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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Apr 18. 2023

거울신경의 마지노선

1주년을 기념하여

40대 중반 이후로는 거울신경이 둔화되어서 새로운 운동을 배우기 힘들어진다는 글을 어느 책에서 읽었다. 거울신경이란 -다들 알고 있겠지만- 남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 자신이 직접 행동할 때와 같이 뇌가 활성화되는 신경체계라고 하는데, 감정이입, 공감능력, 학습적 행동들이 모두 이 거울신경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게 거울신경인가 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나는 이 사실을 약간의 충격과 함께 머릿속에 꼭꼭 기억해 두었다. 살면서 악기 하나, 운동 하나, 외국어 하나 할 줄 알면 나름 충만한 인생 아니겠는가-생각만 하며 실천 없이 살아왔는데 갑자기 마지노선이 주어진 느낌이었다.


뭐 그런 위기감과 함께 아직은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던 작년 초, 나는 인터넷으로 초급자 수영 세트-올블랙의 수모, 수경, 5부 수영복-를 구입했다. 빨아서 말려놓은 수영복을 붙들고 고민하기를 또 두 달여, 마침내 락스 냄새가 청량한 그곳으로 나를 던져 넣은 것이다.     


두 번째 강습 날이었다. 수업종료 10분 전쯤 강사가 커다란 에어매트리스를 끌고 왔고 모두 ‘슬라이딩 후 풍덩’을 즐기기 시작했다. 내가 초딩 엄마라면 고딩에서 대딩 엄마쯤 돼 보이는 어머님들이 워터파크 마냥 줄을 서서 꺅꺅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생경한 모습에 어리둥절해진  나에게 회원님 한분이 슬쩍 말을 걸었다.     


“그쪽 때문에 하는 것 같은데 어서 해봐요.”    

 

나 때문에? 그날은 음파 발차기를 처음 배운 날이었다. 물속에서 음~ 하며 숨을 참을 때는 고통스럽게 버둥거리다가 파~ 하면 온 힘을 다해 킥판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나의 모습은 익사 직전의 조난자 같았을 것이다. 심지어 나의 음파음파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았다.  모습이 얼마나 경직되고 공포에 찬 모습일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 같았는데, 이런 것도 거울신경과 관련이 있으려나.


여하튼 물을 무서워하는 나를 위해 물의 재미(?)를 알려주려는 강사님의 배려라니... 그 과격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순서대로 한 명씩 스타트를 하고, 꼴번까지 끝나야 다시 일 번이 스타트를 하는 게 수영장의 룰이라, 모두가 한차례 씩 슬라이딩을 하고 나자 일제히 나를 기다려주었고, 나는 수영복을 입은 어색한 몸뚱이를 물 밖으로 꺼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주춤주춤 달려가서 매트리스 위에 몸을 던지긴 했는데, 역시 힘이 모자랐다. 시퍼런 물에 처박힐 용기가 안나서 일부러 힘을 덜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슬라이딩 후 풍덩’에서 ‘풍덩’이 빠지니 그 꼴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5부 수영복을 입고 매트리스 위를 연거푸 미끄러지는 내 모습은 마치 투명인간과 싸우는 레슬링선수처럼 보였을 것 같다.


그러나 단 한 명도 낙오시키지 않겠다는 강사의 따스한 배려에, 많이 즐거워하시는 어머님들의 훈훈한 응원에 힘입어 세 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매트리스를 미끄러져지나 물에 가 닿았는데.... 끝내 힘인지 용기인지가 부족했던 나는 상반신만 ‘풍덩’하고 하반신은 여전히 매트리스 위에 남아있는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수영장을 다닌 지 이제 일 년이다. 같이 시작했던 이들 중 젊은 회원들은 지금쯤이면 오리발을 끼고 자세교정에 한창일 것이다. 물속에서 돌고래같이 날쌔던 어머님들은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앓는 소리를 내며  서로 밀어주고 당겨 줘서 겨우 물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나는? 수영장을 일 년이나 다녔다는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여전히 초급반에서 접배평자 사이를 헤매고 있다. 거울신경은 남의 동작을 보기만 해도 활성화된다는데, 보고 또 보고 수십 번 따라 해도 안 되는 건 거울신경이 아닌 운동신경을 탓할 일인가?


20대 젊은 회원들은 싱싱한 거울신경 덕에 빨리 배우는구나 싶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타고나길 힘이 좋거나 유연한 이들도 금방  하는구나 하며 입맛을 다신다. 어르신들은 어깨는 좀 안돌아갈지언정 여유롭게 휘적거리듯 헤엄치며 놀라운 지구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나처럼 애매하게 젊고(또는 애매하게 늙고) 힘아리는 없는데 몸은 뻣뻣하며 거울신경과 운동신경이 총체적으로 부족한 이들도 오래 하다 보면 어찌 됐든 수영 비슷한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니, 인간의 잠재력이란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수영장 벽을 발로 힘껏 차며 유선형 몸이 수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나아갈 때 나는 나 자신이 한 마리의 갈치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 인생을 충만하게 할 단 하나의 운동으로  '수영'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대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한 마리의 갈치처럼 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건 스타트의 찰나일 뿐, 이제 팔과 다리를 버둥거려 여전히 시원찮은 자유형을, 배영을, 평영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거울신경의 마지노선 따위는 그만 접어두기로 하자. 중요한 것은 이제 나도 호모 스위밍, 헤엄치는 인간이라사실이다.




Image by Daniel Perrig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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