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9. 셀프서비스, 그 양날의 검(2)
최근에 아내의 지인 결혼식장에 갔다. 서울에 위치한 상당한 규모의 예식장이었다. 지하를 포함한 4층짜리 건물에 두 개의 식장이 있었다. 좀 주책맞지만, 이렇게 큰 결혼식장에 가면 음식에 대한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결혼식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 음식들이 있지 않은가. 불어 터진 메밀국수랑 참기름 맛 나는 육회 같은 것들(나는 왜 이런 게 먹고 싶을까?). 안타깝게도 식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불어 터진 면도, 참기름 맛만 나는 육회도 없었다. 가열하지 않은 음식들 모두 한결같이 싱싱했다. 갈비와 스테이크는 고루 익었고 육즙의 손실도 적었다. 나도 아내도 자리에 앉아 무섭게 접시를 비웠다.
벌써 네 번째 리필. ‘오, 여기 맛있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남자아이 하나가 내가 든 접시 밑으로 지나갔다. 전속력으로. 접시 위에는 잔치국수가 담겨 있었다. 국물에서 김이 꽤 많이 나는 걸 보면 못해도 70도 이상은 됐을 것이다. 이게 아이한테 쏟아졌다면 아마 내 인생은 다른 경로로 흘렀을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나는 외식업 종사자, 경력 11년의 서버다. 어떤 상황에서도 팔과 접시의 각도는 90도로 유지하고, 접시와 명치의 간격을 3~5cm로 유지한다. 접시나 쟁반을 잡을 때는 중심에서 2~3cm 정도 바깥쪽을 잡는다. 그래야 혹시 모를 충돌이 벌어졌을 때 음식이 내 쪽으로 쏟아진다. 그렇다. 내 직업이 나를 살렸다. 아이도 살렸다. 음식도 멀쩡하다. 내가 11년간 식당 일을 해왔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감사했다.
뷔페는 여러 음식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서빙은 해 주지 않는다. 게다가 내부가 좀 넓은가. 광장처럼 넓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때로 자리를 찾지 못해 헤맨다. 이 과정에서 개개인의 동선이 겹치고 뒤섞인다. 심지어 가족 단위 고객이 많다. 부모가 음식을 접시에 담는 동안 아이들은 통제에서 벗어난다. 그 혼란한 과정에서 사고는 필연적으로 벌어진다. 뷔페를 위시한 셀프서비스의 치명적 단점이다.
뷔페나 샐러드 바에 가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평소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라는 얘기 또한 아니다. 사실 그건 손님이 생각할 게 아니다. 손님은 책임자가 설계한 구조 안에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고민은 일차적으로 업장의 몫이다. 단순히 뷔페만의 얘기는 아니다. 비용 절감 등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자 많은 가게들이 셀프서비스 전환을 고민한다. 대형 식당은 말할 것도 없고, 5인 이하 사업장들도 셀프서비스로 운영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우리라고 고민을 안 했을까.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셀프서비스로 바꾸면 노동강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성수기에 손님이 늘어도 인건비를 추가로 들일 필요가 없다. 마진율도 그만큼 늘어난다. 매달 나가는 카드수수료도 아까운 마당에 이 정도 절약이면 눈이 솔깃해진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안전을 위한 필수 비용을 빼버린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만약 햄버거나 타코, 포케 전문점 같이 국물 없는 차가운 메뉴가 주력이라면 셀프서비스로 충분히 바꿔 볼 법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매장 환경을 고려했을 때) 실익보다는 위험이 더 커 보였다. 특히 이 좁은 매장에서 손님들끼리 동선이 뒤엉키면 위험하다. 그 넓은 뷔페 홀에서도 사고가 날 뻔하지 않았던가. 그런 일이 흔하지는 않겠지만 단 한 건이라도 사고가 터지면 감당하기 힘들다. 일단 벌어지면 치명적이니 사고다. 셀프서비스 매장에선 점원과 손님 간의 사고는 잘 벌어지지 않는다. 체감컨대 손님 대 손님의 사고 확률이 더 높다. 이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이유든 매장에서 손님이 다치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 공간의 책임자로서 자책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그게 아이들이라면 평생의 짐이 될 수도 있다. 비단 법적 책임 때문만은 아니다. 잠깐의 실수로 아이들이 평생 갈 흉터를 안고 살아가면 부모 마음이 어떻겠는가. 나는 그저 모든 손님들이 즐겁게 식사를 하고 무사히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그게 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 매장에서 셀프서비스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정도가 정답이다. 손님이 앉은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선이다. 고객의 안전 확보와 편의를 위해서라도. 하루 무사히 넘겼다고 그다음 날까지 안전하란 법은 없으니까.
하인리히의 법칙,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사고가 터지기 전에 약 300번의 사소한 징후가 나타난다는 이론 말이다. 비용을 이유로 위험요소를 그냥 두면 반드시 문제가 터진다. 개업 300일째 문제가 터질 수도 있고, 300명째 손님을 받을 때 문제가 터질 수도 있다. 창업이 처음이라면 별로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촉이 생긴다. ‘오늘 좀 싸한데?’ 싶으면 불과 얼마 뒤에 반갑지 않은 일이 생긴다.
그럼에도 매장을 셀프서비스로 운영하고 싶을 때에는 최대한 넓게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주 통로 너비를 최소 1.5미터 이상 둬야 서로 부대끼지 않을 정도의 양방향 통로가 생긴다. 이보다 더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손님들이 수시로 일어날 것이므로 테이블과 테이블 간의 간격도 더 넓히는 게 좋다.
더불어 보호자에게 아이들이 자리에서 떠나지 않도록 주지시켜야 한다. 손님들이 떨어뜨린 음식물이나 액체가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청소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접시를 든 누군가가 그걸 밟는 순간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수시로 매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셀프서비스를 한다고 다른 부분에 더 전념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셀프서비스는 효율적이지 않다. 테이블 20개 이하 매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실익은 둘째치고 위험 요소를 증폭시키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지금 당신이 고민할 게 이것뿐인가? 지금 이 시점에 이걸 고민하는 게 맞는가? 이게 아니라도 골치 아픈 일들이 당신 앞에 가득할 것이다. 식당 일은 본래 불확실의 연속이니까. 배달 포스가 터져서 그날 장사를 망칠 수도 있고, 갑자기 튀김기가 망가져 며칠간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에어컨이 제 기능을 못해서 손님들이 아우성인데 AS센터에서는 이틀 뒤에나 방문이 가능하다고 할 때도 생긴다. 다쳤을 때 쓸 구급약은 잘 구비돼 있는가? 소화기 기압은 정상인가? 전기 배선은 언제 점검을 받았나? 식재료들은 안전하게 잘 관리되고 있는가? 나는 이 가게의 위험요소를 어느 정도로 통제하고 있는가?
마음 편하게 장사하고 싶다면 비용절감 노력은 잠시 후순위로 놓자. 그리고 가게의 위험요소를 최대한 줄이는 데 집중하자. 셀프서비스 도입은 이러한 당신의 불확실성을 줄이기는커녕 키울 가능성이 높다. 장사는 그렇다 치고 일단 사람이 제 명에 살아야 할 게 아닌가. 몸도 마음도 편해야 무슨 일이든 한다. 그 안정성을 토대로 일을 해야 궤도에 오른다. 나중에 일이 터지면 그때는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