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이후로는 거울신경이 둔화되어서 새로운 운동을 배우기 힘들어진다는 글을 어느 책에서 읽었다. 거울신경이란-다들 알고 있겠지만- 남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 자신이 직접 행동할 때와 같이 뇌가 활성화되는 신경체계라고 하는데, 감정이입, 공감능력, 학습적 행동들이 모두 이 거울신경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게 거울신경인가 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나는 이 사실을 약간의 충격과 함께 머릿속에 꼭꼭 기억해 두었다. 살면서 악기 하나, 운동 하나, 외국어 하나 할 줄 알면 나름 충만한 인생 아니겠는가-생각만 하며 실천 없이 살아왔는데 갑자기 마지노선이 주어진 느낌이었다.
뭐 그런 위기감과 함께 아직은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던 작년 초, 나는 인터넷으로 초급자 수영 세트-올블랙의 수모, 수경, 5부 수영복-를 구입했다. 빨아서 말려놓은 수영복을 붙들고 고민하기를 또 두 달여, 마침내 락스 냄새가 청량한 그곳으로 나를 던져 넣은 것이다.
두 번째 강습 날이었다. 수업종료 10분 전쯤 강사가 커다란 에어매트리스를 끌고 왔고모두들 ‘슬라이딩 후 풍덩’을 즐기기 시작했다. 내가 초딩 엄마라면 고딩에서 대딩 엄마쯤 돼 보이는 어머님들이 워터파크 마냥 줄을 서서 꺅꺅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생경한 모습에 어리둥절해진 나에게 회원님 한분이 슬쩍 말을 걸었다.
“그쪽 때문에 하는 것 같은데 어서 해봐요.”
나 때문에? 그날은 음파 발차기를 처음 배운 날이었다. 물속에서 음~ 하며 숨을 참을 때는 고통스럽게 버둥거리다가 파~ 하면 온 힘을 다해 킥판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나의 모습은 익사 직전의 조난자 같았을 것이다. 심지어나의 음파음파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경직되고 공포에 찬 모습일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 같았는데, 이런 것도 거울신경과 관련이 있으려나.
여하튼 물을 무서워하는 나를 위해물의 재미(?)를 알려주려는 강사님의 배려라니... 그 과격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순서대로 한 명씩 스타트를 하고, 꼴번까지 끝나야 다시 일 번이 스타트를 하는 게 수영장의 룰이라, 모두가 한차례 씩 슬라이딩을 하고 나자 일제히 나를 기다려주었고, 나는 수영복을 입은 어색한 몸뚱이를 물 밖으로 꺼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주춤주춤 달려가서 매트리스 위에 몸을 던지긴 했는데, 역시 힘이 모자랐다. 시퍼런 물에 처박힐 용기가 안나서 일부러 힘을 덜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슬라이딩 후 풍덩’에서 ‘풍덩’이 빠지니 그 꼴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5부 수영복을 입고 매트리스 위를 연거푸 미끄러지는 내 모습은 마치 투명인간과 싸우는 레슬링선수처럼 보였을 것 같다.
그러나 단 한 명도 낙오시키지 않겠다는 강사의 따스한 배려에, 많이 즐거워하시는 어머님들의 훈훈한 응원에 힘입어 세 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매트리스를 미끄러져지나 물에 가 닿았는데.... 끝내 힘인지 용기인지가부족했던 나는 상반신만 ‘풍덩’하고 하반신은 여전히 매트리스 위에 남아있는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수영장을 다닌 지 이제 일 년이다. 같이 시작했던이들 중 젊은 회원들은 지금쯤이면 오리발을 끼고 자세교정에 한창일 것이다. 물속에서 돌고래같이 날쌔던 어머님들은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앓는 소리를 내며 서로 밀어주고 당겨 줘서겨우 물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나는? 수영장을 일 년이나 다녔다는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여전히 초급반에서 접배평자 사이를 헤매고 있다. 거울신경은 남의 동작을 보기만 해도 활성화된다는데, 보고 또 보고 수십 번 따라 해도 안 되는 건 거울신경이 아닌 운동신경을 탓할 일인가?
20대 젊은 회원들은 싱싱한 거울신경 덕에 빨리 배우는구나 싶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타고나길 힘이 좋거나 유연한 이들도 금방잘 하는구나 하며 입맛을 다신다. 어르신들은 어깨는 좀 안돌아갈지언정 여유롭게 휘적거리듯 헤엄치며 놀라운 지구력을보여준다. 그러나 나처럼 애매하게 젊고(또는 애매하게 늙고)힘아리는 없는데 몸은뻣뻣하며거울신경과 운동신경이 총체적으로 부족한 이들도 오래 하다 보면 어찌 됐든 수영 비슷한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니, 인간의 잠재력이란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수영장 벽을 발로 힘껏 차며 유선형 몸이 수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나아갈 때 나는 나 자신이 한 마리의 갈치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 인생을 충만하게 할 단 하나의 운동으로 '수영'을선택했다는 사실이 대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한 마리의 갈치처럼 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건 스타트의 찰나일 뿐, 이제 팔과 다리를 버둥거려 여전히 시원찮은 자유형을, 배영을, 평영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거울신경의 마지노선 따위는 그만 접어두기로 하자. 중요한 것은 이제 나도 호모 스위밍, 헤엄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