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

by 작은길벗 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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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을 먹고 다음 날 용변을 보면, 수박씨를 확인할 수 있다.
수박씨는 몸 안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일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해부학적 관점에서는 수박씨는 몸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다.

몸 안으로 들어간 (흡수된) 것은, 수분, 당분, 기타 영양소들이다. 수박씨는 위산과 여러 소화효소들이 분해할 수 없는 딱딱한 껍질로 쌓여있다. 그래서 수박씨는 입으로 들아가서 식도, 위장, 소장, 대장을 거쳐 항문으로 나온다. 내 소화기 유람만 잘하고 실제로 몸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헤어질 때, 친구가 내게 말한다.
"난 버스 타는데, 너는?"
"나는 지하철 타고 가."

인사를 하고 나는 지하로 들어간다. 나는 지하철의 맨 뒤칸으로 가서 창밖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지중의 굴 세계를 유람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 울퉁불퉁한 돌벽 속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난 지중 세계로 들어왔지만 아직 지중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캡슐을 타고 튜브 속을 여행하는 수박씨이다. 나는 여전히 지중 밖 세계에 있다.

안과 밖의 모호성은 위상 기하학에 나오는 개념이다. 손잡이가 없는 두께 5밀리미터의 사기 컵이 있다. 거기에 냉수를 담았다. 대부분의 언어권에서는 '컵 안에 물이 있다."라고 표현을 한다. 우리말도 그렇고 영어도 그렇다. 그러나 사기 컵은 단단하고 밀도도 워낙 높아서, 물은 사기 안으로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물은 아직 사기 컵 밖에 있다. 액체가 어떤 모양을 이루어 머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컵의 어느 면에, 물이 잠시 머물러 있을 뿐이다.

유아용 물놀이 튜브도 마찬가지다, 던킨 도너츠 같은 튜브의 안쪽 구멍에 아이가 들어간 것 같지만, 튜브 안에 들어간 것은 실제로는 공기이고, 아이는 여전히 튜브 밖에 있다.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어떤 아이가 불량 집단에 들어 가 있다. 그런데 뭔가 실력이나 뭐뭐가 약해서 그 일진그룹에서 배제가 되었다고 치자. 그 아이는 이제 소중한 또래집단 안에 속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안전지대로 진입한 것일까? 당사자는 인정을 안 할지 몰라도, 그 아이의 부모는 자기 아이가 드디어, 마침내, 드넓은 안전지대로 진입한 것으로 볼 것이다.

우리는 안이냐? 밖이냐 늘 잰다. 어디론가 진입하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하고, 어디에서 탈출하고 싶어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안과 밖은 실제로는 안과 밖이 아닐 수도 있고, 안팎이 아예 뒤 바뀌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물놀이 튜브처럼 이중적인 안이 존재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가끔 어떤 문의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 그리고 멈칫거리며 생각한다. 이건 빠져나가는 문일까? 아니면 들어가는 문일까?

좁은 야외도 있을 수 있고, 넓은 실내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헷갈려하면서 자기와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 문이 안으로의 문일지, 밖으로의 문일지 결정하는 것은 세 가지이다.

내가 등진 세계, 그리고 내가 향하는 세계.
그리고 그 둘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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