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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Jun 04. 2020

물구경

                                                                                                                                                                            장마가 시작되고 비가 억수같이 내린 다음날이면 아빠는 물 구경을 가자며 아침 일찍 깨우곤 하셨다.

'남동생들도 많은데 하필 왜 나야' 

하며 투덜거리는 내 손을 꼭 잡고 집 근처 다리 위에 서서 간밤에 불어나 물보라 치는 하천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시곤 했다.


잠이 깬 어린 나는 말 없는 아빠 옆에 서서 종알종알 묻곤 했는데

그중 제일 많이 한 질문은 아마 이 물이 흘러서 어디까지 가느냐는 질문이었다.

아빠는 이 물은 흘러 흘러 서울로 간다고 하셨다.

서울과는 너무 동떨어진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 물이 서울까지 간다니 

"에이, 거짓말!"이라고 아빠가 장난치는 거라 여겼다.

뒤늦게  남한강 발원지와 가까운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거센 물결을 따라 서울에 가고 싶었다.

우리 동네에 물살이 거세지고 빗소리가 굵어질 때면 잠실 주공아파트가 물에 잠겨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아빠는 서울도 사람 사는 곳이라 다 똑같다 하셨지만 물에 잠긴 아파트라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하천은 흙탕물이 되어 주변의 풀을 집어삼키며 내달렸다.

저 기세라면 나를 서울로 데려다줄 것만 같았다.


"아빠, 우리 언제 서울로 이사 가?"

"너 6학년 되면."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물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든든히 아침식사를 하시고 오토바이를 타고 광업소로 출근을 하셨다. 

씩씩하고도 쓸쓸한 모습으로.


어느 날부터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문득 아빠가 그 물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했다. 

무슨 의식처럼 비 오는 날마다 왜 그러셨을까? 하고... 그러나 그 대답을 해 주실 아빠는 이 세상에 없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부모가 되어 살아가는 요즘 그 대답을 나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아빠의 마음을. 


고향을 떠나 낯선 곳,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험한 일을 하면서 한없이 마음을 내려놓아야 했을 테고 수없이 마음을 다잡아야 했을 테다.


자식과 가정을 위해 그 물에 많은 것을 떠나보내야 했던 시간과 장소가 바로 비 오는 날 다리 위가 아니었을까?

아빠는 너무나 일찍 내 곁을 떠나셨는데 그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던 게 아닐까?

그때는 어려서 아빠 삶의 무게를 짐작하지도 못한 불효를 저질렀으나 아빠와 그곳에서 사셨던 분들의 삶의 자세가 어느새 내 삶 구석구석 스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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