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나는 모종의 연대감을 공유한다.
1년에 한 번씩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다. 피아노 소리가 영 시원치 않고, 타건을 할 때의 느낌이 흐물흐물해지면 그를 만날 때다. 그의 번호를 누르면 통화 연결음에는 ‘1급 피아노 조율사 000’라는 컬러링 같은 멘트가 나온다. 그와 대화를 나눈 건 분명 아주 오래 전인데도, 여유가 넘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덩달아 차분해진다. 우리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조율사는 곧 들른다고 했다.
“바로 오신대.” 나는 그와의 만남이 이렇게 빨리 이뤄지리라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괜히 달뜬 기분이 되어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잰걸음을 쳐서 갔다. 엄마는 피아노 위에 놓인 물건을 치워야겠다고 말했고 나는 신이 나서 먼지 쌓인 인형, 사진이 담긴 액자를 치웠다. 텅 빈 피아노 위에 갈색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엄마는 그게 먼지가 아니라 소나무에서 날아온 송화 가루라고 했다. 소나무가루라니 왠지 먼지보다 깨끗하고 운치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내 키만한 체구를 지닌 그를 마주했을 때 며칠 전에 만났던 것처럼 낯설지가 않았다. 그에게서는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은 에너지가 풍긴다. 그를 만나보면 어느 누구라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굉장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나를 매료시킨다. 그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피아노는 양심 있는 사람한테 사야 해요. 양심 없는 사람들한테 속아 넘어가는 건 손님들이에요.” 이 말을 할 때 그는 확신과 안타까움이 반반 섞인 표정을 하곤 한다.
엄마가 결혼하기 전부터 소유한 검정색 업라이트 영창 피아노가 있었다. 당시에만 해도 70만원 하던 피아노였으니, 꽤나 값이 나갔던 셈이다. 나와 동생이 자라고 집을 넓히면서 우리는 자주 이사를 했고 커다란 영창 피아노가 통과하지 못하는 방으로 이사할 때, 엄마는 마음을 먹고 동네 피아노 가게에서 새로운 피아노를 장만하셨다. 영창 피아노는 반납하는 조건으로. 그렇게 해서 인연을 맺은 피아노가 지금 내가 사용하는 갈색 업라이트 야마하가 되었다. 이 악기는 예전 것보다 훨씬 작아서 이사를 할 때 용이하게 운반할 수 있었다. 이 조율사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나름 악기에 만족했다.
그가 야마하를 처음 열어 수많은 줄과 알 수 없는 쇠 덩어리들로 이루어진 악기의 속살을 드러내보였던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거 야마하 아니네요. 70년대에 영창에서 만든 거를 겉에만 야마하라고 적어 놓은 거예요. 게다가 건반도 두 개가 모자라잖아요.” 그 당시 나는 아마 중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는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했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속은 기분을 아직 많이 겪어보지 못했던 때라 많이 놀랐다. 게다가 겉으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복잡한 이면을 목격하는 순간은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당혹스럽기 마련이다. 피아노가 이렇게 복잡한 줄과 나무와 쇠 덩어리를 품고 있었다니.
오늘 오후 그가 악기를 분해하여 속살을 드러내보였을 때, 나는 처음 이 악기의 이면을 마주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다시 한 번 마음속에서 낭패감이 일어나는 걸 감지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피아노 뚜껑과 겉면을 두르고 있던 나무를 해체했다. 규칙적으로 박혀있는 둥근 쇠와 거기에 걸려있는 굵기 다른 쇠줄, 줄에 맞춰 가지런히 놓여있는 나무 조각 같은 것들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그는 은색 공구함에서 빨갛고 긴 천을 꺼내어 굵기가 서로 다른 철로 된 선에 일자로 고정시켰다. 내 악기의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낯설고 신기했다.
피아노를 조율하는 그와 피아노를 치는 나는 피아노라는 대상을 향한 열정에 사로잡혀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그에게 온갖 질문을 던졌고 그는 하나라도 더 말해주고 싶어했다. 대화를 하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0년대 국내에서도 야마하 피아노를 만들기 위해 어떤 회사가 일본 야마하 피아노의 구조를 본따 악기를 만들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악기는 까다로운 일본 본사의 기준에 적합하지 못했고, 급기야는 '야마하'라는 이름을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기에 이르렀다. 야마하의 'Y'를 이미 새긴 상황에서 이들은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냈는데, 그게 바로 영창이다. 조율사는 이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은 피아노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피아노라고 생각 안하는 것도 있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는데, 이때 나는 그가 굉장한 장인이라고 생각했다. 조율뿐만 아니라 세관시 피아노 감정도 한다는 그는 진정한 프로였다. 문득 그의 손이 닿았던 피아노는 얼마나 많았을지 궁금해졌다. 지난번보다 확연히 줄어든 그의 머리숱이 대답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한 음 한 음을 표준율에 맞춰 온 집중을 다해 조율하는 그를 뒤로 하고 잠시 자리를 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는 거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작업하고 있는 음악을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려고 하는데, 보통 조율이 잘 되어 있는 녹음실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는 녹음실 주인들이 대부분은 음악을 하지 않고 임대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조율에 돈을 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집집마다 피아노가 있으니까 장롱처럼 취급하는데, 실은 정말 예민한 악기에요. 보통 피아노 수명을 100년 잡는데, 나무를 자르는 순간부터 습기가 점점 빠지고, 한마디로 노화가 되는 거죠. 그는 내 악기가 만들어진 70년대에는 그나마 나무 값이 저렴했을 때여서 통나무가 많이 사용되었다고 했다. 그럼 제 악기는 언제까지 쓸 수 있나요? 그건 장담할 수 없죠. 관리하기 나름이니까. 나는, 장롱까지는 아니어도, 너무나 당연하게 내 악기가 언제고 지금처럼 소리를 내어줄 거라고 생각해온 사실을 당황스럽게 깨달았다. 눈앞에 정교하고 복잡한 속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연약한 내 악기가 있었다. 문득 나는 피아노가 사람처럼 여겨졌다. 피아노는 정말 예민한 악기에요. 습도를 잘 조절해줘야 저 쇳줄을 지탱하는 나무가 버틸 수 있어요. 정성을 들여 다뤄주는 애정을 받을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니, 나는 너와 참 많이 닮았구나. 우리는 모종의 연대감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율이 끝난 후에도 그와의 대화는 거의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신기한 건 우리가 선 채로 얘기했는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을 만큼 대화에 몰입했다는 사실이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는 (피아노) 친구를 보내기 아쉬워 나는 이런 저런 궁금증을 내비쳤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공구함을 정리하고 나갈 채비를 하는 그의 발이 바닥에서 머뭇거리며 쉽사리 떨어지려하지 않았으므로 그 역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정성스런 손길을 거친 내 악기가 얼마나 더 활기를 되찾았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대화가 종결되고, 그는 머뭇거리는 내게 한 번 피아노를 쳐보라고 권했다. 나는 <All the things you are>의 첫 마디를 조심스럽게 눌렀고, F-로 시작하는 첫마디에서 B플랫-7으로 넘어가는 둘째마디를 짚을 때 환호했다. 사람들은 조율을 한 시간 넘게 하고 있으면 뭘 그렇게 오래 걸리냐고 불평해요.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지 아는 그는 죽어가는 환자를 소생시키는 의사처럼 죽어가는 악기를 살리는 사람이다. 그를 통해 내 악기는 얼마간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됐다. 앞으로도 오래고 그를 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