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족과 발리우드, 그리고 끔찍한 혼종들 (Feat. The HU, Bloodywood)
오랜 시간 들을 음악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옷장에 한 가득 옷이 있건만 입을 만한 게 없는 기분이랄까. 아는 밴드들은 이미 다 알고, 전혀 알지 못하는 밴드들은 너무 예측 가능한 스타일이 많았다. 설사 좋은 밴드를 찾았다 한들 음원으로 유통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국내 음원사이트에서는 이제 메탈 음원을 거의 유통시키지 않는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채널에서도, 개인 채널에서도 전부 예전 노래들만이 편집돼 올라와 있다. 커뮤니티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만 답은 시원치 않았다. 그들도 나처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장르나 스타일을 한정할수록 댓글의 수는 더 줄었다. 오히려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정말 뭐 들을 게 없네요ㅠ” “진짜로 다들 뭐 들으세요, 요즘?ㅠ” 답답했다. 이게 나만 겪는 고민이 아니라니. 동시에 걱정이 밀려왔다. 아아, 이제 정말 메탈은 망하는 건가.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 등장하지 않은 지도 너무 오래됐다. 록과 메탈은 늘 다른 장르와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성장해 온 장르다. 이제는 더 이상 흡수할 장르가 없는 걸까. 리프와 멜로디의 고갈을 넘어서 스타일의 고갈을 논하는 글들이 커뮤니티에 심심찮게 보였다.
그러다 문득 유튜브에 들어가 우즈베키스탄 메탈을 검색해봤다. 대단한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내가 어릴 때 블랙 코리아라는 밴드가 ‘여신 자밀라’ 라는 노래를 만든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전 KBS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우즈베키스탄 미녀 자밀라를 칭송하는 노래였는데, 혹시나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메탈을 듣지 않을까 하는 의식의 흐름이 작동했던 것이다. 검색해보니 우즈베키스탄에도 메탈 밴드는 존재했다. 허나 정작 손이 간 건 바로 아래 칸에 뜬 The HU 라는 몽골 밴드였다. 벌써 노래 제목부터가 남달랐다. <Wolf Totem>이라니. 늑대는 몽골의 유목민 신화에 반드시 나오는 동물 중 하나 아닌가! 진정한 초원의 메탈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무심코 클릭했다. 촉이 맞았다. 뮤직비디오가 나오자마자 이질감이라곤 전혀 없는 장발 아저씨 네 명이서 가죽점퍼를 입고 초원과 호수를 배경으로 마두금을 연주했다. 머리를 흔들면서. 세상에 마두금 헤드뱅잉이라니. 일렉 기타가 없지만 사운드가 돌로 내려찍듯 묵직했다. 여기에 보컬이 흐미 창법으로 듣는 이를 압도했다. 끝까지 듣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화면 아래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이 눈에 띄었다. “맹세하는데, 몽골 사람들은 메탈에 최적화된 언어를 갖고 있어.” 동감이었다. 생전 처음 독일어 메탈을 처음 들었을 때의 마초적 뉘앙스가 몽골어에서도 느껴졌다.
곧바로 검색 포털에서 그들의 정보를 탐색했다. 2016년에 결성된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훙누 록이라 부른다고 했다. 훙누는 흉노의 몽골 발음으로 ‘흉노족의 록음악’이라는 뜻이다. 순간 가죽 재킷에 육즙 가득한 햄버거를 먹으며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다녔던 지옥의 천사들(Hell’s angels)과 2천 년 전 말을 타고 초원을 호령하던 흉노족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기가 막히다 생각했다. 양다리를 통째로 뜯으면서 말을 몰았던 초원의 폭주족! 의문의 여지가 없는 메탈 그 자체인 것이다. 메탈 음악의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폭주족의 나라 미국에 스래시 메탈, 바이킹의 대륙 북유럽에 데스메탈이 있다면 이제 동북아시아에는 흉노 메탈이 있는 것이다.
재미가 붙어 이번엔 인도 메탈을 검색창에 적었다. 블러디우드라는 인도 밴드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설마 발리우드라는 단어를 메탈 식으로 바꾼 건가 싶었는데, 진짜였다. 자세히 찾아보니 발리우드 영화의 주제곡들을 메탈로 리메이크한 게 이 밴드의 시작이라 이런 이름을 붙였단다. 가장 조회수가 많은 <Ari Ari>라는 곡을 먼저 틀었다. 벌써 사운드가 범상치 않다. 듣자마자 자신들을 펀자비 메탈이라 부르는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2000년대 식 메탈 사운드에 펀자브 지방의 악기들을 전면에 내세워 리듬감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시끌벅적한 잔칫집에 온 것 마냥 흥이 넘쳤다. 얌전히 앉아 듣기가 힘들 정도였다. 밴드 이름이 말해주듯 그들의 킬링 포인트는 발리우드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다. 댄서들이 음악에 맞춰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보컬은 낙타와 말을 타면서 도시를 돌아다니고, 아이들은 신이 난 표정으로 해사하게 웃는다. 이토록 사람 냄새 나고 귀여운 메탈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영상 마지막에는 ‘좋아요’ ‘구독’ 버튼을 눌러달라는 애교 섞인 요청이 영화의 쿠키처럼 들어있는데, 어딘가 한껏 허술해 보이는 그 귀여움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채널을 구독하고 그들의 모든 뮤직비디오를 다 챙겨봤다.
이렇게 설명이 쉽지 않은 음악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순전히 유튜브의 등장 덕분이다. 이 괴물 같은 앱은 클래식부터 힙합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모든 음악을 한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였다. 덕분에 장르의 구분 없이 여러 음악을 한 번에 들을 수 있기 쉬운 환경이 됐다. 다양한 음악이 불규칙하게 뒤섞이면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음악이 탄생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졌다. 이를테면 팔로알토의 음악을 좋아하는 10대 래퍼가 알고리즘에 뜬 신중현의 곡을 듣고 영감을 받을 수도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듣는 입장에서도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사실 기회라는 말을 하기엔 유튜브가 가져온 변화는 이제 새롭지 않다. 그저 내가 오래된 인간이었을 뿐. 돌이켜보면 지난 20년 간 내 사고의 틀은 전혀 변한 게 없었다. 메탈하면 늘 영미권 아티스트를 먼저 떠올렸고, 커뮤니티에서 분류해 놓은 장르 카테고리에 따라 들을 만한 음악을 찾았다. 2020년에도 여전히 나는 2000년대 초반의 방식으로 메탈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들을 음악이 없어 허덕이는 게 당연했다. 그래놓고 삶도 음악도 점점 더 새롭지 않다고 걱정하는 모습이라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별로였다. 대체 뭐가 메탈러라는 거야. 그냥 현대문명에 뒤처진 꼰대 아저씨잖아!
늘 그렇듯 새로운 재미를 찾으려면 불확실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 거창한 얘기 같지만 전혀. 유튜브를 서핑할 때 딱 세 가지만 하면 된다(나 빼고 다 알고 있던 이야기 같지만). 갑자기 생각나는 키워드 하나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결합해 검색하기. 썸네일이 영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 클릭해서 들어 보기. 그리고 장르의 계보와 역사는 잠시 뒤로 치워놓기. 어제는 아이돌과 메탈을 함께 검색했더니 닛폰만쥬라는 밴드를 알게 됐다. 턱수염 가득한 아저씨와 소녀들이 세일러복을 맞춰 입고 메탈 사운드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유튜브 속 세상이 얼마나 광대한지 느껴졌다. 아아, 아이돌과 메탈의 결합이란 이런 것이군. 이토록 충격적인 혼종이 존재한다니. 근데 묘하게 사운드가 좋다. 아니, 잘한다. 뭐지 이 사람들? 이게 도대체 뭔가 싶은 와중에도 몸은 둠칫둠칫 움직인다. 서태지 6집을 처음 들었던 중학생 때처럼. 새로움을 받아들였을 때의 기분은 중학생과 30대의 성인이 다르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우리가 나이를 먹는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수 억 개의 음악들이 유튜브 서버에 숨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