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아무리 까불어도 혼내고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 관용과 설득을 해주셨죠. 선생님께서는 인내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그런 선생님을 본받고 싶어요
1학기를 마치는 소감에 학생이 적어준 내용이다.
자주 삐딱하게 말하던 아이라 감동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 아이러니한 마음도 생겼다.
화를 내야 할 때
예전에는 화를 낼 땐 냈다.
잘해줄 땐 잘해줘도, 엄할 땐 엄해야 한다고.
교사의 화는 학생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첫 번째 수단이라 여겼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알아들었다.
선생님이 이 정도로 화낼 정도면 미안해했다.
속까지 진심으로 반성한진 몰라도 분위기 파악은 했다.
직접 체벌은 할 수 없어도 소리는 질렀다.
그래도 안 되면 책상을 쾅 내리쳐 겁을 줘도 봤다.
그것은 교실을, 나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러다 한 학생을 만나며 '화'를 버렸다.
내 화는 먹히지 않았고 다음 날 학부모만 찾아왔다.
"너의 행동에 선생님의 마음이 이랬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겁을 줘서라도 제 말에 따라오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습니다.
다신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이제는 내 감정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잡고 싶진 않다.
혼이 나야 할 때
화를 내고 싶지 않다고 화낼 일이 없는 건 아니다.
화를 내고 싶지 않아도 혼낼 일은 생긴다.
감정을 빼고 혼내는 일은 쉽지 않다.
작년, 신규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다.
나름 엄할 땐 엄하게 지도한다고 했다.
우연히 본 혼내는 모습은 시원한(?) 맛이 없었다.
처음엔 좀 더 무섭게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더 무서워질 수 있을까.
이제 이런 조언은 너무 어렵지 않나.
나도 점점 약해지고 있는데
신규 선생님은 그 모습이 가장 강한 표현이었을지 모른다.
분명 잘못을 했고, 잘못한 줄 알아야 하는데
잘못한 아이를 혼내기보다 설득하고 구슬려야 하는 느낌.
"학생님, 친구를 괴롭히는 행동이 감지됐습니다. 벌점카드 받아 가세요"
교사를 AI로 대체하기 이전에 감정부터 없애는 건 아닐까 하는 망상이 든다.
마음 없이 해야 하는 마음
화를 내는 게 최선은 아닐 것이다.
나도 화내지 않고 표현하는 방향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화를 교사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만 보지 않길 바란다.
외부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화를 낸다고 여긴다.
어른인 교사가 어린 학생을 이해하고 보듬어주지 못한다고.
실상은 학생과 학생의 문제에 개입하거나 학급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일이 많다.
아이가 부모의 사탕을 가져다 먹었다고 화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나 동생의 사탕을 빼앗아 먹었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건 어른이 이해할 차원이 아니라 가르쳐야 할 문제다.
교실에선 그런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정말 나쁜 짓을 하는 애.
교사가 막지 않으면 그 피해가 주변으로 바로 퍼지는.
화만 내는 교사를 옹호하려는 글은 아니다.
교사의 화가 모든 상황에 공정할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잘못에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움직일 것 같지 않다.
교사의 화는 공적인 것이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불의에 대한 저항이다.
부디 교사가 교사로서의 마음을 잃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