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집 밖을 나서면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조개처럼 입을 꼭 닫아버리는 그 증상을 ‘선택적 함묵증’이라 부른다는 것은 어른이 되고서 알았다.
명절이면 친척들이 모여 2박 3일이나 3박 4일씩 질기게 놀던 시절이었다. 유난히 다정했던 삼촌은 혓바닥에 곰팡이가 피도록 입을 다물고 있는 나를 종종 불러 앉히곤 했다. 니 옷이 예쁘네, 손가락이 참 길쭉하네, 딱히 대답할 부담이 없는 이런 말들로 살살 달래면 앙 다물었던 입술에서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삼촌의 부고 소식을 듣고 나도 모르게 찔끔찔끔 눈물을 닦은 것은 그 다정한 기억 때문이었다.
또 하나 생각나는 일이 있다. 역시 명절이었고, 둥글게 모여 앉아 화투를 치는 어른들 틈에서 나는 몸을 뒤틀며 앉아 있었다. 밤은 어둡고, 피곤하고 따분하기만 한데, 어른들의 놀이는 점점 더 흥이 올라서 엄마 등에 매달려 있기도 지친 나는 스르륵 바닥에 누웠다. 흥겹게 들썩이는 엉덩이들과 그에 맞춰 찰지게 던져지는 화투패 소리 속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떴을 때 어른들의 소란스러운 즐거움은 여전했고, 다만 삼촌이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니는 자는 모습이 참 편안해서 좋네. 어른들은 잘 때도 인상을 찌푸리거든. 근데 애들은 자는 모습이 편안하고 좋다. 좋아서 한참 쳐다봤다.”
자는 모습이 좋아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그 심정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도 머릿속이 복잡한 밤이면 세상모르고 잠든 내 아이들의 보드라운 실루엣에 물끄러미 시선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주름 하나 없이 깊게 잠든 동실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엄마 뱃속만큼이나 까마득한 무언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잠은 더욱 안 온다.
얼굴에 기미가 올라오듯, 간에 지방이 쌓이듯, 뒤꿈치에 각질이 일어나듯, 어른의 잠에도 세월의 때가 끼나 보다. 조개처럼 다물었던 입을 이제는 제법 잘 놀리는 줄 알았건만,끝내하지 못한 말들과 기어코 해버린 말들의 부스러기가 자잘한 감정의 주름들 사이에 먼지처럼엉겨 붙는다.
그래서 어른은 신나게 하늘을 날거나 맛있는 걸 잔뜩 먹는 꿈 대신 질척거리는 현실과 묘하게 닮은 꿈을, 그 조차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뭔가 찜찜한 기분만을 남긴 채 피곤한 아침을 맞이하게 되고, 밤사이 부쩍 큰 아이들이 송알송알 늘어놓는 굉장한 꿈 이야기를 잠자코 들을 뿐이다.
그렇다, 아이들!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돌이켜보면 ‘후훗, 이제 나도 어른이로군’하는각성의 타이밍은 딱히 없었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도 모르게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어른이니까 그렇지, 너도 어른 되면 잘할 수 있어, 이건 위험해서 어른이랑 같이 해야 해...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온 이런 말들이 어느새 나 자신을 어른으로 떠밀어냈다.
밤이다.
삼촌의 장례식에 다녀온 지는 며칠이 되었다.자리에 누우면그날 밤이, 시끌벅적했던 명절의 밤이 떠오른다. 종일 기름에 전을 지지고, 바짓단에 흙을 묻히며 벌초를 했을, 산더미 같은 할 일을 해치우고 마침내 둘러앉아 왁자하게 놀던 어른들. 니는 자는 모습이 참 좋네... 쓸쓸한 듯 다정한 음성도.
오늘도 집집마다 어른들은 고단하고 소란스러운 하루를 지나 아이들 곁에 누울 것이다. 아이들은 조갯살처럼 여린 속을 걱정 없이 내어놓고 새근새근 잠을 자겠지. 나를 어른으로 밀어낸 이 작은 생명의 평온함에 안도하며,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까마득하게 그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