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응, 늦었어!라고 말하고 싶은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by 다크포니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둘 다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 침투하는 무서운 생각에서 비롯된다.

생각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는 대신 끔찍한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 강박 행동이 나타날 수도 있다. -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中






나는 침투적 사고라는 단어가 있는지 며칠 전에 알았다. 그러나 침투적 사고와 함께한 세월은 얼마나 오래됐는지 기억할 수 조차 없다. 착 달라붙는 강박적 사고는 불안감과 함께 붙어 다닌다.


이유 없이 불안했고, 이유를 알아서 불안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이유기 때문이다.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를 읽는 내내 마치 내 이야긴가 싶을 정도로 저자의 불안과 우울감에 대한 경험이 너무 공감됐다.


딱히 문제 될 게 없는 데도 걱정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전전긍긍한다. 이때는 걱정거리 하나를 처치하면 또 다른 걱정거리가 튀어나오고, 마음이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치닫는다. 나 자신과 타인에게 자꾸만 불같이 짜증이 일었다. -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中


혹시 전전긍긍 보다 더 힘든 게 뭔지 아는가?

전전긍긍, 걱정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정말 힘들다.


걱정 앞에서 나는 그저 예민하고 못난 사람일 뿐이다. 고백컨데 살면서 단 한 번도 이해받은 적이 없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일 뿐이다. 말해봤자 이해는커녕 '못난 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낙인'이 찍힐 바엔 그냥 예민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편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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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 잘 모르는 브런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사실 몇 명은 아는 거 같은데.. 그냥 모르는 척해줬으면 좋겠다. 부탁입니다. 모른 척해주세요


책을 읽으면서 가장 위로가 된 것은 적어도 지구 상에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이 최소 한 명 이상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멋지게 극복까지 하고 있다니!!!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의 저자 벨라 마키는 달리기를 통해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올해 2월부터 시작한 달리기가 이제는 내 삶을 구성하는 루틴이 되었다.


달리러 나가기까지 힘들었지만, 막상 달리고 나면 개운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항암으로 바닥난 체력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처음엔 700m도 뛰기 힘들었다. 그럴 땐 뛰다 걷다를 반복했다. 잘못 뛰어서 발바닥을 다친 적도 있고, 무릎이 아팠던 적도 있었다.


무식하게 달리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안 다쳐야 매일같이 뛸 수 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격어가며 뛰기 시작한 지 8개월째, 이제는 6km 정도는 걷지 않고 뛸 수 있다.


그동안 침투적 사고에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것저것 해봤지만 달리기만 한 게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더 달릴 수밖에 없죠! -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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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쪽으로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람이 쉽게 바뀌진 않더라....


바로 오늘 나의 강박증과 불안증이 폭발했다. 그래서 다 관두고 싶었다.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가는 길이 있다고 치면 5단계에서 3단계로 강등된 것만 같았다. 사실 강등되면 3단계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지만... 그냥 다 관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헛된 희망고문 같아서.


이럴 땐 감정부터 분리하라고 책에서 읽었다. 그래서 몰입할 수 있는 영화를 한편 보고 낮잠을 잤다. 보통 알람을 맞추고 낮잠을 자는데 오늘은 알람 없이 잤다.


낮잠 잘 때는 꿈을 잘 안 꾸는데 오늘은 꿈도 꿨다. 꿈에서도 시달렸다. 한참을 시달리다 잠에서 깼는데, 꿈은 금방 잊히고 다 관두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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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를 펴 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달리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달리기가 만병통치약 또한 아니라는 것도.


언제든 불안증이나 강박증은 스멀스멀 올라올 수 있지만, 달리는 하루하루가 쌓일수록 단단해지는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달리기를 통해 불안이 부쩍 완화되고 복잡한 생각이 풀린 것에 초점을 맞췄는데, 그 외에도 내가 달리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엔도르핀, 세로토닌, 자연, 몰입을 이야기하면서 그만큼이나 중요한 걸 하나 깜빡했다. 바로 자존감이다. -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中


특히 9장과 10장이 이 책의 백미(白眉)라고 생각한다. 벨라 마키는 덤덤하고 위트 있는 문체로 달리기가 어떻게 자신의 불안증과 우울증을 극복했는지를 솔직하게 써 내려간다.


이 책에서 달리기에 대한 맹목적인 강요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더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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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자존감이 건강한 수준이라는 것을 짐작할 만한 요소가 몇 있다. 예를 들면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 것, 낙천주의, 확신에 찬 말과 행동, 타인에 대한 신뢰, 자신을 잘 돌보는 것 등이다. 자신감이 없으면 우울증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빠지고 뭐든 위험하다 싶으면 피하려고만 든다.


나는 그런 단점을 모두 갖고 있었다. -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中


자신을 잘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세상 사람 모두가 나에게 실망한다고 해도 나 스스로 자신에게 실망하면 안 된다.


오늘 하루 힘든 나를 위해 케이크를 샀다. 조각 케이크 말고 생일 케이크를 사서 맛있게 먹으며 영화 한 편을 봤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에서 그랬다. 실패는 끝이 아닌 과정이라고... 맞다, 오늘의 힘듬은 단지 과정일 뿐이다.


끝으로 오늘도 우울과 불안으로 고군분투하는 당신께 이 책을 바친다. 안녕히 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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