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입구역에 왔습니다. 쉬는 날 가끔 북적북적한 거리가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의 거리는 이렇게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죠. 평생을 한 곳에서 살아온 탓에 모르는 길이 없는 것도 이따금 홍대에 오는 이유입니다. 마포구의 뒷골목들은 늘 새롭습니다.
혼자 길을 잃을 때의 당황스러움도 이곳에서는 반갑습니다. 사실 말이 길을 잃는 거지, 지도 앱이 생긴 이후 길을 잃어본 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되도록 핸드폰을 보지 않습니다. 일종의 미아를 자처하는 거죠.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책 <우연한 산보>에서 주인공은 말합니다. 산책은 잠시 태평한 미아가 되는 것이라고요. 정말 미아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북적이는 연트럴파크를 벗어나 합정 방면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길이란 건 참 이상합니다. 늘 그렇듯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은 정해져 있죠. 그 길을 벗어나면 바로 한가해집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태평한 미아를 자처한다고 했지만, 길을 잃는다는 상황 자체는 굉장한 공포입니다. 이전에 길을 잃었을 때를 생각하면 더욱 그래요. 중학생 때 학습지 전단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주택가마다 돌아다니면서 학습지 전단을 붙여놓고 오는 일이었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건 제 주특기고,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으니 자신 있었습니다. 문제는 전단지를 다 붙이고 돌아올 때였습니다. 어떤 날인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아예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집 근처지만 처음 가본 동네였거든요. 연립주택 단지에 홀로 서 있으니 방향감각이 더 흐려졌습니다. 이곳저곳을 벗어나듯 뛰었지만 결국 같은 곳이었죠. 마땅한 지형지물이 보이지 않으니 당황스러웠어요.
해는 지기 시작했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집 창문으로 해가 질 때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해가 지는 방향이 서쪽이고, 저희집 창문에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본게 생각났습니다. 이렇든저렇든 해가 지는 방향을 따라가면 집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죠. 저희 집이 동향이었거든요. 다행히 제 판단이 맞았고 간신히 우리 동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여유가 생겨서 처음 본 만두집에서 김치만두를 사 먹었죠. 그때 지는 노을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때 싸온 만두의 맛도요. 신기한 건 두 번째 갔을 때는 전혀 길을 잃지 않았어요. 길을 잃었을 때의 상황이 너무 생생해서 헤맸던 길을 전부 기억하게 된 거죠.
길을 잃는다고 그게 곧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겁니다. 물론 이 말을 하고 난 뒤에도 길을 잃게 된다면 여전히 두렵겠지요. 하지만 그게 곧 죽음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 여기저기 헤메고 다닐수록 자신의 세계는 확장돼 있으리라는 걸 의식적으로 기억하려 합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뜻하지 않게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때처럼 새로운 만두집을 찾을지도 모르고요. 물론 그런 생각을 하고 길을 걷지는 않습니다. 주변 풍경을 보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태평한 미아의 특권이죠.
연트럴파크에서 서쪽으로 한참 더 들어가 봤습니다. 하연옥이라는 진주식 냉면집을 지나서 골목 안쪽으로 들어오니 옷과 햄버거를 같이 파는 신기한 매장이 있네요. 자세히 보니 위스키도 팔고 있어요. 위스키와 햄버거와 옷이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은데도 하나의 콘셉트로 잘 융합된 모습이었습니다.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그냥 햄버거를 맛있게 할 것 같은 매장이었어요. 안타깝게도 점심을 먹고 온 터라 다음에 방문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근데 사실 저는 햄버거보다는 냉면을 더 좋아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 하연옥에 들러 냉면을 먹어버릴지도 모르겠어요.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어 이번에는 큰길로 나왔습니다. 메세나 폴리스를 지나 당인리 발전소 길로 향했죠. 생각보다 먼 거리입니다. 본의 아니게 트래킹이 되었네요. 뭔가 자신과의 싸움이 된 듯한 기분입니다. 가방 속의 책 두 권이 벌써부터 원망스러워집니다. 시간이 얼마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9천보를 넘었네요. 걷기 전에는 늘 쉽게 생각하다 바짝 긴장한 종아리 근육을 보고 나서야 꽤 많이 걸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일대에 벤치가 있는 곳이라곤 메세나폴리스와 연트럴파크 정도라는 사실도요. 이곳을 걸으면 늘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후회하는 중입니다. 메세나폴리스에서 잠시 앉아 쉬고 갔어야 했어요.
이 구역에서는 걷는 데 힘이 부쳐도 어쩔 수 없이 걸어야만 하죠. 그 점은 항상 아쉽습니다. 성인 남자가 걷는 데 힘이 부친다고 느끼는 거리라면, 연세가 있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죠. 잠시 앉아 쉴 자리가 없으니 길을 나선 이상 계속 어디론가 가야만 합니다. 그게 싫다면 동네 앞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집에만 있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죠. 마을버스가 있지만 배차시간 맞추는 데에도 힘이 부치는 기사님들은 이동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이들을 배려할 물리적 여유가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걷는다는 행위는 곧 금전적 지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돈 주고 공간을 빌려야 할 테니까요. 인간의 보편적인 휴식도 상업적 틀 안으로 끌어들일 것. 휴식 없이 움직여야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게 메갈로폴리스 서울이 자라온 토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꼴을 못 보는 거죠. 이렇게 부지런한 도시에서는 좀 빈둥대도 괜찮지 않을까요? 좀 더 창의적으로 빈둥댈 수만 있다면 도시는 한층 더 다양해질 수도 있을 텐데요.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만 돌아가는 세계는 결국 수요와 공급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도시가 다양하게 채색되길 원한다면, 수요와 공급 바깥의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하겠죠. 빈둥대는 것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드디어 절두산 공원에 왔습니다. 걸은 지 한 시간 반 만에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쉬는군요. 처음 절두산 공원에 온 건 대학시절 때였습니다. 교양수업 과제로 문학적 배경이 된 장소를 답사해보고 리포트를 쓰게 될 일이 생겼거든요. 때마침 김훈 작가의 <흑산>을 읽고 있던 터라 절두산 공원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도 그 무렵 알게 됐죠. 그 사실을 안 순간부터 절두산 공원에 가면 늘 묘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성당이 세워진 바위 아래서 한강을 바라본 그날 이후부터요. 그때 그들이 절망 속에서 보던 강을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그 앞을 흐르는 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늘 우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몇 개월 전 그 기분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또 느꼈습니다. 제주 여행 중 들른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요. 익히 아시겠지만 4.3 사건 당시 벌어진 민간인 학살 현장에 세워진 기념관입니다. 본관에는 4.3 사건의 주요 사건 일지와 희생자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름 옆에는 나이도 함께 적혀 있는데, 때로 숫자 2, 3, 5가 덩그러니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 위령비 옆 학살 현장에는 피를 상징하는 붉은 화산석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서니 아이러니하게도 바다가 한눈에 보였습니다. 잔인하리만치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정말 잔인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어요. 하늘과 바다도 인간 만큼이나 잔인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죽어가도 하늘과 바다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을 겁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늘 잔인할 만큼 무심합니다. 그만큼 잔인하니까 수 만 년 동안 변하지 않고 파도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절망에 응답해주는 하늘과 바다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없다면 저 무심한 것들 앞에서 보란 듯이 서로 위로하고 기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환멸 속에서도 모두가 함께 부대껴 살아야만 한다면 오직 그 이유 때문이겠지요. 제가 이곳에서 본 노을과 강이 누구의 아픔을 얼마나 달래 줄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지는 해를 뒤로하고 지하철역을 향해 다시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