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좌역에서 연희동까지 걸었습니다

by 일로

존재감 없는 인간입니다. 어떤 조직에서도 늘 무색무취한지라 표가 잘 안 나요. 그건 인기가 없다는 말과는 좀 다릅니다. TV 볼륨이 10인 사람이 있는 반면 음소거인 사람이 있다 해야 할까요. 실제로 덩치도 작고 목소리도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들고 난 자리가 전혀 티가 안 나요. 어느 정도냐면, 학교생활이 지겨워 무단결석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사실을 무려 종례시간 때 알았다고 친구가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제게 있어 가좌역은 그런 존재입니다. 경의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과 홍대입구역 사이에 있습니다. 경의선을 탈 때 가장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던 역이었죠. 출근 시간 이 역들을 지나갈 때에는 딱 한 가지 생각뿐입니다. ‘아, 왜 여기는 타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굳이 서는 거야. 그냥 지나가도 되잖아.’ 그 마음을 아는 건지 출퇴근 시간 급행열차에는 이 역이 빠져 있습니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평소에 아무도 내리지 않던 역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의선이 개통된 이래 단 한 번도 이 역에서 내려 보지 않았어요. 이 동네는 어떤 곳인지, 누가 사는지, 뭐가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주변이 새로 개발되면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역이 개통되고도 한 동안은 유령 역 같았습니다. 마치 ‘음,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이랑 홍대입구역 사이가 너무 먼데? 중간에 역 하나만 만들자’ 해서 그냥 만든 역 같았어요. 생활 반경 내에 있는 곳인데 십 수년을 그냥 지나간다는 건 왠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서 이번엔 시간을 내 가좌역에 내리기로 했죠.


역에서 내리니 신식 아파트와 건물들이 가득합니다. 그 사이에 당장이라도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외벽의 건물들도 두어 채 보였어요. 누렇게 빛이 바랜 페인트 색이 마치 건치 사이에 끼어있는 충치 같았습니다. 그 건물들 사이에 터널 같은 샛길이 보여 일단 들어갔습니다. 입구에 다다르니 ‘하이분식’이라는 간판이 걸린 떡볶이집이 보였어요. 웬일인지 사장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떡볶이만이 철판에서 약한 불로 끓고 있었는데, 향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바로 맞은편의 허름한 닭내장탕 가게에서 나는 냄새도 만만치 않았어요. 이 곳도 뭔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이 시국에도 사람들이 꽤 많아 보였거든요. 닭내장탕을 먹어 본 적은 없지만 바글바글 끓고 있는 냄비 속 빨간 국물과 버너 옆 소주잔들을 보며 맛을 상상했습니다. 맛을 들인 이상 그냥 지나치진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어떤 맛들은 너무 유혹적인 나머지 위험을 감수하게 만듭니다. 기어이 마스크를 벗고 수저를 떠서 맛을 보게끔 하죠.



그 뒤에도 재밌는 가게가 하나 있었어요. 가게 이름이 ‘오메가 3’였습니다. 오메가3라는 이름 아래 뼈만 남은 생선이 철제 간판으로 달려 있었습니다. 그 아래 창문에는 생선과 통닭 그림이 붙어 있었어요. 여기 오면 뼈가 붙은 생물들은 전부 뼈만 남게 될 거라는 선언 같은 걸까요. 간판의 센스가 남달라 살짝 가게 안을 들여다봤는데 정작 생선 요리는 없었습니다. 낙지볶음 오징어볶음 골뱅이무침 두부조림을 주력으로 파는 술집이었어요. 오메가 3를 함유한 등 푸른 생선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아, 간판에 가시만 남은 생선을 새겨놓고는 정작 연체동물들만 파시다니요. 결과적으로 오메가 3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식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엉뚱함이 좋습니다. 이를테면 ‘핀란드 수육 덮밥’같은 가게들이요. ‘핀란드’와 ‘수육덮밥’ 사이에 아무런 접점도 없지만 ‘그냥 핀란드라는 이름을 붙여보고 싶었어’ 라거나 ‘이건 그냥 핀란드 수육덮밥이야, 아무 이유도 없다고!’라고 생각했을 사장님을 상상하니 왠지 통쾌했습니다.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게 싫어서 장사를 한다지만, 사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많은 건 매한가지입니다. 그래도 내 가게는 이렇다고 규정할 수 있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있죠. 그게 뭐든 어떻습니까. 사실 꼭 개연성이 있어야만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일단 맛만 좋으면 되죠, 뭐. 실제로 안에 손님이 꽤 있었습니다.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 그렇다면 맛있는 집이다!’라는 직관적 추론에 내적 혼란은 이내 잦아들었습니다.


터널을 지나 밖을 나오니 본격적으로 모래내 시장이 시작됐습니다. 오히려 이 안쪽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강아지들도 할 게 없는지 나른한 표정으로 하품만 해댔죠. 바로 뒤에는 아파트 신축 현장이었어요. 터파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할머니들이 공사장 가림막에 옷가지를 걸어놓고 팔고 계셨어요. 그 위태로운 모습이 마치 시장의 미래처럼 보였습니다. 아마 가재울 뉴타운 사업의 연장이겠죠. 가재울이라면 가재가 있는 개울이라는 뜻일 텐데. 당연한 얘기지만 그 어디에서도 가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어요. 순간 가재울에 지어진 아파트들의 육중함이 위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마치 산비탈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아파트들이 평지로 밀려 내려오는 모양새 같았죠. 그렇게 평지로 내려와 오래된 풍경들까지 거칠게 밀어낼 테고요. 터파기 공사가 끝나고 새 건물이 들어서면 지금의 모래내 시장은 더 생경한 풍경에 둘러싸일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통일된 풍경을 방해하는 걸림돌 같은 곳이 될 수도 있고요.


다시 큰길로 나왔습니다. 홍제천을 건넜습니다. 가좌동에서 연희동 방면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곳이죠. 홍제천을 건너 버스정류장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조용해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갔습니다. 날이 너무 더워 근처 구멍가게에서 소다 맛 아이스크림 ‘뽕따’를 샀습니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냉각수 삼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교통체증으로 시끄러운 연희로에 비해 바로 옆 주택가는 굉장히 조용했습니다. 비탈길에 있다는 것만 빼면 굉장히 살기 좋아 보였어요. 골목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가파른 비탈길이 보였습니다. 숲길이었어요. 그늘이 시원해 보여 일단 발길을 옮겼습니다. 더운 날씨에 발길이 무거웠지만 아이스크림으로 채워진 당분의 힘을 믿고 일단 올라갔죠. 주차된 차들이 아슬아슬했어요. 왜 어떤 집들은 산비탈에 지어져야만 하는 걸까요. 올라가니 숲길이 아니라 어린이 놀이터였어요. 놀이터라니. 아이들은 대체 여기를 어떻게 올라가는 걸까요. 아이들의 힘이란 늘 상상 이상입니다.


여기 오니 주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촌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도로와 그 밑의 주택가들을 전부 내려다볼 수 있었어요. 평소에 홍제천을 지나올 때에는 고가도로의 정체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바라보니 그게 외곽순환고속도로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도로는 교통정체로 오도 가도 못하는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바로 아래 주택가들은 서울의 인구밀도를 상징하듯 숨 막히게 붙어 있었습니다. 문득 자취 중인 애인의 오피스텔도 같이 생각났어요. 처음엔 채광이 잘 돼 계약한 원룸이었는데, 2년 전 새로운 건물이 바로 앞에 세워졌습니다. 같이 점심밥을 먹고 있는데 바로 맞은편 건물에서 철근을 올리는 인부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죠. 지금 그 자리에는 창문이 하나 뚫려 있습니다. 무심코 창문이라도 열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쩌나 신경이 곤두서기도 합니다. 그건 맞은편 집에 사는 그분도 마찬가지겠죠. 어쩌다 우리는 벽 하나, 건물 하나 사이를 두고 이렇게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서울에서 산다는 건, 그 기이한 인연과도 익숙해져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아이스크림 냄새를 맡은 개미들이 제 발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개미가 다리를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서둘러 놀이터를 내려왔어요.



그렇게 동네를 벗어나 큰길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마주한 버스정류장에 ‘연희 104’ 고지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렇다면 여기가 지금 연희동인가 봅니다. 그리고 제가 방금 내려온 곳이 ‘104 고지’의 일부였겠군요. 놀이터 뒤편 공원에 있는 구릉 말고는 이곳에 고지라고는 전혀 없었거든요. 지형을 곱씹어보니 작전계획상 서울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점령해야 할 곳이었을 겁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의 특성상 남쪽에서 강을 넘어 바로 중심가로 진출하면 사방에서 포격을 당할 테니까요. 이 고지는 서울로 향하는 성산로를 장악하는 동시에 인왕산 자락을 넘어 사직동으로 진출하는 아군들을 엄호하는 데 필수적인 장소였을 겁니다. 그만큼 이곳에서의 전투는 치열했을 테고요. 나른한 휴식공간이 과거에는 지옥이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2000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은 늘 새로운 땅을 개척해야만 했습니다. 그리스 반도 대부분이 척박한 산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공동체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였죠.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지중해 연안 곳곳의 미개척지를 점유해 농토를 일구거나 무역 거점을 확보해야만 했습니다. 공동체의 필요성에 의해 도시국가의 청년들은 시칠리아와 북아프리카, 아나톨리아 각지에서 타지 생활을 견뎌내야 했죠. 처음에는 도시국가가 청년들을 독려하는 식으로 사업을 진행했지만 이내 징병제에 가깝게 변해갑니다. 떠나려 하지 않는 이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죠. 정착에 성공하면 일대의 땅을 모두 주겠다는 공약을 걸었음에도 참여도가 저조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수년을 살아내야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다른 민족들에게 공격을 당해도 본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요. 항해 도중에 풍랑을 만나 몰살당할 수도 있었죠. 도시국가의 청년들에게 해외 개척지로 떠난다는 건 곧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그 희생 덕에 몇몇 도시국가들은 오랜 시간 지중해의 무역로를 장악하며 번영을 누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의 영광보다 청년들이 느꼈을 그 주저함에 더 마음이 갑니다. 후세 사람들은 지중해 곳곳에 남아있는 고대 그리스의 찬란한 문명에 찬사를 보낼 뿐, 당시의 청년들이 느꼈을 고민이나 두려움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니까요. 전국 곳곳에 세워진 한국전쟁 전적지들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전적비에는 늘 언제 어디서 전투를 벌여 몇 명의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뒀다는 이야기가 전부죠. 당연히 그 업적 뒤에는 망설임과 두려움에 압도당한 개개인의 인생이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기계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공동체의 필요성에 의해 하얗게 타버린 개인의 인생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들은 있으니까요.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압박이 어떤 크기의 두려움인지를 상상할 때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에 한 발 더 가까워 질 겁니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신촌 방면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경의선 철길 방음벽에 능소화 덩굴이 잔뜩 매달려 있었어요. 문득 열차의 진동과 소음을 이겨내며 살아내는 덩굴들이 고단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꽃들은 정말 예뻤어요. 어쩌면 사는 건 고달픈 일의 연속일 겁니다. 하지만 그저 살아낼 뿐인데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 덩굴처럼요.


어느 순간에 본 아름다운 순간들이 의 동력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건 어떤 풍경이기도 하고, 또는 누군가의 모습이기도 하죠. 누군가가 저를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끼기도 할까요? 그렇다면 저는 아마 가진 게 많은 사람일 겁니다. 비록 존재감은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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