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대하여
/ 정호승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의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바다가 나를 불렀는지
내가 바다를 불렀는지
알 수 없으나
주인없는 목소리를 듣고나서
몇 시간 후
동해 바다 앞에 서 있는 나를 만났다.
바다와 파도의 대화 소리를 엿듣고
바람과 석양의 술래잡기를 구경하다
내 마음 속 사연은 모래에 묻어두고
손발에 묻은 모래는 툭툭 털어버렸다.
내가 바다를 위로했는지
바다가 나를 위로했는지
역시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