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는 매개자다. 손님의 주문과 요청사항을 주방에 전달한다. 그렇게 나온 메뉴를 다시 테이블로 나른다. 어느 직장에 있든 중간 관리자는 상황 통제 제일 중요하다. 서버도 마찬가지. 여기서 핵심은 일정한 속도로 가게의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일행 세 팀 각각 3인분 씩 주문이 들어오는 것과, 단체 주문 9인분이 들어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건 동네 분식집과 5성급 호텔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모두 똑같다. 심지어 고든 램지도 이렇게 주문이 들어오는 게 싫어서 15분 간격을 두고 예약을 받는다. 오픈 30분 전부터 가게가 열리길 기다리는 손님 수십 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일제히 주문을 쏟아내면 분명 어딘가에서 사달이 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원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가게는 아수라장이 된다.
이런 광경은 주로 비즈니스타운의 새로 생긴 식당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몰아치는 주문에 대한 대처 노하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명해진 맛집들이 ‘변했다’는 소리를 들으며 기울기 시작하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서버가 십 수 개의 주문을 한꺼번에 주방에 던져버리면, 주방 역시 서버가 감당할 수 없는 분량의 메뉴를 일시에 쏟아낸다. 실제로 이 때문에 요리사와 서버가 신경전을 벌이는 곳도 여럿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당연히 음식 상태에도 영향을 받는다. 하필 그 메뉴가 튀김이나 면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음식도 별로인데 서버는 불러도 한참 뒤에나 오고, 조치까지 늦는다면 손님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럼 주방은 같은 음식을 불필요하게 두 번 만들어야 하고, 서버는 바빠 죽겠는데 가만히 서서 손님의 컴플레인을 처리해야 한다. 애초에 서버가 현명하게 판단했다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다. 식당에서 서버는 뇌와 같다. 머리를 안 쓰면 다른 팔다리들이 고생한다. 물론 당신의 팔다리도 마찬가지다.
가게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는 걸 막기 위해서는 서버가 적극적으로 매개자 역할을 해 줘야 한다. 세 팀 이상의 일행이 6인분 이상의 주문을 했다면 각 주문마다 최소 20초 가량의 시차를 두고 주방에 전달해야 한다. 아무리 못해도 튀김기나 면탕기에 재료가 들어가는 모습은 보고 다음 주문을 전달하자. 이는 생산성 이전에 주방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묻지마 식으로 주문서 한 뭉치를 건네주면 ‘너도 한 번 죽어봐라’식으로 메뉴가 쏟아질 게 뻔하다. 주방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음식을 덜 맵게 해 달라거나 특정한 야채를 빼 달라는 요청들이 언제든 들어올 수 있다. 일을 편하게 하고 싶다면 “우동에서 대파 빼 주세요!”라는 말을 주방에 툭 던지고 끝내면 안 된다. 주방에서 알아보기 편하게 주문서에 표시를 해 줘야 한다. 물론 그래도 실수는 생긴다. 몸에 새겨진 습관은 무서워서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행동 수정이 쉽지 않다. 우동에 대파를 빼야 한다고 분명 인지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이미 파 한 수저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꼭 생긴다.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서버는 메뉴가 나오기 전에 (아까 말씀드린 주문, 파 빼셨어요? 같이) 주방에 한 번 더 상기해 줄 필요가 있다. 이러면 꽤 많은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내가 한 발 더 뛰면 식당의 구성원들은 그만큼 일하기가 더 편해진다. 이런 노력들은 생산성 향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료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단체주문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문제없이 소화할 수 있다. 이를테면 9인분의 주문이 들어왔다고 가정하자. 손님마다 원하는 메뉴가 다른 경우가 많기에 이 주문서는 높은 확률로 중구난방일 가능성이 높다. 손님이 서버를 배려하기 위해 정리된 주문서를 건넬 리 없기 때문이다(만약 있다면 무조건 서비스를 제공하길). 이 경우 면류와 튀김류 탕류로 따로 정리한 뒤 주방에 전달하면 실수가 줄어든다. 메뉴가 너무 많다면 주문서를 둘로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키오스크를 통해 나온 주문서도 마찬가지다. 포스 시스템을 쓰며 주문서를 출력할 단말기가 있다면 번거로움은 절대 핑계가 되지 않는다. 언제든지 새로 주문서를 작성한 뒤 취소처리하면 된다. 길어도 1분이면 해낸다.
이런 과정들이 쌓이면 동료들이 점차 나의 판단과 지시를 믿고 따르기 시작한다. 성공적인 조율이 모두를 살린다. 그 과정 속에서 당신은 점차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