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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Dec 05. 2016

촛불로 바꿀 수 있을까?

폭력의 프레임을 깨다

글을 써놓고도 마무리를 못 짓고 계속 끄적거리길 몇 주가 지났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지난달 12일 열린 3차 촛불집회를 지켜보며 감동과 씁쓸함이 교차했다. 거대한 촛불민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분노와 낙담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촛불을 들어야 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야 끝이 날까?
촛불로 바꿀 수 있을까?



비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제주촛불집회 2016년 11월 26일


4차 촛불을 앞두고 있던 주말 한국에 살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친구가 제주로 여행을 왔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잠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 이야기로 넘어갔다. 한국에 살고 있는 방글라데시 사람들도 뉴스를 보다 화가 나 시위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해 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연대 DNA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고 서로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연대 DNA'라고 말한 것은 방글라데시에서는 '하탈'이라고 불리는 연대파업, 동맹휴업을 지칭하는 말이 있는데, 이 하탈이 매우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하탈을 선포한 날이면 직장인들은 직장에 나가지 않고, 가게는 휴업한다. 길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하탈에 동참(?)한다.


물론 방글라데시의 이런 시위 문화가 '좋다, 옳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동참에 물음표를 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본래 연대의 의미를 벗어나 폭력적 시위로 의미를 탈바꿈된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물론 방글라데시의 이런 문화를 내가 단편화하고 일반화하여 정의 내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탈은 전국의 도로, 철도, 수로를 마비시키는 도로 봉쇄와 차량과 관공서에 대한 방화를 하며 거칠게 진행이 되며 엄청난 경제손실과 인명 피해로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 한국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의 실마리를 정치 후진국이라고 하는 방글라데시에서 조금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 다양한 사람들을 흡수시키고 있는 평화로운 집회문화와 엄청난 조직력을 발휘한 힘을 보여준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방글라데시의 시위 문화가 옳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3차 촛불집회 이후 '시위는 시위스러워야 한다.', '비폭력이 강요된 억압되고 저항이 결여된 시위였다'라는 사람들은 더 강한 저항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촛불문화제가 통할까라는 우려, 장기전으로 가다가는 흐지부지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화'를 외치지 않았다면 100만 명의 공감을 모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4차 촛불집회의 한 여고생의 자유 발언이 큰 화제가 됐다. 촛불집회가 극복해야 할 문제점 중 하나로 '비폭력 프레임'이라며 "비폭력 프레임에 갇힐 필요가 절대 없다"라고 지적했다.


"저는 '무조건 폭력시위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다만 필요할 경우에는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돼 있는 저항권을 백번 활용해 국가권력에 불복종을 이끌어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부 언론과 경찰, 박근혜가 원하는 '여기까지만 놀아라'를 극복해야 저희는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 진주외고 3학년 홍수경 학생, 창원시 촛불집회 발언 중


비폭력 프레임을 깬다고 해서 폭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일차원적이고 무서운 생각이다. 그리고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과 시간을 필요로 했지만 폭력은 너무도 쉽게 번진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럼 '비폭력 프레임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우리는 이미 그 장벽을 넘어서지 않았느냐고 답하고 싶다. 비폭력 프레임은 깨졌다고 본다. 국정농단을 규탄하며 노동자는 총파업을 선포했고,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상경투쟁을 시도했다. 대학가에서는 동맹휴학이 번져갔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비공개 서명에 사진기자들도 국방부서 취재 거부하며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엄청난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비폭력 프레임에 갇혀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촛불 속의 평화도 깨지지 않았다.


2016년을 사는 우리는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촛불로부터 이미 많은 것을 배웠고 바꿔나가고 있다. 생활 속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고 정치 참여를 강조하며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하고 연대하는 법을 배우며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자라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침묵하지 않았던 개개인의 시민들이 문서 속에서만 존재하던 가치들을 비로소 실현시켰음을 배웠고 그 배움을 실천하고 있다.


여전히 '정치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이지만, 정치는 시민들이 참여했을 때 비로소 완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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