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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Sep 18. 2017

누구를 위한 정책일까?


제주 곳곳 관광지가 아닌 곳이 없고 관광지마다 쓰레기가 문제가 아닌 곳이 없다. 정부가 돈을 들여 새롭게 관광지(?)로 단장된 곳을 보면 왜 이런 곳까지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관광지가 되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게 되는 것일까?


동네 아주 작은 골목골목에도 그려진 벽화, 아침부터 밀려드는 사람들, 작은 골목길 열린 창문을 기웃거리는 악의 없는 호기심, 좁은 골목을 울리는 조심성 없는 목소리, 골목에 남겨진 일회용 커피잔 무덤. 그뿐인가, 밀려드는 사람들. 상승하는 임대료. 쫓겨나는 사람들.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이야기하면서도 예술을 통한 관광정책, 혹은 예술의 얼굴을 한 관광정책으로 인해 개개인의 삶은 자주 침해받고 희생이 강요된다.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문제부터 소음이나 쓰레기 문제까지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도시화 현상의 하나'라는 말도 들린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는 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말은 그냥 가장 하기 쉬운 자기변호일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말이다.

마을을 위해 투입된 자본으로 인해 마을에 속한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삶이 방해받고 있다면, 누구를 위한 지역 활성화일까? 묻고 싶다.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도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더욱이 많은 공적인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맞는 게 아닐까? 예술이 그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헤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속한 사람들의 일상을 단단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예술의 혜택이 밖으로만 향하거나 예술 그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로 인해 공동체가 그 공동체에 속해 개개인 모두가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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