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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길벗 소로우 Sep 25. 2019

퇴임식

퇴장하는 사람들을 위한 송가


이른 아침, 60대 중반 여성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은 여기서 근무하는 마지막 날이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도착했다. 


여기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좌석이 절반도 차지 않은 사무실이었다. 그러나 사세가 커지면서 이젠 좌석이 부족하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이 회사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가졌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반듯한 직원들 때문에 회사는 날로 성장했다. 


여긴 훌륭한 직원들이 많다. 이런 직원들을 두고 떠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래도 오랜 직장생활 끝에 이곳에서 커리어를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은 나름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건강만 허락한다면 1년 정도는 더 근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맘을 고쳐 먹었다. 이제껏 그녀가 해  왔던 일은 더 유능한 후임이 맡아서 앞으로 잘해 나갈 것이다. 


그녀는 김 차장의 자리를 바라봤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퍽 쑥스러워했던 사람. 문서 꾸러미를 들고 복도를 날아다니던 박 과장의 자리도 바라봤다. 그리고 사원급들의 자리도 보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예의가 없고 자기밖에 모른다는 건 여기선 틀린 말이다. 


누군가 다가와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이 쪽 회의실로 잠시만 모시겠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젊은 직원들이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탁자 위에는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하나, 둘씩 그녀에게 이별의 아쉬움과 감사를 표하는 인사말을 했다. 마지막 차례는 작년에 입사한 막내 여사원이었다. 


막내의 눈가는 좀 젖어 있었다. 막내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뭔가 울컥하는지 말을 잘 잇지 못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오늘은 이별이 아닌 새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 아니던가?  


60대 여인은 그 신입 여사원에게 다가가, 가만히 손을 잡아 주며 말했다.  

"아유... 괜찮아요." 


60대 여인은 그 막내 사원이 촉촉한 눈으로 소리 없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그 사원이 여태껏 복도에서 마주치면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하면서 이미 눈으로 했던 말이다. 쓰레기가 많아 화물 엘리베이터에 여러 번 나눠 실어야 할 때, 엘리베이터를 잡아 주면서 했던 말이다. 그리고 큰 종이 박스를 접거나, 캔과 플라스틱을 수거용 비닐에 나눠  담을 때, 자기 일처럼 도와주며 이미 속삭인 얘기다. 


"미화 여사님, 사실 저희 어머니도 청소 노동자셨어요. 그동안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얘기는 공기를 타고 들려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60대 여인은 이미 알고 있었던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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