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절망 너머 희망으로>
199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은 <뉴욕 서평>를 통해 ‘약 1억 명 이상의 여성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세계 인구를 분석하여 약 1억 명의 여성들이 자연사가 아니라 살인과 여아 낙태, 방치, 폭력 등으로 인해 사라졌다고 밝혀낸 것이다. 이렇게 특별 성별자를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행위를 젠더사이드(Gendercide)라고 하는데 10년간 젠더사이드로 희생당한 여성들의 수가 20세기에 ‘인종 학살’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모두 합한 수를 많다고 한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염산 테러, 가슴 다림질, 조혼, 데이트 폭력, 데이트 강간, 가정 폭력, FGM(할례), 명예살인, 강요된 결혼, 결혼 강간, 강제 임신, 인신매매, 신부 납치, 신부 불태우기, 여성 생식기 절단, 매춘 폭력, 마녀사냥, 지참금 살인, 집단 강간, 임산부 살해, 사티(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산 채로 불태우는 악습), 차우파디(생리기간 중 헛간이나 집 밖에 격리시키는 악습), 성 노예, 성선별적 낙태, 여아 살해, 여성 혐오, 스토킹, 성차별적 언어, 이브티징, 성폭행 등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 수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UN산하 국제노동기구ILO는 비단 ‘성 노예’뿐 아니라 온갖 일에 동원되는 현대판 노예가 1,230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영국의 의학저널 <랜싯The Lancet>은 해마다 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매춘에 강제로 동원되며, 그 수가 천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성매매 반대 운동가들은 그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제시했는데, 최소한 2,700만 명이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p. 37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믿기 않겠지만, 이러한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세계 절반의 여성들이 있다. <절망 너머 희망으로>는 이러한 비극적이고도 처참한 실상을 다룬 여성 인권 보고서다. 이러한 일들이 먼 과거나 먼 나라의 일로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노예제와 다를 바 없는 여성을 향한 폭력은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린 방식으로 보다 은밀하게 퍼져가고 있다.
간혹 이러한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한국에 사는 여자들은 행복한지 모른다’며 ‘죄다 어디 어디 나라에 보내야 한다’고 뒷목 잡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 있다. 그냥 개소리라고 생각하며,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노오오오력을 부단히 하시길 바란다. 디지털 성범죄, 리벤지 포르노, 불법 촬영, 텔레그램N번방 사건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일상 깊숙이 침투하였고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이러한 폭력은 일상 속에 만연해있고 이러한 위협은 많은 여성들에게 실재하는 위협으로 존재하며, 그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다. 여성폭력 문제는 여성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대상화하는 왜곡된 인식이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여성 문제가 사회적으로 무시되는 슬픈 현실에 놓여 있지만, 노예제가 흑인의 문제이고 홀로코스트가 유대인의 문제라고만 바라볼 수 없듯, 성매매와 집단강간을 여성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p.394
다행히도 이 책은 절망만을 담고 있지 않다. 여성들이 어떻게 절망에서 희망으로 넘어왔는지를 생생히 그리고 있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행동을 촉구한다. ‘19세기에는 노예제도, 20세기에는 전체주의를 타파하는 것이 주요한 도덕적 목표였지만, 현시대에 가장 우선시해야 할 도덕적 목표’였다면 21세기의 인류의 목표는 전 세계에 성평등을 실현시키는 일’이어야만 한다.
머지않아 성 노예, 명예 살인, 염산 테러도 전족의 악습처럼 기억에서 희미하게 사라질 것이다. 그러한 변혁이 얼마나 오랫동안 진행될 것인지, 또 변혁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납치되어 사창가로 끌려가느냐가 문제이다. 역사적 흐름에 동참하느냐 방관자로 머무느냐는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p. 418
<절망 너머 희망으로>
-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셰릴 우던 지음 | 방영호 옮김 | 에이지21, 2010
- 분야/페이지 | 사회과학 > 여성문제 / 4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