더 싫어졌다. 그래서 TV를 끄고 딴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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