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역에서 러시아거리까지 걸었습니다

by 일로

힙합 좋아하시나요? 사실 제 영혼은 헤비메탈에 있지만, 힙합도 자주 듣습니다. 크로스오버가 유행하던 2000년대에 사춘기를 보낸 덕에 록과 힙합을 둘 다 장벽 없이 들을 수 있게 됐죠. 선입견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이 음악은 대체 왜 이렇게 자기 자랑이 심한가. 꼭 돈 자랑을 비싼 차 위에 올라가 허공에 돈을 뿌리는 식으로 해야 하나 싶었죠. 헤비메탈 뮤지션들은 다른 아티스트를 향해 “네 목소리는 변기에 거대한 똥을 밀어 넣는 것 같아”라고 말할 줄은 알아도 자기 자랑을 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처음에는 그 자랑들이 굉장히 이질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힙합을 듣는 친구에게 “얘네들은 왜 이렇게 자랑질이 심하냐?”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죠. 그때 “자신이 얼마나 힙합이라는 문화 안에서 멋지게 살아가는가를 증명하는 데 있으니까”라는 대답을 듣자 자랑질이 주는 거부감이 한 방에 사라졌습니다. 가난 속에서 끈질기게 랩을 해 성공한 것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근면하게 노동하며 힙합이라는 문화 안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거죠. 모기가 한쪽 눈두덩을 물어 팅팅 부었어도 자기 얼굴에서 뭔가 스웨그(Swag)한 느낌이 든다면, 그 또한 힙합일 수 있습니다. 허세는 싫지만 견고한 자존감과 자기 긍정은 언제나 사랑스럽습니다. 제게 있어 힙합이란 그런 음악이고, 더불어 그런 자존감을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아티스트들을 좋아합니다.


러시안 카페에서 먹은 메도빅. 말장난같지만 이곳의 커피는 '아메리카노'



왜 뜬금없이 힙합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가 근처이기 때문인지 정말 옷을 독특하게 입는 분들을 여럿 지나쳤거든요. “와 정말 옷 잘 입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사람들과 “저건 옷을 잘 입은 건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는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습니다. 순간 갑자기 힙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옷을 잘 입는다는 건 센스 이전에 잘 단련된 자기 긍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제가 가질 수 없는 장점들이라 독특한 스타일을 뽐내는 이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저는 옷을 잘 못 입거든요. 패셔니스타가 되지 못한 데에는 사실 동대문 밀리오레 2층 매장에서 세 보이는 형에게 아스널 로고가 그려진 싸구려 티셔츠 두 장을 강매당한 경험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심지어 저는 그때 토트넘 팬이었는데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엉망진창인 옷이었는데 말이죠. “이 티셔츠 원래 35(35,000원) 받거든? 현금가로 27(27,000원)에 줄게" "오늘 진짜 형 남는 거 없다" "우리가 너한테 잘되라고 하는 거잖아, 응?”이라는 말을 듣고 있을 때에는 이미 제 손에는 티셔츠 두벌이 들려 있었습니다. ATM에 돈 뽑으러 가야 한다는 핑계도 “형이랑 같이 가자. 나도 아래층 내려갈 일 있어”라는 말로 원천 봉쇄됐죠. 좀 더 긍정적으로 쇼핑을 경험했다면 지금보다 옷을 좀 더 잘 입지 않았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자기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하나를 더 터득했을지도 모르죠. 해서 저는 DDP를 피해 좁은 샛길로 들어갔습니다. 옷을 보러 온 건 아니니까요.


광희동 샛길로 들어서니 익선동의 뒷골목이 연상될 만큼 좁은 골목들이 많아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같은 곳을 돌고 막힌 곳을 돌아갈 때마다 낯선 인상의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키릴 문자와 적힌 영리 비자발급 연장과 취업알선 사무소가 건물마다 두세 곳 씩 자리 잡고 있었죠.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국제전화 카드를 파는 가게들과 환전소도 있고요. 역 근처에 러시아 거리가 있다는데 이곳이었나 봅니다. 바로 옆 동대문에서 옷을 떼다 고국에 되파는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이 이 거리의 시작이었을 겁니다. 소규모 중개무역을 하면서 파생된 행정적 일처리를 위해서 안정적으로 상주할 공간이 필요했겠죠. 주변에 고국의 향수를 달랠 만한 식당도 들어오고요. 그건 그렇고 ATM까지 따라가 옷값을 받아내던 그 양아치 형들은 효도르를 닮은 러시아 상인들에게도 그렇게 티셔츠를 팔았을까요?


이제 배가 슬슬 고파 옵니다. 어디에서 뭘 먹어야 맛있을까 반경 20미터를 서성대는데, 골목 안쪽에 작게 ‘사마리칸트‘라고 쓴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실크로드에 관한 환상이 있거든요. 게다가 그 환상을 부추기는 빵들이 문 앞에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지명이 들어간 외국 식당들을 보면 괜히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태원의 ‘카사블랑카’나 ‘앙카라 피크닉’ 같은 가게들 말이죠. 그저 지명을 써 놨을 뿐이지만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보면 자연스레 간판 속 지역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동시에 생각의 흐름은 음식에 대한 기원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인류가 먹게 된 음식들은 모두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이용하고 극복해온 결과물이니까요. 기대와는 맛이 다른 음식들도 탄생의 기원을 생각하면 즐겁게 먹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 터키 식당에서 아이란을 마실 때가 그랬어요. 한 모금 마시자마자 물 탄 막걸리 같은 맛에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다 '물이 귀한 중앙아시아에서는 유제품이 가장 흔한 음료여서가 아니었을까' '육류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으니 소화하기 위해서는 발효유를 일상적으로 먹어야만 했을 거야'라고 생각하니 그 당황스러운 맛도 점점 괜찮아졌습니다. 지금은 터키 식당에 가면 당연히 시키는 음료죠.


일단은 슈르파라고 부르는 양고기 수프, 리포슈카라 부르는 기본 빵, 그리고 만티라는 만두요리를 시켰습니다. 벽에는 사마르칸트의 전경을 물감으로 그린듯한 벽지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티브이에서는 우즈베키스탄 가수들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었어요. 결정적으로 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 한국인은 저뿐이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사마르칸트나 타슈켄트 어딘가에는 이와 똑같은 식당이 분명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은 존재 자체로 존경스럽습니다. 이질적인 사회에 연고 없이 뛰어들어 가스관과 수도관을 연결한 뒤, 고국의 식재료를 들어와 고국의 음식을 만듭니다.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와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른 사회 안에서 구현하죠. 그렇게 하나의 영역이 구축됩니다. 하나의 가게가 곧 거리가 되고 이내 블록이 되죠. 저마다의 밥벌이가 이끌어내는 추동력이란 늘 놀랍습니다. 보도블럭 사이의 흙먼지를 토양 삼아 자라나는 풀꽃들 처럼 어디서든 생존의 길을 개척해냅니다.


그런 생각들을 할 동안 주문한 식사가 나왔습니다. 양고기 수프에는 당근과 양파가 들어간 맑은 국물에 뼈가 붙은 고기 한 덩이가 들어있었습니다. 단출한 재료 구성이지만 절대 가볍게 볼 수 없었어요. 어느 부위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뼈도 양고기도 크고 묵직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먹은 돼지갈비 수프 바쿠테가 라이트급이라면 우즈베키스탄 양고기 수프는 헤비급, 아니 무제한급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일단 국물을 먼저 떠서 먹었습니다. 간도 적절했고 어떤 기교도 없이 단조로운 조리법에서 나오는 재료의 단맛들이 느껴졌습니다. 양고기의 육향이 국물에 스며든 것도 좋았습니다. 오래된 고기에서 나오는 큼큼한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양고기에서 나는 육향을 잡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 음식에서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향을 좋아합니다. 오래된 고기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와 가축들마다 갖고 있는 저마다의 육향은 분명 다릅니다. 소에서는 당연히 소고기 냄새가 나고 돼지에서는 당연히 돼지고기 냄새가 납니다. 고깃집에서 날아오는 삼겹살 냄새는 입에 침이 고이게끔 합니다. 아무도 그걸 누린내라고 하지 않죠. 양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조리된 양고기의 향기는 식욕을 끌어올립니다. 겉으로 봐선 굉장히 뻑뻑해 보였지만 포크를 대 보니 잘 삶은 돼지 등뼈 같이 부드러웠어요.


탐색전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추가로 시킨 빵을 찢어서 수프 위에 올려 먹었습니다. 마늘과 후추가 들어간 당근 샐러드랑 함께 먹으니 영락없는 국밥에 깍두기입니다. 터키에서 즐겨먹는 베이란 초르바스도 생각납니다. 잠시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가 먹는 것은 국밥의 초기 버전일까. 찢은 빵을 수프에 말아먹는 유목민의 식습관이 고구려와 투르크족의 교류를 통해서, 또는 원나라 간섭기에 몽골족으로부터 전파된 것은 아닌가. 어쩌면 두 민족 다 고깃국물에 탄수화물을 담가먹는 게 맛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죠. 문화가 조금 다르지만 우린 결국 같은 호모 사피엔스니까요. 메뉴엔 없지만 공깃밥을 추가로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보려다 이내 관뒀습니다.


맛이 궁금했던 만티도 나왔습니다. 만두에 요거트가 뿌려져 나와서 당황스러웠는데, 먹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요거트의 산미 때문인지 고기뿐인 만두를 먹는데도 크게 물리진 않았어요. 그보다 만두도 헤비급입니다. 만두 소에 고기가 가득합니다. 채소의 식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어요. 만두를 먹는다기보다 육즙이 가득한 함박스테이크를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음식은 대체적으로 비슷합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샤슬릭이 러시아에도 있고 카자흐스탄에도 있습니다. 화덕에 단단한 빵을 구워 수프와 함께 먹고, 식사에는 늘 고기 요리와 요거트가 등장하죠. 중앙아시아의 그 넓은 땅이 전부 투르크족의 활동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이 군사적으로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투르크족이 국경이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당시 투르크족은 하늘 아래 내가 땅을 딛고 살아가는 곳을 자신의 나라라 믿으며 살았습니다. 유목민인 그들은 양과 말이 살기 좋다면야 그곳이 어디든 중요치 않았을 겁니다. 따라서 영토라는 단어는 그들의 삶과 문화를 제대로 표현하는 데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영토라는 단어는 근대적 개념이기 때문이죠. 그들의 영토는 칼로 잘라놓은 듯한 국경선과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곳을 향해 이동하든 그들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을 겁니다. 지금의 세계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자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식사를 자유의 맛이라 멋대로 규정했습니다. 러시아 아무르강부터 터키 아나톨리아를 아우르는 유목민족의 맛! 그들의 음식을 마주하고 있는 경기도 거주 농경민족! 식사 내내 제 위장은 유라시아 초원을 유랑했습니다. 칼로리가 높은 식사 때문인지 가게 문을 나설 때 발걸음에 힘이 실린 기분이었어요.


앞으로의 유랑에서는 지금보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가고 싶은 곳을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식당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으면 좋겠습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거나 기대보다 맛없는 메뉴를 골랐을 때도 자책하지 말고요. 결과가 어떻든 자신의 선택을 긍정할 수 있다면, 그때보다는 좀 더 스웨그한 인간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자기 긍정과 자유는 많은 것이 맞닿아 있는 같습니다. 새싹처럼 올라오는 자기긍정의 바이브를 어떤 어떻게 키울지 잠시 고민하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켄드릭 라마의 <I>를 틀었습니다. 자, 이제 다시 걸어 볼까요?


I love myself

난 나를 사랑해


Illuminated by the hand of God, boy ain't that high

신의 손으로 빛이 밝혀지네, 진짜 고귀하지


I love myself

난 나를 사랑해


One day at a time, uhh

하루에 한 걸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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