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결혼과 출산의 쓴 맛을 보기 전인 이십 대 중후반의 어느 날, 출장지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회사에서 병아리처럼 삐악 거리던 시절이라 딱히 중요한 업무를 하지는 않았는데, 급하게 챙겨야 할 자료 때문에 내 PC를 켜야 했었나 보다. 당시 나를 데리고 일을 가르치던 삼십 대 중반의(지금 생각하면 그 또한 풋풋했던 시절이다) 사수는 나에게 컴퓨터 비밀번호를 물어왔다. 비밀번호는 부팅 암호와 윈도 암호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암호는 ‘aufwhd’ 한글타자로는 ‘멸종’
‘멸종’이요.
내 대답에 그는 콧구멍으로 웃었다. 수화기 너머로 타다닥 타자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 그럼 다음 암호는?
‘위기’ 요.
그날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에 복귀했을 때 사수는 병아리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타주며 요즘 많이 힘드냐고 물어왔다. 내가 이전에 했던 업무가 멸종위기 야생동물에 관한 것이었다는 걸 모른 채.
그런데 그즈음의 나는정말로‘멸종의 위기’ 비스무리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저녁식사 때 국물요리의 뜨거운 김을 쐬면 피로감에 스르르 눈이 감기는그런 나날이 계속되었다. 달리는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스트레스와 자괴감으로 반쯤 유체 이탈된 영혼이 지하철의 속도감을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휘발되는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회초년생에게 직장이라는 곳은 나를 온전하게 받아주는 곳이 아니었다. 화려한 쫄쫄이를 입고 한 마디의 대사 없이 마술 상자 속에 몸을 구겨 넣는 서커스 단원처럼, 이렇게라도 해서 내가 이 쇼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팔다리가 엉킨 채 버티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건 절대 내 본연의 모습이 아니었으니 나는 사라져 가는 셈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위기감은 늘 턱 끝에서 간당거린 것 같은데 멸종은커녕 자식을 둘이나 낳고 잘 살고 있는 것은애를 하나씩 낳을 때마다 주어지는 육아휴직 덕분이었나. 역시 그런 것인가.
지금이라도 인사팀에 전화를 걸어 ‘복직하고 싶은데요’ 한 마디만 하면 나를 위한 쫄쫄이와 마술상자가 신속하게 준비될 것을 안다. 이 명백한 결말이 두려워서 나는 –아무도 진지하게 묻지 않았건만- 가슴에 손을 얹고 신중한 질문을 던져보는것이다.
'만약 내가 직장을 가지 않아도 되는 모든 전제들이 뒷받침된다면... 관둘 수 있겠어?'
이에 대한 대답을 괜스레 아끼며, 휴직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꾸었던 꿈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눈을 떴을 때 기분이 이상야릇하여 일기에 기록해 두었었다.
마침내 어떤 장소에 당도했을 때, 그는 골프가방에서 장 담글 때나 쓸 것 같은 기다란 나무주걱을 꺼내더니 처음 연습할 땐 이게 더 좋다며 나에게 건넸다. 나는 샤인머스캣 한 알을 나무주걱으로 쳐서 수챗구멍에 넣는 연습을 했다.
과장님이 잘한다며 나를 추켜세우는 말씀을 하셨고, 같이 있던 두어 명의 직원들이 부러운 듯, 시샘하듯 나를 쳐다봤다.
순전히 개꿈인데 잠에서 깨자 꽤 참담한 마음이었다. 과거의 기억들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 같기도 했다.
일로 인해 더럽혀진 자존감은 오직 일을 통해서만회복될수 있기에,돌이켜보면 나는 이상할만치 좌절하고 우스꽝스럽게 우쭐했었다.
그러나 좁은 책상 위에서 컴퓨터와 전화기, 서류 나부랭이로 직조해 가는 알량한 성취감일지언정, 그걸 잃고 내가 살 수 있을까. 직업이라는 간판을 벗겨내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공자님이 말씀하였듯 마흔이 정말 불혹의 나이라면, 혹하는 일 없도록 단단히 응집된 무언가가 내 안에도 있다면, 그것은 분명 지난 십여 년간 멸종의 위기를 느낄 만큼 나를 쥐고 흔들었던 업무, 직업... 그런 것에서 비롯된 것이지 싶다.
그러니 직장 밖의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새로운 배움을 시도하거나, 하다못해 인터넷으로 올라오는 신문기사를 읽을 때에도 나는 내 직업이 만들어 놓은 무언가가 내면 한 켠에 오만하게 도사리고 있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직장이라는 서식지에서 떨어져 나온 장기휴직자에게이것은또 다른 부류에멸종위기감을 불러올 전조증상이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