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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Jun 30. 2020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사유와 반성

영화 [피아니스트] , 2003년

실존인물의 실화를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알고 있던 인물과 사건이라면 더 깊이 알 수 있어 좋고, 몰랐던 인물과 사건이라면 새롭게 알 수 있어 좋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를 보면 최소 3~4일은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새로움과 동시에 깊이를 되새긴다.

그러나 Hóloskaustós  인류 최대의 비극을 맞닥트릴 때마다 그 어떤 감정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로서 영화의 한 장면으로 비극을 마주하는 것이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폴란드 출신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1911~2000)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1911~2000)                                                독일 장교 빌헬름 호젠펠트(1895~1952)


감독 폴란스키 어머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망했고, 폴란스키는 8세 때 유태인 게토를 탈출, 전국을 전전하다 독일군의 사격 연습 목표가 되면서 죽음의 공포를 생생히 경험했다고 한다. 폴란드 역사를 온몸으로 겪은 감독이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어 했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자전적 이야기가 될 것을 우려해 망설이던 중 스필만의 자서전을 보고 만든 영화라고 한다. 



폴란드 국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유대계 피아니스트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던 스필만은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던 중 독일군의 폴란드 공습을 시작으로 전쟁 한가운데로 내몰린다.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남은 스필만은 피아니스트에서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고 추위와 허기, 공포와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살아남아 자서전을 남긴다.


감독과 작가의 실제 경험담이 녹여진 피아니스트의 영상은 그 어느 영화보다도 잔인하고 참혹하다. 눈으로 마주 보기 힘들 만큼 그러나 슬프게도 사실적이다.

인간을 벌레보다도 못하게 취급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이었나를 장면 장면으로 보여준다. 시간이 갈수록 독일군의 만행은 격해진다. 죽음과 시체가 나뒹구는 그 참혹한 현실 앞에서 인간은 예측 못한 방향으로 살 방법을 모색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직업도, 민족도, 양심도, 윤리, 존엄도 지켜내기 힘들다. 영화는 선과 악, 승자와 패자의 이분법적인 구도가 아닌 전쟁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을 스케치하듯 그려낸다. 이 영화가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극한의 고통과 피해가 난무하지만 누구의 잘못을 탓할 수 없다는 점.


저명한 피아니스트였던 스필만은 엘리트 예술가로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전쟁 중에서는 한낱 목숨을 연명하는 나약한 인간이었으며 배고픔과 추위 앞에서는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은신처에서 피아노를 보게 되지만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놀려본다. 

옆방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잠시 귀를 열고 옅은 미소를 지어본다. 

전쟁 중 그에게 피아노는 허상이었고, 생의 저편이었다.


전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앗아간다.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 게토로 숨어 들어간 스필만은 극적으로 통조림 병을 구했지만 동시에 독일 장교에게 발각된다. 그대로 삶이 끝난다 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장면에서 스필만은 더듬더듬

 I am... I was a painest



피아노 앞에 앉은 주인공이 마치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벌레처럼 보인다. 전쟁으로 아무 소용이 없는 단지 생존에 급급한 생명체로써 강요당한 듯.

변신해버린 스필만은 피아노 앞에서 한동안 멈춰있다가 굽어버린 손가락으로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를 연주한다.



독일군 장교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다락방으로 돌아온 스필만은 몸부림치며 울어버린다.

그 울음소리에는 모멸감과 두려움에 관한 모든 감정이 뒤섞인 듯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킨다는 것과 목숨을 유지하는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일까?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앞선 것은 생존인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독일 장교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피아니스트의 마음을 나는 얼마나 가늠할 수 있을까?


유대인 은신자를 보는 즉시 사살했다면 오히려 인정을 받았을지도 모를 독일 장교.

피아노를 연주해보라고 권했던 나치군 장교의 마음을 나는 얼마나 이해하는 걸까?


독일 장교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스필만이 전쟁이 끝난 후 피아니스트로서의 여유 있는 미소를 찾는 장면과  전세가 역전되어 소련군 포로가 된 독일 장교를 구하지 못하고 호젠펠트는 사망했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실제 독일 장교 호젠펠트는 나치가 폴란드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들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폴란드인들과 친하게 지내며 폴란드어를 배웠고, 금지된 행위임에도 성당을 찾아가 폴란드식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포로수용소를 짓는 임무를 맡은 동안엔 자기 직권을 남용하여 수감된 폴란드인들이 가족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하고 정해진 형기보다 일찍 내보냈으며, 체육관을 관리할 때는 박해받는 폴란드인과 유대인에게 위조 신분증을 주고 자기 사무실 내지 자기가 관리하는 체육관에 고용하는 방식으로 보호했다. 전쟁 끝무렵에는 유대계 폴란드인인 블라덱 슈필만을 발견하고 그가 살아남는 걸 도왔다. (출처 : 나무 위키)




주인공 애드리언 브로디의 연기가 전혀 연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 본능을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처절하게, 특히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메말라가는 그의 눈빛과 앙상한 몸이 실제로 전쟁 한가운데 있는 듯해 다소 긴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참혹한 장면들과 인물들의 처절한 표정과 몸짓이 며칠 동안 마음을 짓눌렀다.


단지, 영화의 장면만으로도 일상이 잠시 흔들리는데 실제로 전쟁과 학살, 폭력과 폭압을 겪은 사람들의 상처는 과연 무엇으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는 삶은 이토록 잔인한 역사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사유하지 않는 삶의 위험성"은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해와 공감

사유와 반성

세상을 살아가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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