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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Aug 30. 2016

나는 그런 꼰대가 되기 싫다

시작하는 누군가를 위한 위로

"원래 이런 거예요?" 지난 몇 달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이 말이었다. 내게 이런 질문을 건넨 이는 코스모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인턴일을 시작한 동생이다.


'다른 곳도 다르지 않아요.',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뭔가 배울 수 있어요.' 나의 대답은 점잖을 빼느라 다소 비겁했고, 솔직하지 못했다. '사실 너희들은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어'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마치 불평불만으로만 그칠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았다.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과 같은 말을 하는 게 뭔가 어른스럽지 못한 일인 것도 같았다. 그래서 대안이 뭐냐고 다그칠까 봐 적당히 좋은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저항에 익숙한 사람,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상황 앞에서 나는 그런 질문들을 피하고 말았다.


높은 연봉과 삶의 질,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구글'처럼 꿈의 직장을 원한 것은 아닐 텐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해주고 말았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리고 대안적인 통로를 만들고 있는 활동가들. 그리고 그 길을 이제 막 가려고 하는 사람들. 분명 가치 있는 일이고, 보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신념과 보장받지 못하는 내 권리나 보상 사이에서 많이 갈등할 일이 생길 것이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내 삶이 희생되고 있지는 않은지 자꾸 되묻게 될 것이다.      


사회 불평등 해소를 외치며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참으로 염치가 없다. 대를 위한 희생이 왜 매번 약자의 희생이어야 하는가?      


‘다른 곳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
 '자기 하기 나름이다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이 약이다'


이런 조언은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책임 도피적이기도 하다. 그 어떤 불합리 속에서도 '자기 하기 나름'. 비겁한 변명이다. 개인의 노력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개인만의 노력만을 강조하기엔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나는 그런 꼰대가 되기 싫었지만, 나는 이미 꼰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불합리한 상황 속에 목소리 내는 사람이고 싶어요." 부끄러워졌다. 누군가의 이 말에 반사적으로 '나도 처음에 그랬었지, 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타협과 자기 합리화에 이처럼 나는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기 고백이나 사회고발, 적당히 좋은 말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불의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불편함과 더불어 '나만 참으면 되는데'라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꿈과 이상을 키우고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상과 자아실현을 사치일까?'라는 질문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자신의 꿈을 버린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약자의 희생만으로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이 상황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전하고 싶던 말은 이 한 마디였는데...   

더 이상 누군가에겐 꿈을 버리고 있는 과정이 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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