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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Dec 08. 2022

그녀의 아이덴티티

다리아 모르겐도르퍼를 추억하며


투니버스가 아직 유, 초딩들에게 모든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던 시절.     


일주일에 한 번, 밤 10시경이면 나는 경건하게 티브이 채널을 투니버스에 맞추고, 비디오테이프로 녹화 준비를 하며 다리아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라라 라~라~라~’ 나른하게 반복하는 그 노래도 기꺼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마음이었다.    

 

하이틴 시절의 내가 진심으로 추종했던, 지금도 내 이메일과 아이디 등에 선명한 흔적을 남겨놓은 그녀, Daria.     


그녀 답지 않은 구구절절한 설명글을 늘어놓고 싶진 않지만 다소 매니악한 면이 있기에 (적어도 내 주위엔 그녀를 아는 자가 없었다) 약간의 소개를 붙이고자 한다.    

She is daria.

병맛 애니의 대표격인 ‘비비스와 버트헤드’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고, 스핀오프 애니로 제작되어 1997년부터 2002년까지 MTV에서 방영되었다.

그녀의 풀네임은 다리아 모르겐도르퍼.

런데일 하이스쿨에 다니며, 염세적인 쇼 프로 sick sad world를 애청하는,

자기 비하가 심한 아버지와 워크홀릭 어머니, 예쁘고 경박한 여동생과 함께 사는,

변화 없는 표정, 무미건조한 말투, 심드렁한 태도,

심오한 독서 편력, 유려한 작문능력, 송곳 같은 통찰력을 지닌,

때로 멍청한 교사들과 더 멍청한 클래스메이트들을 향해 냉소적으로 일갈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이들(대체로 어른들)에게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을,

‘왠지 말 걸고 싶지 않은 여학생’ 정도로 분류될 그녀, 다리아.

     

그토록 다리아에 열광했던 건 나 또한 학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복을 다려 입고 검은 생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는 고등학교 2학년, 아직 스무 살의 문턱을 넘기 전 - 정신과 영혼이 성숙을 갈구하며 온 힘을 다해 깝치던 시절이었다.

    

비록 현실은 수줍음에 앞머리만 매만지는 여고생일지언정, 고백하건대 그 시절 내 안에는 분명 다리아가 있었다. 10대 삶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등장인물 – 부모, 형제, 교사, 친구 - 중 그 누구보다 나는 현명하고 분별력이 있으며 침착한 공격성을 지녔다고 믿었으니까. 정체 모를 정체성을 희미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그 시기에 나는 그녀에게서 벅찬 동질감을 느꼈고, 그녀의 아이덴티티는 기꺼이 내 것이 되었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지금, 나는 다리아를 소재로 이 글을 쓰려하는데, 무엇보다 나를 난감하게 한 건 다리아에 대해 -정확히는 내가 왜 그토록 다리아가 좋았는지에 대해 - 무엇하나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예전에 다리아를 보며 느꼈던 심상을 떠올리기 위해 인터넷 정보들을 찾고 유튜브 편집 영상을 수 차례 돌려보는데, 이건 마치 이름도 모르는 동창생을 소개해야 하는 듯 당혹감만 커질 뿐이었다.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삶의 바운더리가 넓어지등장인물도 말도 안 되게 늘어났다지만 그 사이에 주인공이 사라져 버린 줄은 (또는 바뀌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직장을 다니고 아이를 키우며 일상 거제도 해변의 몽돌 마냥 매끄럽게 다듬어지는 동안, 내면 깊은 곳에 단단하게 뭉쳐진, 나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변함없는 나, 나라는 인간의 본질은 이제는 다리아, 그녀를 떠올릴 필요가 없을 만큼 고유해진 것일까?     


철학적이며 고전적인 그 질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은 자의식 과잉의 청소년처럼 유치할까봐, 한 말씀 하려고 목을 가다듬는 노인처럼 고리타분할까봐, 이도 저도 아닌 나이를 먹은 나는 말끝을 흐릴 수 밖에 없다.    


다만 이 글을 쓰며 알게 된 사실이 두 가지 있다. 하나한 달도 채 남지 않은 2022년이 다리아가 종영한 지 20주년이 된 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투니버스에서 시청한 두 개 시즌 외에도 세 개의 시즌과 특별 에피소드들이 더 있어서 다리아가 런데일 하이스쿨을 졸업하는 것으로 전체 시리즈가 종영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정보를 알게 해 준 나무위키에 감사할 뿐이다.)


그녀의 감동적인 졸업연설은 아래와 같다.     


(출처 : 나무위키)


어쩐지, 피자를 시켜먹기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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