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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Jun 27. 2016

적소유

돈에 대한 자세

돈에 대한 열등


돈을 가지지 못한 자는 돈에 대한 열등의식을 갖는다.


난 내가 가진 돈으로, 온전한 내 돈을 갖고 원하는 것을 갖고 싶은 마음에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와 신문배달을 하러 갔었다. 하지만 새벽 하루 일을 마치고 난 두 번 다신 갈 수 없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뭐가 부족해서 니가 신문배달 같은 걸 하냐고 엄청 뭐라고 했다. 나에겐 분명 돈은 내 노동의 대가였고 순수한 의도였다.

하지만 부모님이 보는 나의 모습은, 신문배달이라는 인식은 자신들의 열등의식이 투사되는가 보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자신에게도 무엇하나 편하게 소비하지 않았던 아빠는 엄마와 아들 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내 경제적 능력을 갖고 가정을 이룬 지금은 아빠의 그 삶을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컴퓨터를 사든, 게임기를 사든 아빠의 결재를 받아야 했다. 어른의 눈에는, 생존에 있는 아빠에게는 유치하기 짝이 없던 그런 것들이었다.


무엇하나 내 마음 편히 가질 수 없었던 그 시간 동안 난 소유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아빠에게 눈치 보며 불안하게 잡고 있던 그 게임기는 결국 내 것이 아니라는 것. 난 지금 아빠의 집에 살고 있는 것이지 여긴 내 집이 아니라는 것.

다른 누군가의 좋은 것을 불편하게 가지는 것보다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진짜 내 것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 도끼는 내 도끼가 아니오


지금 가진 것을 자신의 것이라 받아들이지 못했던 아빠는 가족에게 너그럽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더 남기고, 아껴서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했다. 물론 그래야만 했던 시대 상황과 아빠의 현실을 이해한다. 하지만 난 그런 아빠 밑에서 다른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24평인 아파트는 지금의 눈에 차지 않는다.

내가 갖고자 하는 기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맞는 기준이 32평이라면 24평의 아파트는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그 목표는 나에게 부족함과 목마름을 만든다.

나의 목마름은 다른 이에게 줄 물 한 방울을 어렵게 만든다.


난 내가 흙수저로 태어났음을 알고 있다.

내 쇠도끼를 은도끼로, 금도끼로 바꾸기 위해 누군가를 속이고 내 소중한 사람을 목마르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내 쇠도끼로도 내 가족을 위한 땔감을 준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물질을 더 채울 것이 아니라 내 가족의 따듯함과 행복을 채우고자 할 것이다.



돈을 볼 것인가


난 알뜰시장에서 중고 공룡 장난감을 천원에 사 왔다. 그 밖에도 구두, 옷 등등 많은 것을 사 왔다.

하지만 내 동서는 내 그런 모습을 상당히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아이가 커서 나중에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내가 사 온 딸을 위한 중고 물건, 정말 헐값에 사 온 그 물건을 동서는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난 내 아이가 비싸고 좋은 새 것을 원하는 아이로 키우지 않을 것이다. 아빠가 사 온 그 물건의 값어치를 돈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가 사 온 마음을 생각하게 할 것이고, 내 아이 또한 이렇게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당당하고 멋진 것으로 인식하도록 가르칠 것이다.


난 내 아빠를 통해 보잘 것 없어도 내 것을 갖고자 다짐했다. 내 아이도 이 보잘 것 없는 중고 장난감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 난 아빠와 마찬가지로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고, 남들이 부러워할 최상의 것들로 채울 수도 없다. 난 내 아이에게도 원하는 바를 다 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계속 말해줄 것이다.



돈을 낮추고 택한 것


난 돈을 많이 벌겠다, 더 좋은 것을 갖겠다는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내 소유 대한 의지는 작지만 확고했다.

난 내 삶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 것이고 그만큼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교사를 선택했던 것도 이것이 정말 중요했다.

그리고 20년을 하고 그만둔다고 했을 때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지 확실히 선택을 했었다.

물론 연금법이 바뀐 지금 이 계획은 틀려버렸으나 돈이 주는 풍요로움보다는 삶의 여유로움을 선택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변하지 않는다.


난 연금을 100만원 받으면 그에 맞게 생활할 자신이 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난 30만원짜리 조립 컴퓨터를 샀다. 지금 글을 쓰는 이 핸드폰도 액정이 깨진 형에게 받은 중고폰이다.

면도기는 군에서 보급받은 것을 아직 쓰고 있다. 날을 아껴 쓰고 남는 것 모아서 한 개 날을 6개월씩 쓰면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쓸 것이다.

옷은 아내가 인터넷으로 아주 저렴하게 사준다. 남들이 자랑하는 이름 달린 옷들은 1년에 한 번 복지포인트를 쓰면 끝이다.



적소유


난 무소유를 실천할 수 없다.

하지만 분수에 맞게 적당한 만큼을 소유할 것이다. 경제력이 늘어나면 외제차도 살 것이고, 더 넓은 평수로 옮길 것이다.


사랑이란 선택이라고 했다.

사람에선 친구인지 부모인지 연인인지 선택하라.

소유에선, 한정된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선택하라.


난 의류함의 옷을 꺼내 입을지언정 내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밥을 먹겠다.

호화로운 해외여행을 꿈꾸느니 내 사람들과 주변을 거닐며 바람을 느끼고 싶다.


내가 버린 다른 이의 눈과 사치만큼 내 여유는 커진다.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돈으로 산 무엇이 아닌 너와 함께 하는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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