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에세이 02 좋은 게 좋은 것.
아픈 만큼 성장한다.
방글라데시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방글라데시로 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속을 비워야 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안전벨트 표시 사인에 불이 들어왔다. 비행기는 착륙하려고 고도를 낮추고 점점 내려가는데 야경은커녕 땅에는 어둠뿐이었다.
완벽한 어둠, 비행기가 암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다행히 비행기는 방글라데시에 무사히 도착했다. 중간 경유지에서 비행기가 지연되고 입국심사를 위해 적잖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입국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시간은 한밤중이었다. 철망에 매달려 있는 수많은 인파,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무장한 군인, 숨이 턱 하고 막혀버릴 것 같은 습하고 더운 공기. 아니, 숨이 막혔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우리를 픽업하러 온 차량에 탑승하자마자, 나는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렸다. 그렇게 첫 번째 앓이로 방글라데시의 삶이 시작됐다.
좋은 게 좋은 것!
방글라데시에 도착하면 바로 활동을 하게 될 지역으로 파견되는 게 아니라, 수도에서 8주간 현지 적응훈련을 거치게 된다. 현지 적응훈련의 마지막 열흘은 파견될 지역으로 가서 현지인 집에서 먹고 자면서 그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체험하는 홈스테이로 마무리된다.
도착한 이후 물과 날씨, 음식 때문에 한 달이 넘게 배앓이를 하고 있던 터라, 진짜 방글라데시를 만나게 된다는 설렘만큼이나 걱정도 앞섰다. 처음 난, 어차피 열흘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의 현지 생활체험이니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하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양칫물을 미네랄워터로 써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 지역은 물이 깨끗해 괜찮다는 말에 그냥 수돗물을 사용했다. 주는 음식도 가리지 않고 경험이라며 뭐든 다 먹었다. 딸과 아들까지 셋이 한방에 써야 한다는 게 불편하기 했지만, 방이 많지 않아 이들에게 다른 선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잠깐의 불편함도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면 되는 거다.
하지만 새벽기도를 알리는 아잔 소리가 울릴 때까지 질문을 쏟아내던 딸과 아침에 이상한 낌새가 들어 눈을 떠보면 내 얼굴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대고 관찰하던 아들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깬 아침, 밤 10시가 넘어서야 먹는 늦은 저녁 시간, 불편한 잠자리 그리고 지나친 관심, 홈스테이를 시작한 지 3일 만에 앓아눕고 말았다. 사실 우유를 잘 먹질 못 하는데, 전날 우유를 넣어 만든 디저트에 탈이 난 거 같았다. 3일 만에 K.O.가 되어버린 나는 고민을 했다. 남은 7일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YES맨’으로 남을지, 아니면 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할지, 말을 하게 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무례한 손님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미련을 떨다가는 중간에 포기해버릴 것 같았다. 고민하다 그날 밤, 오해하지 않고 들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다시 홈스테이 가족들과 긴 대화를 했다. 가족들은 말하지 않아서 괜찮은 줄 알았고, 몰랐다며 오히려 내게 미안하고 말했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에는 어쩌면 ‘나를 당신에게 이해시킬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숨이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이 들었다. 열흘만 버티면 되는데, 괜히 까칠한 손님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대화를 회피하고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소통하려는 노력보다는 좋은 모습만 보이는 것에 만족하고 있던 것이다.
숙제가 생겼다. 억지스러운 친절함보다는 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만큼이나 나를 보여주고 나를 이해시키려는 노력 또한 필요했다. 이러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 잠시 스치는 여행자가 아니라, 이방인에서 이들의 가족이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숙제라고 생각됐다.
잘 알지 못하는 낯선 문화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컸기 때문에 내 의견을 내세우고 것보다는 불편하더라도 모든 상황을 새로운 경험이라 여기고 즐기자고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미련스럽게 조바심을 냈던 것 같았다.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될 만큼 시간이 여유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참는 미덕이 이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소통의 불편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참고 있는 동안 나는 아팠고, 속병만 늘어 갔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대화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앓이와 속병으로 고생한 이후에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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