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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Apr 18. 2019

마음이 남아서 외제차 좀 사렵니다

이전 글에서 돈이 남아 외제차를 산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절약만으로 남은 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마음이 남아있었다.



함께


출근길에 자전거  할머니 할아버지를 봤다.

할머니는 뒷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계셨다.

두 분 다 70세는 족히 넘어 보였다.


나와 아내는 동시에 말했다.

"아름답다..."

정말.. 이 말밖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내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20살에 만나 4년 내내 아내를 많이 태워 다녔다.

춘천 공지천이고, 교대고, 강대후문이고..(가끔 뒷 타이어가 터지긴 했지만 ㅋㅋ...)


난 한 번도 귀찮지 않았다.

다리가 좀 아파도 우린 함께였으니까.

이미 난 그때부터 외제차를 살 자격을 얻었는지 모른다.



한 길


아내는 휴직 중에 면허를 땄다.

내가 학교 만기가 되어 먼 학교로 갈지 몰라서다.

다행히(?) 벽지 쪽에 자리가 없어 근거리 농어촌으로 발령을 냈다.


내 아내는 정말 운전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자전거도 직진밖에 할 줄 몰라, 멈추고 돌려야 옆으로 간다.

남들은 하면 익숙해지고 나아진다 하지만, 할수록 더 겁먹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지금의 학교는 아내를 출퇴근시켜주기 딱 좋다.

첫째는 유치원 버스를 태우고, 아내랑 둘째와 차에 오른다.

아내를 길가에 내리고, 둘째는 내가 다니는 학교의 병설유치원에 간다.


내가 승진에 미련이 남으면 다시 벽지로 옮길지 모른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길은 갈라질 것이다.

하지만 난 승진보다 우리가 하나인 게 좋다.



하나


다른 형들이 나에게 조언했다.

아내가 운전하면 엄청 편하다고.

애들 통학도, 술먹고 대리기사도.


난 형들한테 그랬다.

"전 그냥 차 하나만 끌고 싶어서요.

내 소나타에, 아내 아반떼 합치면 외제차 나오는데요. ㅋㅋ"


내가 차를 하나만 모는 건 내 경제관념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내를 평생 태울 수 있는 마음이 있다.

차는 내가 다 갖고 싶고, 일은 아내에게 반을 넘기고 싶은 건 모순이다.


난 남들 부러워하는 외제차를 살 수 있다.

내 아내는 남들 부러워하는 외제차를 몰고 오는 기사를 데리고 산다.

우리도 70이 넘어, 그 차가 외제차든, 똥차든, 자전거든, 넌 항상 내 곁에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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