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판사란 무엇이며, 판결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바라는 판사는 드라마 속에나 존재하고
우리가 바라는 판결은 가뭄에 콩 나듯 SNS에서나 접할 수 있다.
저들은 대체 어떤 종족이기에 저런 사건에 저런 판결을 내는 건지
부글부글 끓는 속을 붙잡고 혼자 속으로 씹어대기 바빴는데,
왜 자기네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려주겠다는 책이 나타났다.
1. 평소 (언론을 통해 접하거나 직접 본 적이 있다면 직접 본) 판결문 혹은 판사에 대한 인상이 어떠했는지, 이 책을 읽고 바뀐 점은 있는지?
라 : 드라마나 뉴스 등을 통해서 판사, 판결문을 접한 게 전부이고, 특히 언론을 통해 보게 되는 판결문 속 표현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를 때가 많아서 외국어 같은 법조어(?)를 판사가 쉽게 풀이해주길 기대하며 이 책을 발제하기로 택했던 거였다. 하지만 기대와 다소 벗어난 책이었고... '판사' 했을 때 그냥 인간미 없는 심판자 같은 느낌이 있는데, 책을 읽고 나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주 : 처음에 섬북동 공지에 판사의 '연어'라고 되어 있어서 거슬러 올라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인가 했다.(웃음) 알고 보니 오타였고. 암튼. 판사는 '권력의 중심자'라는 편견을 좀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딱히 생각의 변함은 없다. 경제 사범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내가 알고 싶었던 내용이 없었다. 여전히 그사세, 자기들만의 리그의 느낌이었고, '뭐시 중헌디! 판결이나 잘해라!' 싶은 감정만 올라왔다.
광 : 과거에는 '엄격'한 이미지만 있었다면 도진기, 문요석와 같은 판사 출신 작가들의 활약으로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어떤 '문학적 동경'을 많이 드러냈는데, 그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 동료들에 대한 기본적이고 구조적인 비판은 여전히 불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심결에 발생하는 확증편향이 있다고 본다.
현 : 직업적 성향이 반영되어 그런지 확고한 자기주장이 불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상 앞에 앉아서만 일하는 직업이라는 게 느껴졌다.
옥 : 일단은 내가 안 고를 법한 책인데, 막상 읽으니 재밌었다. 동문 모임에 법대 출신이 많은데, 이제야 이해되는 그들의 행동과 태도가 많다. '그들만의 리그' 같다는 생각에는 나도 동의하고, 그래도 '판사의 고민과 시선'을 엿볼 수 있었던 책이라는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특히 '글쓰기의 중요성' 측면에서 접근하여 '모두를 위한 판결문' 운동을 벌이고자 한 점에서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은 : 옥과 비슷한 느낌으로 읽었다. 최근 조두순 이사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봤는데, 판사 욕이 많았다. 나도 똑같은 심정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도 변명처럼 들렸는데, 읽고 나니 '어쩔 수 없었구나.'하며 설득을 당했다.(웃음)
법은 시대를 앞장서지 않지만, 성실히 뒤따른다.
2. 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또는 좋았던 문장은 무엇이었는지? 그 이유는?
은 : 81p 마지막 '나는 이렇게 싸움의 격랑이 끊이지 않는 것이 참 좋다. 우리가 법을 어제의 시선에 머물러 보지 않고 오늘도 계속 '새로고침'을 해서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좋았는데, '변명 같이 들리겠지만 우리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 : 이 책을 읽고 유일하게 인덱스 테잎으로 표시를 한 게 81페이지인데, 이유는 정반대이다. (좌중 폭소) 이 에피소드에서 다룬 사건과 결론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이게 뭔 소리야?!' 싶었다. ※제사와 장남 유산 상속에 관한 건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베트남 부인의 편지를 그대로 실었던 판결문.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한 베트남 부인이 생전 남편에게 베트남어로 썼던 편지가 판결문에 그대로 실렸다.
아, 판사의 농담 부분에서 '네, 누나'라고 하는 부분에서 피식. ※연세가 많은 증인에게 '할머니'라고 호칭하자 '이왕이면 누나'라고 불러달라는 증인의 말에 '네, 누나'라고 받아친 판사도 있었다고 한다.
광 : 199p, 문학적으로 쓴 판결문이 좋았다.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로 시작하는 판결문
(옥, 라는 오히려 너무 문학적이라 별로라고 생각.)
31p '정수기 사건'이 (안 좋은 쪽으로) 인상 깊었는데 결국 기업 편 들어준 거 아닌가 싶었다.
현 : 29p '정의가 쑥스럽다'라는 말. 이 저자에 대한 기대감이 뚝 떨어졌다. 아니, 판사가 정의가 쑥스러우면 어떡해? 용기가 없어 보였다.
(옥 : 나는 이 부분에서 오히려 이 사람의 자아가 비대한 것처럼 느껴졌다.)
옥 : 판사가 교통 법규 위반을 타이트하게 벌하자 동네 인구가 줄어들었다는 에피소드가 재밌었고, '모다모다 샴푸' 건처럼 아는 내용이 나올 때 반가웠다.
라 : 91p. '말을 절제하여 정확하게 쓰려고 한다는 점에서 시와 법은 닮았다.'라는 말이 '쉽지 않다'라는 뜻으로 읽혀서 그리 좋게 들리지 않았다.
3. 그동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 중 만족했던 판결 또는 불만족스러웠던 판결이 있다면?
은 : 만족한 판결? 거의 없고, 불만족한 판결이 많다. 그나마 <유퀴즈>에서 소개되었던 박주영 판사의 판결이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겠다.
광 : 만족했던 판결은, 외국 어느 재판에서 가난한 사람이 1달러를 훔쳐 소송당했는데, 판결을 끝내고 이 범죄를 저지른 원인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며 1달러짜리 지폐를 헌금하고 법정에 있던 사람들 모두 1달러씩 내어 피고인에게 전달했던 것. 불만족스러운 판결은, 세종시 수도 이전 무산되었을 때 '관습 헌법'이라는 게 적용된 판결이었는데, 융통성 없게 느껴져 불만족.
주 : 경제사범, 사기, 성범죄 등 유독 유하게 느껴지는 판결이 있다. 불만족스럽다.
라 : 불만족스러운 건 역시 나도 많고, 특히 '조두순 사건' 매우 불만족스럽다. 그나마 만족스러운 걸 꼽자면 '박근혜 탄핵'. (광 : 박근혜 탄핵 때 판결 기준의 우선순위가 달랐던 점은 좀 아쉽다.)
옥 : 스토킹, 데이트 범죄에 대한 판결들. 요즘 쪼오오금 과거보다는 엄벌이 선고되는 듯 보이지만 그래도 불만족스럽다.
현 : 다 불만족.
4. AI 판사에 대한 의견
광 : 도입에 긍정적이다. AI판사는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안 하니까. (판사가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단, 데이터 입력을 누가 하느냐가 관건.
현 : 반대한다. 알고리즘을 누가 개발할 건데?
은 : 반대한다. 앞서 언급한, <유퀴즈>에 출연한 박주영 박사는 '판사는 염치가 있어야 된다'고 하던데, AI는 그럴 수 없기에.
주 : 물론 그 마음은 이해되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오류 발생 문제도 있고... 조심스럽다.
옥 : 자잘한 건부터 다뤄나가기 시작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입장. 그래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라 : 왠지 모르게 로봇이 판결을 내리면 인간이 내리는 것보다 (내게 불리하다 하더라도) 어쩐지 공평할 것 같고 덜 억울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르겠다. 인간미를 느끼고 싶으면서도 인간적임이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AI 판사를 도입할지 말지를 결정짓는 것은
'AI기술의 발전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의 판단을 신뢰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5. 내가 판사가 된다면 꼭 좀 풀고 싶은 갈등이나 분쟁이 있다면? (사회적인 것도 좋고, 사소한 것도 좋고)
주 : 마음 따뜻한 판사보다는 공정한 판사가 되고 싶다. 경제사범에게 엄벌도 내리고, 음주 운전 사고로 숨진 배달기사의 사건 같은 것도 피해자 유가족 억울하지 않게... (발제자 덧 : 쓰고 나니 결국 마음 따뜻한 판사가 아닌가 싶은...?)
광 :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강자에게 유리하다. 노동법, 기업중대재해법 분야에서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주고 싶다.
옥 : 사기 사건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게 사람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본다. 이런 부분을 바로잡고 싶다.
은 : 판사를 하기엔 워낙에 팔랑귀라... (웃음) 판사보다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 전 회사에서 3년 정도 경기도 조례를 만화로 쉽게 풀어 설명해 주는 작업을 했는데, 내용을 접하면서 늘 욕하기 바쁘던 국회의원들도 똑똑한 사람들이었네, 리스펙트하게 되었다. 굳이 해야 한다면 필요한 법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껏 '공정', '정의'에 대해 엄청 떠들다가 '은'이 국회의원 얘기하자 공략이고 뭐고 아묻따 뽑아주겠다고 했던 건 안 비밀 ㅋㅋㅋ)
라 : 이 질문을 생각하고 떠오른 건 JMS. 최근에도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또 힘든 일을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오, 확 정리해 버리고 싶다. 그리고 막연하고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긴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상황도 정리해 줄 수 있다면 해주고 싶다.(내가 뭐라고;)
사실 간지러웠던 부분은 전혀 긁히지 않은 채 페이지가 끝났지만
적어도 판결 하나하나 건성으로 내린 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어
작은 위안을 얻는다.
아무쪼록 판사 앞에 서는 일은 일어나지 않길 빌며(지인이 아닌 이상^^),
앞으로 판결이 위로가 되는 소식을 많이 많이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판사란 무엇이며, 판결이란 무엇인가?
(손호영 저|동아시아)
2024.11.2
참석자 : 라, 주, 광, 옥, 은 (5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