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PLS 이혜령 Oct 28. 2020

외국인이지만, 저도 같은 사람입니다

찡짱쫑의 추억

제주에서 매달 열리던 한 아트마켓에 몽골 초원에서나 어울릴 것 같은 아주 커다란 망원 렌즈를 단 카메라를 맨 사람들(같은 일행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날따라 유독 그런 사람이 많았다)이 나타났다. 그들이 커다란 카메라를 매고 나타난 이유는 마켓의 셀러로 나선 소길댁 이효리 씨(효리 언니라고 쓰자, 친구가 친한 척하지 말라며 고쳐 쓰길 요청했다)를 찍기 위해서였다. 이효리 씨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사람들은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이효리 씨도 매달 참여해오던 마켓이었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사람이 간혹 있었지만, 그날 그들처럼 무례하게 카메라를 들이댄 적은 처음이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거참, 너무 비싸게 구네. 왕년의 스타지. 지금도 스타야”, “지가 사진 한 번 찍어주면 되는 걸,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잖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지인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 사진 찍기가 어려웠는지, 볼멘소리를 넘어 거친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자 참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한 마디씩 내뱉기 시작했고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카메라 무리는 흩어져 이내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도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뭘 믿고 저렇게 무례한 거야! 미친 거 아니야! 아예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나 보네. 사물 찍듯 찍더라. 때리지만 않았지. 폭력이네! 폭력. 이효리는 무슨 생각이 들까?” 마침 놀러 왔던 친구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게. 말은 못 해도 엄청 스트레스일 텐데...”

“아는 것처럼 말한다.”

“100% 이해는 못 하겠지만, 조금은 알 거 같아. 나 방글라데시에서 거의 연예인이었잖아.”

친구는 아까보다 더 세게 혀를 차며 사라졌다.


방글라데시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하자, 동네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내가 사는 모습)를 보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을 관광지처럼 구경하러 드나들었다. 사생활은 지켜지지 않았고, 나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길을 걷다 보면 알지도 못하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서 멘탈을 챙기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찍힌 사진은 어찌 쓰일지 모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강하게 거절을 표시하거나 최대한 얼굴이 안 찍히게 하고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무시하고 지나쳐 갈려고 하면 그들은 어김없이 '찡짱쫑'이라며 나를 불렀다. '찡짱쫑'은 중국어의 발음을 흉내 낸 말로 중국인(혹은 중국인과 비슷하게 생긴 동북아시아인)을 가리키는 속어다. 쓰는 사람이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엄연히 인종차별적인 단어다. '찡짱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단어에서 오는 가벼움과 조롱에 섞인 '찡짱쫑'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 순간부터 싸움을 부르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방글라데시로 떠난 내게 사람들은 '대단하다 찬사와 같은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곳에서의 삶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거룩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매일매일 수많은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느라 하루하루가 전투적이었다. 외국인의 존재 자체가 신선했던 탓에 가는 곳마다 나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감사한 일일  있지만, 낯선 이들의 지나친 관심으로 사생활은 침해받았고 나는 예민해졌다. 그들에게는 관심이고 특별한 대우가 나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되는 간섭의 연속이라 히스테리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물론 있다.


어느 날은 건장한 청년 둘이 쫓아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컨디션까지 좋지 않았던 나는 “처음 보는데, 그런 질문을 하느냐”며 쏘아 주었다. 호기심에 물어본 질문에 너무 겸연쩍게 만들어버렸나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사생활에 대해 질문받는 것은 분명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어디에서 왔느냐?’, ‘왜 왔느냐?’, ‘뭐 하는 사람이냐?’, ‘방글라데시 어떠하냐?’ ‘어디 사느냐?’, ‘집세는 얼마 내느냐?’ ‘혼자 사느냐?’, ‘뭐 먹고 사느냐?’, ‘요리는 누가 하느냐?’, ‘결혼했느냐?’ ‘결혼했으면 자녀는 몇 명이냐?’, ‘얼마나 버느냐?’, ‘물건의 가격(입고 있는 옷이나 가방, 카메라 등등 지니고 있는 모든 소지품을 가리키며 가격을 묻는다.),  ‘전화번호는 뭐냐?’ 어쩌면 질문의 레퍼토리도 항상 그렇게 같은지. 여기엔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질문하기' 안내서라도 있는 것일까?      


‘외국인 = 돈이 많다'는 생각은 '돈이 많다. 고로 돈을 더 받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외국인을 위한 특별한 맞춤 가격'인 바가지요금의 혜택을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런 특별대우를 눈감아 주지만 무리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꽤 있어 이러한 상황을 닥칠 때마다 요목조목 따지고 들다 보면 금방 주위가 시끄러워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외국인은 돈이 많아서 나를 보고 돈을 당연히 더 내야 한다는 사람, (방글라데시에 온) 손님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며 말리는 사람, 내 편을 들어 함께 싸우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사소한 한마디에 참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따지고 화를 내다가 지나고 나면 바로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없었는지, 조금만 더 참을걸’ 하고 후회하지만, 금붕어처럼 금방 잊어버리고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됐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외국인'이라서 차별을 받는데, 귀찮으니까 그냥 그렇게 넘어간다면,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길을 걷다 '찡짱쫑' 언어 테러와 카메라 세례를 받다 보면, 그들에게서 나는 같은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같지 않았다. 악의가 없는데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삶이었다. 잠깐 왔다가는 여행자라면 에피소드, 추억 만들기 정도로 생각해 가볍게 넘길 수도 있는 문제들이겠지만, 나에겐 생존이고 생활이었다. 나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바라봐 주길 바랬다. 나의 활동으로 평가받고 그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나는 마치 외계인과 같은 존재였다. 매일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절망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보니, 절망스러운 느낌에 빠져들게 하는 상황이 방글라데시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다.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무서울 만큼 관대하고 무지했고 우리 속에서도 악의 없는 말이라며 피해자의 목소리는 무시하는 일이 허다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소수자 위치에 서보는 경험으로 비로소 차별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역시 이전에는 무엇이 차별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차별은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니 모두의 문제다. 방글라데시에서 내가 불합리한 상황에 맞서 쌈닭이 되었던 것처럼,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도 기꺼이 목소리를 내야겠다.

이전 09화 연인끼리 떠나면 원수가 되어 돌아오는 여행지 1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