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십 수년 전 어느 여름, 아내와 세 살 된 우리 딸과 함께 서울에 모 호텔에 간 적이 있다.
호텔 수영장에 아이 물놀이를 시켜주러 간 것이었다.
아이는 즐거워했고, 아내도 행복해했다.
나는 아이를 돌보고, 책을 보고 그러면서 놀았던 것 같다.
우리는 배가 고파서 수영장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우리 아이가 뒤뚱뒤뚱 돌아다니다가, 어떤 다른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그 테이블에는 유명한 개그맨 분과 그의 아내로 보이는 분이 앉아 있었다.
그 여자분은 곧 출산을 앞둔 것처럼 보였다.
그 개그맨 분은 우리 딸을 보더니,
너무도 반가워하고,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아빠라서 우리 애가 이쁘지만,
세상에 우리 식구 빼고, 그렇게 우리 애를 이뻐해 주는 사람은 잘 못 본 것 같다.
그분은 우리 딸이 자기 테이블 쪽으로 지나갈 때마다 반가워하고, 인사하고,
우리 딸의 얼굴을 쳐다보며 다정히 말을 걸었다.
우리는 그분에게 다가가서 우리 딸과 기념사진을 찍어 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그분은 흔쾌히 응했다.
자기 무릎 위에 아이를 앉히고 오른손으로 V자를 만들며 환히 웃었다.
내 처가 그 아내분에게 곧 출산 예정이냐고 물었고, 그분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회사에서 주재원 발령을 받아 브라질로 떠났다. 난 브라질에 있을 동안 한국 방송은 잘 보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 한국에 돌아와서, 난 그 개그맨 분이 실명을 하시고 시각장애인이 되셨다는 걸 들었다.
그분은 자기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력을 앗아가는 희귀병을 이미 몇 년째 앓고 있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시력을 완전히 잃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난 그분이 그때 우리 딸을 바라본 모습을 기억한다.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는 수영을 마친 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은 물기에 젖어 너무도 윤기 있고,
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귀밑머리는 병아리 가슴 털보다 더 곱고,
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눈동자는 세상에 그 어떤 검정보다 더 검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세 살짜리 아이의 볼에는 우유, 과자 가루가 묻어 있어 그 내음이 비리지만,
그래도 세상에 모든 달콤함이 서려있는 볼이란 걸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 딸을 그렇게 응시했을 것이다.
나중에 세월이 지나 들은 얘기론,
그 집도 딸을 낳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미래의 장면들을 미리 당겨 압축해서 본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장면들을 당겨 압축해서 본다.
그 속에서 진실을,
그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모두의 연약함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