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4/365 days of drawing

by 나다라









노트북이 두 번 바뀌고 핸드폰이 네, 다섯 번 바뀔 동안 지갑은 한 번도 바꿈 없이 사용하고 있다. 2006년, 지갑을 새로 살 수밖에 없었던 어떤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이 지갑을 만난 년도도 정확히 기억한다. 그러니까 이 아이와 나는 11년을 함께하고 있는 거다. 당시 유행이었던 MCM의 비세토스 중지갑. 이왕 지갑을 바꾸게 된 거 좋은 거 사서 오래 쓰자는 생각에 당시 학생 신분으로는 거금을 들여 샀던 지갑. 오래 쓰기로 다짐은 했지만 이렇게 오래 쓰게 될 줄 알았나.

어느새 MCM 로고 패턴은 희미해지고 가장자리 가죽들은 닳으면서 어둡게 변색되었는데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접히는 부분은 가죽이 갈라지고 있다. 이런 변화를 발견한지는 몇 년이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지갑을 바꿀 수가 없다. 지갑이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이 지갑 너무 좋아! 닳아가는 너의 모습까지 사랑해'라던가 '우리가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들...' 이런 마음이 들어서는 아니고, 그냥 너무 오래 함께했으니까. '새 것'이 이길 수 없는 건 '내 것'인가 보다.

나름 의미가 있는 물건이니 사진으로 남겨보려 여러 번 시도했지만 닳고 닳은 지갑은 늘 사진발이 받지 않았다. 10년 넘게 상근한 지갑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소중하니까 드로잉으로 남겼던 건지, 드로잉을 하다보니 소중해진 건지는 몰라도, 대니 그레고리 아저씨의 메시지에 조금 가까이 다가간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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