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고역에서 보광동까지 걸었습니다

by 일로

잠시 경의선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경의선이라고 하면 고양시와 파주시에 사시는 분들께서는 할 이야기가 많으실 겁니다. 출퇴근 시간 연착의 아이콘. 화물열차와 ktx를 먼저 보내주기 위해 배차간격을 20분 늦춰주는 배려의 화신. 한밤 중 날아드는 벌레들은 무료로 태워주면서 사람에게는 요금을 받는 생태 친화적 교통수단 등등 말이죠(믿기 어렵겠지만 한 번은 백마역에서 탄 사마귀가 대곡역에서 내리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실 단점이 더 많지만) 단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체감하기에 경의선이 가장 좋은 점은 서울의 강변을 따라 운행한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용산구를 천천히 조망하면서 올 수 있죠. 때마침 커브길 구간이 있어서 천천히 도시의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절묘한 거리에서 용산 시내를 보여줍니다. 용산에서 이촌역을 지나 옥수까지 다다르는 동안 도심의 풍경을 보면서 오는 것도 괜찮은 경험입니다. 중간에 내려서 옥수까지 이어진 한강 산책로를 통해 걸어가는 것도 좋죠. 물론 이 모든 낭만은 출퇴근이라는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때에만 가능하겠지만요.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그것이 노동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이니까요.


오늘은 서빙고에 내렸습니다. 역사에서 나오니 살짝 당황했습니다. 바로 맞은편 미군기지의 육중함에 당황하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당황스러웠어요. 미군기지로 향하는 철길이 하나 더 있었거든요. 철길은 기지 내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외부인의 진입을 막는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고요. 도로에서 기지로 이어지는 철길의 폭 만큼만 가드레일이 뚫려 있는 모습이 생소하고 기이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물자 수송을 위해 놓인 철로라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사실일까 생각했죠. 사실 경의선이 대륙 침략을 위해 신의주부터 용산에 부설된 걸 생각하면 진짜인 듯 싶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넌 뒤 큰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용산구 장애인 커뮤니티센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옆에 이곳이 서빙고 터였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어요. 여기서 들어온 얼음으로 주변의 정육점이나 생선가게들은 더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는 상품의 신선도는 물론 유통체계에도 영향을 미쳤겠죠. 당연히 얼음 생산의 시작점인 용산포와 한강진이 조선 제일의 나루터였던 건 그래서였을 겁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강의 얼음을 보관하던 과거의 흔적들은 현재 모두 사라졌습니다. 냉장고가 보급된 시대에서는 더 이상 강에서 얼음을 잘라 올 필요가 없으니까요. 세상은 여전히 모순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일상적으로 얼음을 쓸 만큼은 발전한 모양입니다.


19세기에만 해도 얼음을 요리에 쓴다는 건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은 집 근처에 전용 얼음 창고를 만들기도 했죠. 사계절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요. 평범한 사람들에게 얼음이 들어간 디저트는 형태조차 짐작하기 힘든 먼 나라의 진귀한 음식이었을 겁니다. 다른 누군가는 이걸 팔면 팔자를 고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고요. 그런 욕망들은 때로 인간의 역사를 바꿔 놓기도 합니다. 더 나은 냉장시설을 설계하고 더 나은 냉매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겠죠. 의도치 못한 변수가 이제껏 쌓아 놓은 노력들을 무너뜨리는 순간도 있었을 겁니다. 더불어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책을 세우길 반복했겠죠. 그렇게 일상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더 풍요롭고 편리해집니다. ‘이래야 한다’는 말뿐인 당위들이 수십만 개의 기사와 SNS로 쏟아져 나오는 이 순간에도 다른 누군가는 현실에서 드러난 결함들을 땀 흘려 고치고 있습니다. 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건 그런 것들이죠. 지면 속 공허한 말들이 아니고요.



큰길을 따라가니 교각으로 들어오니 이게 반포대교의 북단이 보였습니다. 야경이 보고 싶은데 집 밖으로 나가기 귀찮은 날에는 반포대교 야경 cctv를 보면서 힐링하는 게 일상의 일부인지라 괜히 반가웠습니다. 저기서 손을 흔들면 유튜브에 내가 나올까 궁금했습니다. 다리 한가운데서 동쪽 방향으로 손을 흔들고 그 모습을 유튜브로 보면 재밌겠다 싶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 보였거든요. 언덕길을 올라 반포대교의 시작 지점에 도달하니 새삼스레 반포대교가 꽤 높은 지점에서 시작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옛날 사람들은 나루터에 내려 한양으로 오려면 짐을 지고 이 구릉을 맨몸으로 오갔어야 했겠죠. 차량을 이용해 서울 남부에서 도심으로 바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산에 터널을 내야 했을 겁니다. 그게 반포대교, 남산터널, 종로구를 잇는 의 시작이었겠죠. 그러고 보니 이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바로 이태원입니다. 이태원 자체가 남산 중턱에 위치한 동네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늘 지하철로만 찾아가니 지리적인 감각이 떨어진 탓에 이태원이 남산의 일부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거죠. 이태원과 남산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대로 바로 옆 연립주택 단지를 관통해 동쪽 방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쭉 가면 바로 한남역이 나오겠지 싶었거든요. 그냥 여느 동네의 골목길을 생각하고 접어들었는데, 바로 후회했습니다. 지도 앱을 켜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복잡한 길이었어요. 왕복 8차선 대로와 차 한 대 지나가기 힘든 골목길이 공존하는 동네가 한 곳에 공존하다니.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바로 막다른 길이 나옵니다. 무슨 자신감으로 무조건 동쪽으로 가면 길이 나오리라 생각한 걸까요. 가다 보면 막다른 길과 마주해 돌아 나오기를 세네 번 반복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주어진 체력 이상으로 동네를 구석구석 다녀야만 했습니다. ‘슈퍼마켙’이라는 맞춤법의 구멍가게와 천자문을 읽혀주는 서당도 볼 수 있었고요.

좁다란 골목에 구멍가게와 세탁소 복덕방이 콕콕 박힌 조용한 동네였습니다. 외지인을 끌어 모으기 위한 카페나 음식점 하나 없이 오직 주민들이 필요한 상점들과 편의시설들만 있었어요. 그러다 노인정을 보게 됐는데 생각보다 한강이 잘 보여서 놀랐어요. 동네 곳곳에 좋은 뷰 포인트들이 많았습니다.


이곳도 시간이 흐르면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들이 생길까요? 이태원 옆 해방촌과 경리단길이 그랬던 것처럼요. 잘 모르겠습니다. 흔히 동네 상권을 일궈놓은 상인들이 인상된 임대료로 인해 떠나는 것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부르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민들이 하나 둘 떠나는 시점부터 이미 시작되죠. 시설 낙후나 주거비용 상승으로 주민들이 동네를 떠난 자리를 임대인들이 가게로 내 주기 시작하면서 상권이 조성되고, 그로 인해 임대료가 추가로 상승하면서 상인들까지 떠나는 식으로요. 상권이 형성된다는 건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상당 부분 진행됐음을 의미합니다. 진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서는 상권 형성 단계 전에 원주민들이 동네를 떠나는지 여부부터 잘 살펴야 하는 이유죠. 주민들이 떠난 동네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니까요. 이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삶의 연속성입니다. 동네에 돈이 돌고 활기가 생기는 건 그 나름대로 좋은 일이지만, 모든 일상이 변화 없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역시 중요합니다. 아무리 도전적인 삶을 산다 한들 먹고 쉬는 공간까지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일 순 없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큰길로 다시 접어들었어요. 이번에는 도로 표지판을 따라 보광동 주민센터 방향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습니다. 왕복 2차선 도로였는데, 좌판을 벌인 마트와 좁은 보도 탓에 사람도 차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곳을 지나가는 마을버스 기사님들이 존경스러워 보일 지경이었어요. 표지판을 보니 이 길을 따라가면 바로 이태원 중심가와 이어져 있는 듯했습니다. 이태원이 소비와 편의시설들이 밀집한 곳이라면, 이곳은 이태원을 터전삼아 살고 있는 주민들의 오롯한 삶의 공간 같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히잡을 쓰거나 다른 의상을 입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보인다는 것 정도랄까요. 히잡을 둘러 쓴 아주머니 한 분이 반찬가게에서 고추무침과 멸치볶음을 들어보며 구매를 망설이고 있었어요. 그러다 “사모님, 이거 주세요”라면서 고추무침 두 개를 계산대에 올려놨습니다. 그리고 이내 계산을 치렀습니다. 모국어로 통화를 하면서요. 문득 이곳이 이태원보다 더 이태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보광동 그 자체의 모습일지도 모르죠.


다시 큰길로 나와 평지로 내려오니 다시 남산의 자락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커다란 교회가 하나 눈에 들어왔어요. 그 바로 앞에는 남향으로 세워진 오래된 아파트들이 강을 따라 늘어서 있었습니다.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산 중턱에는 더 많은 걸 내려다보는 저택들이 늘어서 있을 겁니다. 하와이 느낌의 파라솔을 꽂은 루프탑 카페들도 있겠죠. 과거에도 현재에도, 강이 보이는 남산엔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은 크고 작은 욕망들이 가득합니다. 마치 수많은 타인들과 부대껴야 하는 지상의 삶과 거리를 두려는 듯이요. 한남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그 의미를 곱씹다 문득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떠올렸습니다. 거기서 주인공 준영은 서울의 야경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애인 연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도시 야경을 바라볼 때마다 하느님은 스카이라운지의 높이쯤에 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 여기서는 세상이 그저 바라보기에 딱 알맞도록 정말 근사하게만 보이거든.”


모두가 사는 게 조금은 더 근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만큼 나아져야 근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지겠만 말이죠.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기어이 높은 곳에 올라서 무언가를 내려다 보려 할 필요 없는 정도였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큰 바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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