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국 편 비행기의 비즈니스 석에 올랐다. 이번 미국 출장은 정말 피곤한 일정이었다. 그래도 잘 마무리가 된 편이다. 이제 열몇 시간만 더 있으면 아내와 아이를 다시 만나고 집에서 푹 쉴 수가 있다.
난 내 옆 자리에 앉으신 어떤 할머니에게 '안녕하세요'하며 가벼이 인사를 드렸다. 11시간이나 옆에 앉아서 같이 가는데, 어색하지 않으려면 미리 인사부터 드리는 게 낫다.
할머니도 내 인사를 가볍게 받아 주셨다. 할머니는 좀 왜소하시고 거친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분이었다. 이런 비즈니스 석을 처음 타시는지, 뭔가 어색해하시고 불편해하시는 것 같았다.
비행기에서 식사를 끝내고 한참 지나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출장으로 나오셨어에?"
그 할머니 억양은 내가 30년 전쯤에 고향인 대구에서나 듣던 정도의 강한 사투리의 톤이었다. 요즘 경상도에 가도 이 정도의 강한 악센트로 얘기하는 사람은 잘 없을 터였다.
"네, 회사 일로 나왔다가 지금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할머니는 미국에 여행 오셨나 봐요?"
"아니오. 저는 미국 이민 왔어예."
그랬었구나. 뭔가 낯설어하던 몸짓과 거친 사투리를 쓰시는 분인데도 이민을 오신 분이로구나. 자녀가 초청해서 늘그막에 뒤늦게 이민을 오셨나 보다.
"언제 이민 오셨나요?"
"한 50년 넘었어예."
"네? 50년이요?"
미국 온 지 20년, 30년 된 사람은 많이 봤어도 50년 된 사람은 처음 봤다. 50년이라고 하면 1960년대 초 중반에 미국으로 오신 것인데, 당시에 새마을운동이나 경제개발계획이니 하는 것이 본격화되기 이전의 시대인데, 그때 미국 이민을 왔다면 대단한 전문기술인의 아내이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분임에 틀림없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 할머니에게 다시 물었다.
"아니 그때라면 정말 일찍 오신 것이네요. 어떻게 이민을 오셨어요?"
뒤이은 할머니의 대답은 내가 비행기에 탑승해서 처음 가졌던 그 할머니에 대한 인상과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할머니는 조용히 대답하셨다.
"남편이 Doctor였어요. 당시에 대구에 동인동 쯤인가에서도 좀 살았고, 부산에 가서 안과병원 개원도 했었어예. 그런데 우연찮게 미국 루이지애나 대학에서 초청을 받아서 한 2년만 살고 다시 드가자고 미국 나온기 벌써 50년이 됐네요. 남편이 루이지애나에 정이 들어서 계속 살고 싶다고, 거기서 공부를 더 하고 안과를 개원했어예..."
1960년대에 의학박사에 안과 개원의이며, 초청으로 미국 이민을 갔다면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 오신 분이시다.
"아, 이민을 정말 일찍 오셨네요. 자녀분들도 다 장성하셨겠어요."
"네 큰 애는 건축에 관심이 많아서 건축회사를 차려서 미국에서 일합니다. 둘째 애는 지 아부지처럼 의학에 관심이 많아서 안과 의사가 됐어요. 지금 아버지 병원 물려받아서 잘하고 있지예. 셋째는 지금 서울에 사는데 국제 변호사입니다. 셋째 며느리도 이대 나와가꼬, 국제 변호사로 일하고 있어예. 저어들이 한국생활 좋다고 서울 사는데, 지금 셋째 아들 만나러 가는깁니다."
'그랬구나. 첫인상과는 전혀 다른 분이로구나', 생각하면서 나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자녀분들도 다 잘 되셨네요. 그런데 셋째 아드님 만나러 서울 가시면 할아버지도 같이 가시면 좋을 텐데요.."
할머니가 말했다.
"두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예..."
나는 한 2초 정도 가만히 있었다.
괜히 질문을 했다 싶었다. 두 달이라면 아직 아픔이 사라지지 않은 시간이리라. 사실 내가 앉은 자리에는 내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앉아 계셔야 했다. 근데 할머니의 남편은 이제 한국 여행에 동행하지도, 혹은 미국에 남아서 할머니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사실 할아버지 없이 아들을 만나러 가는 생애 첫 번째 여행이라서 이 할머니는 비행기 탑승하셔서 어색해하고 불편해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 난 할머니와 KTX 탑승 방법 등, 몇 마디 말을 더 나누고 불을 껐다.
할머니는 주무시지 않고 개인등을 켜놓고 하얀 종이에 뭔가 긁적긁적 쓰기 시작했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나는 물을 먹으러 몸을 일으켰을 때 할머니가 뭘 쓰시는지 슬쩍 봤다.
할머니는 하얀 종이 세 장에 꼭꼭 눌러서 긴 글을 적고 계셨다.
그 편지에는 여러 글들이 적혀 있었지만 내용은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거의 두 줄마다 한 번씩 '당신'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는 건 알아차릴 수 있었다.
편지 세 장을 다 쓰신 할머니는 주무시려고, 개인등을 끄고 의자를 젖히셨다.
난 내 앞에 개인 모니터로 사랑에 관한 영화를 찾아서 시청하기 시작했다. 중국 감독이 만든 사랑에 대한 5편의 단편이 연결된 옴니버스 영화였다.
한국 도착 전에 집중적으로 몇 시간이라도 자려고 그러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자를 젖히고 잠을 잤다. 영화를 보는 몇몇 사람도 의자를 반쯤 젖히고 있었다.
그런데 단 한분. 우리 앞 줄에 왼쪽 편 윈도우석 쪽에 어떤 할아버지 한분만 아까부터 개인등을 켜 놓고 앉아 계셨다..
영화를 보다가 힐끗 쳐다보니, 그 할아버지도 뭔가 하얀 종이에 꼼꼼히 글을 적고 계셨다. 그 할아버지도 한 세 장 정도 계속 글을 적으셨고, 나중에는 글이 잘 써졌는지, 종이를 들어서 불빛에 비쳐서 살펴 보셨다.
그 할아버지 옆 좌석에는 또래의 할머니 한분이 앉아 있진 않았다.
그 할아버지 쪽을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초능력이 생겼다. 나는 내 영혼이 몸을 이탈했던 것인지, 아니면 멀리서도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천리안이 문뜩 생긴 것인지,
몸은 내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그 할아버지가 쓰신 편지글이 읽혀졌다.
솔직히 그 글의 내용은 다 알 수 없지만 그 편지에도 역시나, '당신'이라는 단어가 수없이 많이 적혀 있었다.
편지를 다 쓰신 그 할아버지도 불을 끄고 의자를 젖히고 누우셨다.
나도 왠지 흰 종이에 뭔가 적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틀어 놓은 사랑에 관한 중국 영화는 어느덧 끝이 났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나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것인지 아니면 사랑에 관한 그 중국 영화를 한번 더 볼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아내와 아이는 이제 2시간만 있으면 다시 볼 수 있을 터이니 굳이 편지를 쓸 필요는 없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