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병실의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세계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새벽부터 비가 내린 탓에 병원으로 가는 길은 흐리고 축축했다. 어떤 악취도 100% 제거해 준다는 커다란 ‘악취제거’ 간판을 지나쳐 엄마와 나는 병원에 도착했다. 어느 병원을 가도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나는 병원 냄새가 너무 싫어 엄마. 병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중얼거리듯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벌써부터 코를 막고 있다. 온갖 의료기기 냄새와 환자들, 의료진들의 체취가 비오는 여름날의 습한 공기와 만나 병원이라는 공간의 냄새를 이루고 있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여겨져서 그런가, 병원과 관계된 모든 것들은 나를 공포스럽게 한다. 잡히지 않는 그 공포에 주눅이 든 나는, 병원의 냄새를 불쾌하게 여기면서도 마음 한켠에 환자들을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일고 있다는 사실을 불편하게 감지했다. 누구는 아프고 싶어서 아픈가. 병실 복도에 일렬로 서있는 주인 없는 휠체어가 그런 나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공휴일이어서 그런지 병원은 한산했다.
휴게실 의자에 힘없이 앉아있는 몇몇 환자와, 간병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을 지나쳐 나는 이모가 있는 병실로 들어섰다. 6118호. 문 앞에서 바로 나는 이모를 찾을 수 있었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육 년 째 병원을 거처로 살고 있는 여인, 나의 이모다. 목줄을 뺀 이모의 목에는 흐릿한 상흔이 남아 있다. 다섯시 반을 조금 넘긴 시간, 그녀는 뱃줄을 통해 저녁을 섭취하고 있었다. 그녀의 배로 들어가고 있는 물질은 색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갈색 빛을 띤 물이었다. 엄마와 나를 보자마자 이모는 신이 났다. 아유 너희가 오니 내가 너무 좋아서 춤 추고 싶을 지경이다.
이모는 육십이 넘었으나 여섯 살 정도의 인지능력을 가졌다. 뇌의 중요한 혈관이 터진 뒤로 줄곧 그러한 상태다. 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이모가 어쩌면 세상을 떠날 지도 모른다는 말을 의사들로부터 들었다.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었는지, 이모는 기억에서 많은 세월을 지웠다. 지우고,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기억들만 남겼다. 이를테면 엄마, 딸, 동생, 좋아라, 사랑한다 같은 것들. 웃으면 복이 와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라 같은 말들도 있다. 유난히 크고 둥근 이모의 눈은 대부분 초점이 없는데, 우리와 한 공간에 있지만 여전히 그녀는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모는 종종 나를 그녀의 딸과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엄마는 언니, 얜 내 딸이잖아. 언니는 언니 딸 있잖아. 라며 정정한다. 그러면 이모는 그러냐? 니 딸이냐? 아유 이쁘다. 한다. 그럼 나는 그녀에게, 이모, 나 누구야? 한다. 이모는 모르겠다 나도. 한다. 그러면, 아주 조금, 내 가슴 한 켠에서는 흰 눈이 내리는 것 같은 심정이 든다. 마치 존재하던 세상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그런 흰 눈. 나는 굴하지 않고 내 이름을 묻는다. 이름의 첫 두자를 말해주면 늘 알아맞춘다. 그러면, 아주 잠깐, 가슴에 내렸던 눈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한 번 돌리면 다시 나를 동생, 혹은 딸이라고 하지만. 분명 그녀는 꿈을 꾸고 있는 걸 테다. 6118호에서의 하루는 보잘 것 없을 정도로 훨씬 달콤하고 환상적인 그런 꿈을 말이다. 이모, 밖에 비가 많이 와. 큰 구름도 되게 빨리 흘러가네. 오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 어느 계절일까요? 그녀는 “더우니까 봄”이라고 한다. 더워도 그녀에게는 봄인 걸 보니, 내 추측은 신빙성이 없는 게 아닌가보다.
이모와 같은 병실을 나눠 쓰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만의 세계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여인은 문병 온 남편이 떠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 남편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는데, “거짓말을 하잖아 나한테”라고 계속 말한다. 옆에 서 있는 간병인은 “정옥 씨를 더 좋아해. 아내를 더 좋아해 남편은. 남편도 정옥 씨 안 버릴 거야.”라며 다독인다. 남편은 아내를 계속 달랜다. 운동을 해야 얼른 집에 가지, 어서 정신 좀 차려. 오늘도 좌절감에 휩싸여 그는 병실 문을 나선다. 남편이 가면 그녀는 다시 그녀의 세계로 돌아온다. 텔레비전에서는 화장 짙게 한 아이돌이 나와 춤을 추고 노래한다.
잠시 자리를 비운 이모의 간병인이 돌아오고, 엄마와 나는 이모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자리를 나섰다. 이모는 또 오라고 하고, 우리는 알겠다고 한다. 복도 창가를 통해 본 하늘이 유난히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이모의 꿈도 아름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