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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Jan 29. 2019

어쩌다 채식

개인의 취향을 넘어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어쩌다 보니 채식 두 달째...
채식 선언은 아니었지만, 채식선언이 되어버린 그 날 이후 거짓말처럼 고기가 먹고 싶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채식 식단이 유지가 됐다. 다행히 주변에는 ‘유난 떤다’, ‘민폐다’라며 구박하는 사람도 (아직까지는) 없었다.

채식을 시작한 사람들을 보면 건강상의 이유나 공장식 축산에 충격을 받고 윤리적인 이유로 시작한 사람이 많다. 나도 환경이슈와 빈곤, 인권 이슈 등을 접하며, 신종 바이러스와 지구온난화, 분뇨 폐수 등 수많은 환경문제와 인권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는 공장식 축산 문제에 대해 알게 됐고, 육식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었다. 다만, 실천이 쉽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채식을 실천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건강상이나 윤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더더구나 채식선언이 되어버린 채식선언이 아닌 선언까지 하며 시끄럽게 시작을 한 건... 어쩌면 사춘기 중학생의 유치한 반항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지난해 가을쯤 외국인 친구들과 섞여 일주일 가까이 동고동락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했었다. 아침은 호텔에서, 점심은 자율, 저녁은 주최 측이 정한 식당에서 해결했다. 타지나 외국에서 온 팀원이 많아 점심때마다 메뉴 고민과 식당 안내는 나의 주요 업무가 되었다.

하루는 제주 흑돼지 거리의 고기 식당에 저녁식사가 예약이 됐다. 우리 팀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이 둘이나 있어 해당 식당에 메뉴를 확인하고 주최 측 담당자에게 다른 대안이 있는지 문의를 했다. 돌아온 대답과 태도는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괜히 유난 떠는 사람인 양 취급하며, 단체 활동에 그렇게 예외를 두는 건 아니라는 대답이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게 아니라, 먹지 않는 것으로 인지하며 단순히 취향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전에 이미 정보가 다 갔을 텐데 전혀 배려하지 못한 주최 측, 내가 만일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그 당사자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왜 그때 정확히 말하지 못했을까? 이후 자꾸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내 주위만 보더라도 알레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 소화를 잘하지 못해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 약을 먹어서, 종교적인 이유 등....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을 뿐 아니라 먹지 못한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낯설게 보였다. 왜 고기 먹는 건 당연한 거고 못 먹는 건 유별난 거지? 많은 사람들이 나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단순한 취향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건 옳지 않다.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다양성은 외면하고 무시하는 태도에 화가 났다.

그랬다. 나는 화가 나서 채식을 하겠다고 소리치고 시작했다. 채식을 시작하니 불편한 것도 많다. 하지만 불편함이 싫지만은 않다. 생각거리가 풍성해졌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밖에 나가 먹을 수 있는 메뉴의 폭은 줄었지만, 먹는 음식의 메뉴는 오히려 다양해진 느낌이다. (지난달 여행을 했던 채식의 천국이라는 인도와 비교하니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채식이 불가능에 가깝다. 채소와 해조류, 과일만 먹는 비건의 경우, 메뉴의 선택권은 사실상 제로라고 보면 된다.)


엄연히 따지면, 채식이라기엔 두 달여간의 내 식단은 너무나 허술했다. 베트남 음식점에 가서 새우볶음밥을 시키고 같이 간 지인이 시킨 소고기 쌀국수의 국물은 내가 다 시원하게 들이켠다든지, 메뉴를 시키고 먹다 보니 간 고기 들어간 걸 음식을 다 먹고 나서야 알아차린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하다 보니 나름의 원칙이라는 것도 생겼다. 초대를 받아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메뉴 선택권이 내게 없는 경우 음식(카레나 김치찌개 등)에서 고기만 골라내 음식쓰레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먹는 식이다. (채식을 깨는 것보다 음식 남기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뭔가 허술하지만 채식에 대해 자꾸 여기저기 이야기하다 보면, 두 달 전 ‘비건(혹은 환경) 친화적인 공동체를 최대한 확장’하는 것에 숟가락을 얹어보겠다는 다짐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오겠지?



찾아보니, 해산물은 먹되, 육류를 먹지 않는 세미 베지테리언 혹은 달걀, 우유, 해산물을 먹는 건 페스코 베지테리언이고, 채식을 하고 경우에 따라 육식을 하는 경우도 넓게 채식에 속한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이라 한단다. 나의 경우는 이들 중 어딘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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