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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May 14. 2019

아까워서 아낀다

양말에 살짝 구멍이 났다.

누군가는 "돈도 많은데 좀 사라."고 말한다.

난 대답한다. "이렇게 살아서 돈이 많은 거라고."

내 결과는 태도에 기인하고, 태도를 바꾸지 않기에 결과가 지속된다.



모나미


어릴 적 쓰던 그 볼펜의 이름을 잊지 못한다.

좀 쓰다 보면 볼펜 똥이 생겨서 꼭 귀퉁이에 닦고 하던.

그래도 그 볼펜이 쓰는 감도 좋았고 작고 편해 애용했다.


더 이상 안 나와 침을 묻히고, 열어서 잉크도 밀어보고.

그 조그마한 볼펜을 징글징글하게도 썼다.

정말 끝까지 다 썼을 때의 쾌감은.


지금은 교사가 되어 볼펜이 너무 많다.

학습클리닉, 금연 등등 사은품만도 엄청나다.

받아서 좋지만, 하나를 다 쓰기도 전이라 쌓여간다.


가끔은 반 아이들에게 분양을 한다.

어차피 내가 쓸 양은 1년에 한 개면 충분하다.

쓰지 않을 볼펜을 굳이 살 필요도, 갖고 있을 필요도 없다.



샴푸


이젠 어른이 되어 아이들 바스에서 쾌감을 느낀다.

씻기는 건 내 담당이다 보니 쭉쭉 줄어드는 바스가 기쁘다.

그만큼 내가 아이들을 키웠구나 하는 보람, 알뜰하게 다 쓴 뿌듯함.


난 물을 부어 마지막까지 짜내어 쓴다.

통을 씻어야 분리수거하니까 번거로울 일도 아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을, 나에게도 도움이 되게 할 뿐이다.


우리 아빠는 징한 짠돌이였.. 아니, 이다.

어릴 땐 화장실 물 아낀다고 큰 거 아니면 물도 못 내리게 했다.

노란 소변이 그대로 있는 변기를.. 나중에 닦느라 엄마만 더 고생했다.


그런데.. 나도 그런 피를 물려받았다.

이왕이면 네 식구 오줌을 모아서 내리려 한다.

꼭 이거에 맞춰 방광을 조절할 순 없지만.. 

이왕이면 물 한 번에 4소변이면 고효율 아닌가? ㅎㅎ



반찬


음식점에 가면 안 먹는 반찬이 꽤나 많다.

우린 해산물도 안 좋아하고 새우젓, 고추 이런 거 안 먹는다.

우리한테 내놓으면 그냥 음식물 쓰레기가 되니까, 도로 반납한다.


그냥 줬으니까, 내가 낸 돈에 포함된 거니까, 다시 부르기도 귀찮으니까.

예전엔 생각하지도, 의식하지도 못하고 버리고 왔다.

돌려주기 시작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환경을 위해라는 거창한 말은 못 하겠다.

그 반찬 돌려준다고 내 가계에 도움될 일은 없다.

단지, 손도 안 대고 남겨놓은 그 음식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이런 내 행동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나.

그저 한 인간의 작은 움직임, 우주의 먼지 같은 내가.

그래.. 뭐 큰 명분이 필요한가. 그냥 아까우니까 아끼는 거지.


내 결과는 태도에 기인하고, 태도를 바꾸지 않기에 결과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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