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PLS 이혜령 Aug 27. 2019

로힝가 대학살 | 미얀마를 보이콧하라

로힝가 난민 |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지난 주말 서울에서 금요일과 토요일 2일간 <로힝가 피해 생존자 보호와 학살 책임자 처벌에 관한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마침 금요일과 토요일 서울에 있었고, 금요일만 원래 일정대로 소화하고 토요일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참석하길 잘했다, 싶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끊임없는 절망감에 빠졌다.


로힝가 이슈를 처음 안 것은 20만여 명의 로힝가 대량 난민사태가 벌어진 2012년이었다. 미얀마에서 로힝가족에 대한 대량 학살이 발생하자, 로힝가는 배를 타고 인접국인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수십 명이 탄 자그마한 고깃배는 침몰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거나 배에 타지도 못하고 미얀마 국경수비대에 붙잡혔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넘어왔지만, 도착한 방글라데시에서도 국경의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이때 국제 사회가 잠깐 관심을 보였지만, 방글라데시에 국경의 문을 열어라 수준에서 끝나버렸다. 로힝가에 대한 박해를 종식시키기 위해 목소리 내는 국가는 없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17년, 미얀마 군부는 테러조직 소탕작전을 명분으로 로힝가 부족에 대한 학살이 자행했다. 이로 인해 74만 명의 로힝가 난민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로힝가족에 대한 탄압의 역사는 40년이 넘게 (혹은 그 이상) 진행되어 왔고 학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유엔은 진상조사를 통해 로힝가에 대해 반인도적 범죄, 집단학살이 발생했다고 결론 내렸지만, 유엔 안보리는 중국의 반대로 미얀마를 국제 형사재판소로 회부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로힝가 대량 난민사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외교적 노력은 모두 실패했다. 그 어떤 국가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으며 국제 사회의 관심은 요원하다. 그 사이 피해자는 죽거나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사실상 속수무책. 이러한 절박함 속에서 미얀마에 대한 문화, 경제, 스포츠 등 전방위적인 보이콧에 동참하길 촉구하기 위해 이번 컨퍼런스가 열린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나라의 무관심과 중국의 노골적인 방해, 로힝가 대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미얀마가 속한 아세안과 100만 명이 넘는 로힝가 난민을 보호하고 있는 방글라데시가 속한 남아시아지역공동체(SAARC) 간의 충돌하고 있는 이해관계,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는 박해로 점점 잊혀가는 존재가 되어버린 로힝가족.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꺼낸 보이콧 카드는 효과가 있을까? 사람들은 얼마나 동참할까? 전망이 밝지 않은 물음 속에 절망감은 커져만 갔다.


74만 명이 넘는 난민을 발생시킨 2017년 로힝가 대학살 2주기를 맞아 ‘로힝야 학살 규탄 및 문제 해결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집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렸다. 관련 기사에는 이미 수많은 악플이 달렸다. 우리가 학살의 지지자가 되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거의 피해자였던 가해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느끼며 피해자를 적대화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로힝가 이슈가 우리와 상관없다고 느끼고, 그들의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들의 문제다. 하지만 그들의 힘으로만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원조라는 이름으로, 교류라는 이름으로 국제사회 또한 이 학살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도 로힝가 이슈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정부 이후 미얀마에 대한 교류와 공적원조 기금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많은 사업이 MEHL, MEC와 같은 학살을 주도한 군부 산하의 군영 기업에 투자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 국가에만 기대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결국 국가의 이해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국제 사회는 '학살에 원조하지 말라', '강간에 투자하지 말라'라고 한국에 외치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범죄’라는 원칙은 언제 어디서든 지켜져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