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 펑크라는 장르가 있다. 1980년대 등장한 스타일로 이전보다 훨씬 과격해진 형태의 펑크다. 한 마디로 굉장히 정신없는 음악이다. 본디 펑크라는 음악 자체도 요란한데, 이보다도 한층 더 시끄럽다. 약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정신없이 두들기고 울부짖고 후려친다. 듣자마자 왜 앞에 하드코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블랙 플래그나 컨플릭트라는 밴드들이 대표적인데, 들어보면 음악이라기보다 그냥 잘 짜인 음악 치료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뉴욕의 소규모 클럽에서 점차 세를 불리다 시간이 흘러 백인 노동자 계층의 하위문화로 자리 잡았다.
힙합이 뉴욕 브롱크스 빈민가에 거주하는 흑인계 청년들로부터 형성된 문화운동임을 생각하면, 두 장르는 같은 화분에서 자라난 다른 식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하드코어 펑크를 백인들의 힙합이라는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힙합과 공통점이 많다.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들과 크루를 결성하는 것도, 음악만이 아니라 의상과 사상 등 삶과 일상 전체가 하나의 문화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두 장르 모두 메탈과의 크로스오버가 많이 이루어진 것 또한 비슷하다. 특히나 하드코어 펑크는 메탈과의 장르 구분이 어려울 만큼 동화된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 탓에 연식이 오래된 마니아들끼리도 어떤 장르인지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사실 딱히 굳이 구분을 지어야만 하는 이유 같은 건 없지만).
이 하드코어 펑크는 시간이 지나 스트레이트 에지(sXe)라는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 낸다. 마이너 스레드의 보컬 이안 맥케이가 그 흐름을 주도했는데, 펑크 록 문화가 약물 중독자들과 반사회적 범죄자들의 전유물이 돼가는 현실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No smoke, No drink, No drug, No sex’를 외치는 금욕주의적 사상을 펑크로 끌어온 것이다. 술과 약물에 기대지 말고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체로 자신의 신념을 말하자는 게 이 사상의 요지다. 이 금욕주의적 사상은 나중에 비건 문화와도 결합해 비건 엣지로 표현되는 채식주의 밴드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일부는 저작권의 독점성을 옹호하는 카피라이트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오픈 소스를 공유하는 카피레프트 운동에 뛰어들기도 한다. 펑크 신 내부를 향한 반발이 일종의 정치적 의미를 담은 라이프 스타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스트레이트 엣지를 표방하는 밴드들의 가사들은 대체로 이종격투기 도장의 코치들 같다. “그래, 좀 더!” “할 수 있어!” “일어나! 정신 차려!” “맞서보면 아무것도 아냐!”
스트레이트 엣지가 일상을 대하는 삶의 자세, 그 자체를 의미하므로 그들이 일과 취미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남다르다. 이들에게 노동은 음악을 하는 데 있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경제적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본업을 가짐으로써 온전히 나의 시각을 담아낸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연습은 보통 일하는 시간과 여가시간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며 관객 동원과 앨범 판매 수익에 집착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을 하며 좋아하는 일로서 음악을 할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하드코어 펑크이자 스트레이트 엣지인 셈이다. 대충대충 연습해 오는 직장인 밴드를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 멋진 스트레이트 엣지는 프로 뺨치는 실력을 무대에서 보여줄 때 비로소 빛이 난다. 프로 같은 아마추어랄까. 경력 같은 신입처럼 그 형용모순에서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게 그들이 추구하는 바다. 당연히 한국에도 이런 가치관을 가진 하드코어 펑크 밴드들이 있다. 대부분의 밴드들이 겸업을 고집한다. 직업적 면면도 패션 디자이너, 요리사 등 다양하다.
직장인 밴드? 놉! 하드코어 라이프!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오랜 시간 들어온 건 바세린의 음악이다. 7년 전, 당시 새로 나온 앨범 《Black Silence》 홍보 차 인터뷰를 진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이 하드코어 밴드를 표방하는 이상,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질문 중 하나였다.
“이런 수준의 음악을 뽑아내면서 생업을 이어가려면 잘 시간도 없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녹음할 때는 그렇기도 하죠. 3집 때까지만 해도 퇴근해서 새벽 3,4시까지 녹음하고 바로 출근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나이를 먹었는지 그런 게 어렵네요(웃음).”
바세린과의 인터뷰가 떠오른 건 최근에 영화 <8마일>을 다시 보고 나서였다. 본업과 음악에 관한 멤버들의 자세를 묻는 과정에서 이 영화가 예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잠시 에미넴이 그 영화에서 얼마나 멋지게 나오는지에 관한 찬양으로 빠지기도 했다. 로커들과 힙합 영화를 소재로 대화를 하다니. 돌이켜보면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아까 말했듯 하드코어 펑크와 힙합은 같은 화분에서 자라난 다른 식물이니까.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래빗은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청년이다. 영화 속에서 그의 인생은 쉴 틈 없이 고달프다. 클럽에선 무대 공포증 때문에 말 한마디도 뱉지 못한 채 망신만 당하고, 트레일러에서의 삶은 늘 구질구질하며, 아는 레이블과 연결시켜주겠다는 친구는 자신이 만나던 여자친구와 바람이 난다. 여기에 친구인 퓨처는 얼마 전 망신을 당한 클럽에서 열리는 랩 배틀 대회에 래빗의 이름을 몰래 올린다. 나라면 음악이고 뭐고 그냥 공장에서 잔업이나 하며 수당이나 챙겼을 텐데. 웬일인지 그는 기권하지 않고 클럽 무대에 올라 프리월드 갱단과 눈싸움을 하며 랩 배틀을 한다. 마침내 래빗이 클럽 챔피언이 됐을 때, 이상하게 그는 뛸 듯이 기뻐하지 않는다. 한잔하자는 동료들의 제안에 ‘공장에 일 하러 가야 한다’며 길을 나선다.
이제 왜 에미넴 사진을 썼는지 알겠지.
그 영화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승리를 대하는 래빗의 태도였다. 그도 안다. 달동네 클럽에서 벌어진 랩 배들에서 챔피언이 됐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그는 왜 무대에 섰을까. 그래야만 했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는 자신만 알 것이고, 어쩌면 그조차도 모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적잖이 있다. 가슴 속에 있는 무언가를 반드시 밖으로 끄집어내야 하는 사람들. 근데 그게 뭐냐고 물으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 아무도 읽지 않을지도 모를 글을 밤새워 쓰고, 몇 시간에 걸쳐 찍은 영상을 하루 종일 편집하는 사람들. 주위에서 뜯어말렸다가는 되레 병이 날지도 모르는 그 마음. 스트레이트 엣지라는 심오한 단어는 그 지점에 도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립된다. 모두가 뜯어말려도 끝끝내 하고 싶은 일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쯤 있는 삶. 프로처럼 해내고 싶은 게 있는 아마추어의 삶.
지금 하는 일은 글쓰기와는 전혀 무관하다. 20대 후반에 맞닥뜨린 장기간의 방황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돌이켜보면 삶이 뜻하는 대로 굴러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7년 전만 해도 내가 자영업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어쨌거나 이렇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해 일한다. 술 담배는 입에 대지 않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음에 안도한 뒤, 집에 와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열심히 쓰고 고친다. 다음날 피곤해도 반드시 써야만 후련해지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도 스트레이트 엣지 라이프라고 할 수 있으려나. 아무렴 뭐든 상관없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거면 됐다. 이제 자야 할 시간이다. 해 뜨면 다시 일 하러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