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8. 셀프서비스, 그 양날의 검
고백, 아니 고발할 게 하나 있다.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동족을 향한 배신이라 욕해도 해야겠다. 내부고발이라 해도 할 말 없다. 업보는 달게 받겠다. 더 뜸 들이지 않고 말하련다. 화장실 말이다. 대다수의 남자들이 볼일을 보고 손을 잘 안 씻는다. 여자들은 화장실에서 어떤지 모르겠다. 남자인 내가 화장실에 가면 열 명 중에 다섯 명은 손을 아예 안 씻고 나간다. 나머지 두세 명은 손에 물만 묻히고 나간다. 나머지 둘 정도만 손에 비누나 세정제를 묻혀서 30초 이상 씻는다.
극히 일부만 그런다고 덮어 주고 싶은데, 눈이 달린 이상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개인 체감의 오류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찾아보니 나만 이렇게 느낀 건 아닌가 보다. 2023년에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가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세계 보건의 날(10월 15일)’을 맞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나 자체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남성 100명을 관찰했는데 약 37명이 아예 손을 씻지 않았다. 3~5초가량 물만 댄 경우는 약 52명이었다. 비누를 이용해 꼼꼼히 손을 씻은 비율은 11명에 불과했다. 안타깝게도 대조군인 여성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조사자가 남성 기자 본인, 단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조사방식에 한계가 있지만 일단 나만 이렇게 체감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내 말에 따르면, 여자들도 손을 안 씻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테이블에 젓가락통을 두는 식당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식당 화장실에서도 손을 안 씻고 나가는 사람들을 여러 명 봤다. 그 손으로 젓가락통을 뒤적이는 모습도 당연히 봤다. 팬데믹이 끝난 직후 체인 본사에서 셀프서비스로 바꿔 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이 왔을 때 바로 거절한 이유다.
사물에 대한 접촉 빈도수와 세균 감염 위험성은 비례 관계다. 한 사람이 특정 물건을 여러 번 만진다면, 이건 그 사람 한 명만 조심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여러 명이 특정한 사물을 여러 번 만질 때다. 셀프서비스로 가게를 운영하면 손님들의 공용 식기 및 반찬통, 정수기의 접촉 빈도수가 현저히 높아진다. 이 위험성을 감수하고 셀프서비스를 하겠다면 청소와 소독을 이전보다 더 자주, 더 많이 해야 한다. 최소한 수저 통의 식기를 포장지로 감싸주는 것만 해 줘도 한결 나을 텐데 말이다(요즘 이런 가게들이 늘어나서 다행이다).
사실 이는 형평성의 문제와도 결부된다. 가게에서 관리해야 할 위생을 개개인의 자율로 맡겨두면 평소에 청결한 손님들이 피해를 입는다. 그냥 불결한 걸로 끝나면 다행이다. 그저 밥을 먹으러 왔을 뿐인데 인플루엔자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길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가게가 5성급 호텔의 위생 수준을 갖췄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싫어하는 걸 타인에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배려들이 돌고 돌아 나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쓰는 식기를 우리도 쓴다. 손님들이 먹는 재료를 우리도 먹는다. 손님들이 가는 화장실을 우리도 쓴다. 내가 관리를 게으르게 하면 그 모든 게 다 내 입으로 들어온다. 결국 나의 의무와 나의 안전은 동의어다. 내가 마스크를 쓰는 건 위생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직업 특성상 노출될 수 있는 감기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게는 작은 국가와 같다. 사장은 그 안에서 모두를 위한 통치를 해야 한다. 위생 관련 위험요소로부터 고객과 구성원들을 지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정치학적 수사로 비유하자면 나는 큰 정부 주의자다. 되도록 많은 것들을 내가 관장하고 통제하길 원한다. 이런 맥락에서 셀프서비스는 나에게 민영화와 같다. 나의 수고를 불특정 다수의 자율로 맡겼을 때, 그만큼 가게에서 발생할 위험요소는 증가한다. 많은 이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가게 시스템을 셀프서비스로 돌릴 때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당장에는 효율적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나중에는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