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는 이커머스판
최근 조금 오픈된 마인드로 이력서를 제법 여러 서비스에 공개해뒀다. 이직을 당장 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슬슬 준비를 해볼까 싶어서다. 이커머스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적어두니 헤드헌터는 물론이고 유명 기업에서 직접 인터뷰 제안을 주기도 하더라. 대기업부터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제안들을 보면서 생각을 해봤다. 왜들 이렇게 난리지?
이커머스(E-commerce)
이커머스(e커머스)는 전자상거래(electronic commerce) 약자로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것을 말한다. - 네이버 용어사전
일렉트로닉 커머스의 준말. 그냥 온라인 커머스다. 친한 선배가 그러더라. 왜 그냥 인터넷 쇼핑이라고 하면 되지 괜히 이커머스라고 부르냐고. 그래, 틀린 말 아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쇼핑을 할 수 있는 '온라인 커머스'를 지칭하는 것이니 이커머스, 온라인 쇼핑, 인터넷 쇼핑 다 그 말이 그 말이다. 가상공간에서 커머스가 일어나면 그게 그냥 이커머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최근에 이커머스 업계는 M&A의 열풍이 대단하다. SSG의 W컨셉 인수를 시작으로 카카오가 지그재그를 인수했고, 무신사가 29cm와 스타일쉐어를 품는다는 기사까지 이어 나면서 대체 이 이벤트는 언제 끝나나 싶다. 나도 업계에 있지만 유명 이커머스 회사들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전쟁터도 이런 전쟁터가 따로 없다. 그래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니 M&A 구경하는 재미가 요즘 아주 쏠쏠하다. 그런데 문득 왜들 이렇게 몸집을 불리려고 애쓰는 것일지 생각해보게 됐다.
업계인들의 글이나 시장분석 전문가들의 기사들을 보면 아마도 네이버랑 쿠팡 양대산맥의 시장 잠식을 막으려 애쓰는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인이 아니면 왜 네이버와 쿠팡이 양대산맥인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혹시나 네이버는 그저 검색 포털이고 쿠팡은 단순한 오픈마켓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커머스 입장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먼저 네이버는 스마트스토어라는 거대 커머스 플랫폼을 갖췄고, 네이버페이로 어떤 곳이든 돈을 박박 긁어모을 수 있는 간편 결제도 갖춰놨다. 일찍이 물류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형업체 CJ대한통운과 손잡으면서 든든한 빽을 갖춰놨다. 단순 이커머스(그래 그거. 온라인 쇼핑)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네이버 혼자 사고팔고 배송까지 지들끼리 쿵짝쿵짝 다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냥 단순히 쇼핑만 할 수 있게 열린 것이 아니라 쇼핑을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된 것이다. 네이버 안에서 이 모든 게 이루어진다는 것. 가히 폐쇄형 플랫폼이라 불릴만하다.
쿠팡은 쇼핑이라는 행위를 생활화한 유일한 기업이다. 물론 쿠팡과 같이 생활 속 쇼핑을 시도했던 또 다른 기업이 있었다. SSG다. 쓱배송으로 좀 잘하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마트 상품만 가능하기에 품종의 다양성면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이에 쿠팡은 아마존의 FBA처럼 자기들 창고에 상품들을 때려 넣고 고객이 원할 때 빠르게 생필품, 생활잡화, 식품 등 고객에게 다품종을 엄청 빠르게(로켓배송) 가져다준다. 마트에 꼭 갈 필요가 없어졌다. 쿠팡 없을 때 어떻게 살았지 싶을 정도다. 엄청난 적자를 안고도 물류혁신을 시도했던 것은 이렇게 우리의 삶에서 쇼핑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한 쿠팡의 노력 아닐까 싶다.
국내 온라인 쇼핑 점유율이 네이버가 약 17%, 쿠팡이 약 13% 정도로 둘이 합치면 30% 해 먹고 있다. 수치상으로도 현시점에서 얘들이 갑인 것은 사실이다. 점유율이 높다는 것은 구매자도 판매자도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는 것과 같다. 플랫폼이 암만 좋아도 판매자가 없으면 구매자들이 들어올 이유가 없기에 모두가 만족스러울 때 점유율은 올라가게 된다.
판매자가 네이버를 선택하는 이유는 수수료와 검색이다. 다른 플랫폼에서 10% 이상의 수수료를 도둑맞느니 스마트스토어 내 결제 수수료(물론 검색을 통하면 좀 더 내긴 하지만)가 훨씬 이득이다. 쿠팡을 선택하는 이유는 판매율이다. 스마트스토어보다 수수료는 높지만 판매되는 속도에 비하면 좀 비싸더라도 쿠팡에 입점하는 게 더 재밌기도 하다. 하루에 배송이 여러 개 나가는 것만큼 판매자 입장에서 기분 좋은 일은 없으니까.
구매자 입장으로 봐도 장점이 확실하다. 네이버와 쿠팡만 쓴다면 살면서 필요한 대부분을 쇼핑할 수 있다. 거기에 네이버, 쿠팡 모두 멤버십(그리 비싸지도 않다.)을 통해 다양한 혜택들을 구매자에게 제공하니 이 둘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때문에 네이버와 쿠팡을 양대산맥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긴장을 탈 수밖에 없다. 옛날에 소위 잘 나가던 이베이(G마켓, 옥션)나 11번가, 인터파크 같은 회사들은 파격적인 변화를 주지 않는 이상 판매자도 구매자도 찾을 필요가 없는 플랫폼으로 점점 전락하고 있다. 나만해도 옛날에 옷 사려면 11번가, 전자제품은 옥션, 티켓은 인터파크였는데 이제 네이버, 쿠팡이면 다된다. 굳이 힘들게 여러 군데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한 군데서 사면 포인트도 더 쌓이니 더욱이, 찾아가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 둘이 갖지 못한 걸 가진 강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앞으로 이커머스 양대산맥의 지각변동이 기대되게 하는 조합이 나타났다. 바로, 무신사다. 무신사가 최근 29cm와 스타일쉐어를 품는다고 발표했다! 왜 수많은 이커머스 회사들 중 29cm, 스타일쉐어일까? 네이버와 쿠팡이 완전하게 갖지 못한 것, 바로 '브랜드'를 더 강하게 품기 위해서다. 이 녀석들 참 고집 있게 하나만 판다.
쿠팡은 C에비뉴를 통해 점차 브랜드를 늘려간다 했지만 아직 그 성장이 귀여울 뿐이고, 네이버는 애초에 동대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네이버뿐 아니라 많은 회사들이 동대문 패션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여러 이커머스 회사가 동대문 패션에 집중할 때 '브랜드'에 집중한 플랫폼들이 무신사, 29cm, W컨셉과 같은 곳이다. 무신사가 애초에 W컨셉을 품으려 했지만 부자기업 SSG를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고, 둘러보니 여성 브랜드로 선방하고 있는 29cm가 눈에 띈 것.
남성 브랜드에서는 무신사가 독보적이지만 여성 브랜드는 좀 달랐다. 무신사가 암만 대단해도 우신사보다는 29cm가 좀 더 먹힌 것은 사실이다. 둘 다 앱 UX가 좀.. 거시기해서 그렇지 브랜드만 놓고 봤을 때는 남성과 여성의 색깔이 완벽히 구분됐던 별도의 플랫폼이었다. 거기에 OOTD(Outfit Of The Day)의 대표 서비스인 스타일쉐어까지. 구매자를 끌어들이는 패션 콘텐츠와 구매욕 뿜뿜하는 충성도 높은 브랜드의 연결, 이번 통합을 통해 '패션은 무신사'를 완전하게 이뤄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성의류 쇼핑몰을 해봐서 그런지 동대문 패션에 집중하는 게 과연 얼마나 큰 메리트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동대문 의류가 다양성은 보장되지만 품질면에서는 글쎄.. 최근 원단, 부자재값 등 지속적인 상승으로 의류 단가 자체가 올라가면서 비싼데 품질도 그저 그런 상품들이 시장으로 나온다. 앞으로도 단가 조정이 원활히 되지 않는 한 값비싼 저품질은 계속 양산될 것이고 결국 저렴한데 품질까지 좋은, 일명 가성비 좋은 '브랜드' 상품들이 결국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무신사의 행보는 기대가 크다. 따지고 보면 29cm는 경쟁사에 가까웠을 텐데 손을 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그 어려운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그렇게 시장의 흐름에 몸을 맡겨 판단하고 의미 있게 자신들의 색깔을 가꿔나가는 무신사의 직원들이 부러웠다. 물론, 속사정은 모를 일 이긴 하지만.
그럼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네이버나 쿠팡, 무신사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을까? 글쎄, 꼭 그렇지는 않을 것도 같다. 판매자는 물론, 구매자들도 워낙 제 입맛에 맞는 플랫폼을 찾아다니다 보니 니즈는 언제나 변화하고 설령 누군가 독식하더라도 갑작스럽게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그 주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카페24, 메이크샵, 고도몰 같은 자사몰 플랫폼 또는 이베이(G마켓, 옥션), 11번가 등 오랜 전통을 가진 회사들은 사고만 좀 전환한다면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아마도 오랜 세월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어가면서 축전된 대량의 데이터를 갖고 있을 것이고, 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픈마켓은 모르겠지만 자사몰 플랫폼들은 양대산맥, 유니콘 조합이 갖지 못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존이 존재한다고 해서 쇼피파이가 성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쇼피파이로 성공을 거둔 판매자들이 아마존에 입점해서 매출을 극대화하는 케이스는 이미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자신의 집(자사몰)은 어느 판매자든 갖고 싶어 한다. 우리가 전세보다는 자가를 사려고 애쓰는 것과도 같은 논리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사몰이 있는 것이 자신들의 브랜딩을 위해서도 훨씬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 있는 서비스라고 해서 있는 것 안에서 안주하며 가려고 한다면 승산이 없다. 버릴 건 버리고, 집중할 것에 집중을 해야 한다. 이미 잘 갖춰놨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낙후되기 마련이다. 쇼핑몰 디자인은 1년만 지나도 촌스럽다고 리뉴얼을 한다고 난리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잘 만들어놨다고 방치하면 좀만 지나도 촌스러워지기 마련. 선두를 달리는 회사들과 어떤 면에서 더 차별적으로 잘할 수 있을지 또는 어떤 부분을 따라잡아야 할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상황은 이커머스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카드사를 떠올려보자. 예전에는 핫한 카드사하면 BC카드 또는 신한카드 정도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지금은 어떤가? 거의 대부분이 현대카드를 떠올린다. 쪼잔하게 혜택 줄 거면 적립 자체를 낮추고 제한을 풀어버린다는 신선한 생각, 시대에 걸맞게 온라인에 포인트를 더 집중해서 쌓아주는 것과 같이 시장의 변화를 잘 감지한다. BC카드처럼 안심하고 방심하는 순간, 뒤쳐지는 것은 금방이다.
시장은 계속 변한다. 누가 식품을 인터넷으로 사는 게 생활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오늘 주문해서 오늘 내 받아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었던가. 이 모든 게 현실화되고 있는 시장이 이커머스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이 업계가 참, 빠른 변화가 신선하면서 두렵기도 하고 재밌으면서 힘들기도 하다.
이놈의 업계가 왜 이렇게 난리인가 그냥 가볍게 정리 차원에서 써보려던 글이 좀 길어졌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어떤 일들을 더 맞이할지 기대도 되지만 한 편으로 약간은 보수적인 우리 회사가 미워지기도 했다. 안정적이고 일하기 좋은 환경임은 맞지만, 회사에서 뭔가 더 해보고 싶은 열의가 생기는 일이 좀처럼 없는 것 같다. 갈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어떻게 이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