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2015 Audi Q5)

우리는 같은 곳을 보며 다른 길을 달렸다.

by 시골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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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의 첫 주말이 밝았다.


금요일 저녁, 나는 후배와 직원들의 술자리 제안을


“주말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라는 핑계로 거절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박스를 정리하고, 필요한 생필품을 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들은 분명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토요일 아침, 낯선 햇살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마주한 것이 ‘처리할 일’이 아니라 온전히 감당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끝없이 펼쳐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한 시간.


서울의 주말은 늘 정해진 역할과 계획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이들의 학원 라이딩, 양가 부모님 댁 방문, 밀린 집안일. 때로는 그 빽빽한 시간표가 숨 막힌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명확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선장 없는 배처럼 표류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나도 모르게 자동차 키를 집어 들었다. 언제나처럼, 답답할 땐 일단 운전대를 잡고 보는 것이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지하 주차장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내 차의 잠금 버튼을 눌렀다. 삑,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가 번쩍이며, 어둠 속에서 익숙한 은색 SUV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낯선 도시에서 내가 가진 유일한 과거의 증거였다.


나는 목적지 없이 해안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한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다른 한쪽으로는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마천루가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내가 좋아하는 90년대 팝송의 볼륨을 높였다. 차창으로 들이치는 짭짤한 바닷바람이 뺨을 스쳤다. 그래, 이것이 내가 원했던 자유였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오롯이 나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 나는 잠시 해방감을 느끼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눈부신 가을 햇살이 정면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운전석 햇빛가리개를 내렸다. 그 순간, 가리개와 천장 사이에 꽂혀 있던 작은 사진 한 장이 툭, 하고 내 무릎 위로 떨어졌다. 언제 거기에 있었는지조차 잊고 있었던, 빛바랜 사진이었다. 12년 전쯤, 강원도 여행에서 찍은 사진. 앞니 빠진 우진이가 내 목에 매달려 있고, 억지로 웃는 시연이의 머리를 선율이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집어 들어, 잠시 차를 갓길에 세웠다.


자동차. 나에게 그것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때로는 도피처였고, 때로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좁은 쇠 상자 안에 지난 25년의 시간이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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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처음으로 샀던 중고 세단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 차를 ‘날쌘돌이’라고 불렀다. 주말마다 우리는 날쌘돌이를 타고 서울 근교를 헤맸다. 돈은 없었지만 시간은 많았다. 차 안에서 김밥을 먹고,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미래를 계획했다. 그때의 자동차는 우리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희망의 공간이었다.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우리는 1~2대의 차를 거쳐서 지금의 SUV로 차를 바꿨다. 날쌘돌이가 우리 둘만의 공간이었다면, 이 차는 언제나 북적이는 ‘움직이는 거실’이었다. 뒷좌석에는 늘 아이들의 과자 부스러기와 장난감들이 널려 있었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아이들은 서로 떠들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선율은 그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나는 그 소란스러움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백미러로 보이는 그 풍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차는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시끄럽고 정신없지만 따뜻했던 공동체의 일부였다.


그리고 몇 년 전의 어느 가을날. 아이들이 모두 집에 없고, 우리 둘만 차를 타고 부모님 댁에 가던 길이었다. 창밖으로는 아름다운 단풍이 펼쳐져 있었지만,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나는 운전에만 집중했고, 선율은 줄곧 창밖만 바라봤다.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아이들이라는 공통의 주제가 사라지자, 우리는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잊어버린 사람처럼 굴었다. 그때의 자동차는 안락한 거실이 아니라, 고립된 두 개의 섬을 싣고 달리는 고독한 잠수함 같았다. 우리는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이미 너무도 다른 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


나는 손에 든 사진을 다시 바라봤다. 사진 속의 네 사람은 웃고 있었다. 이 웃음은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나는 사진을 다시 햇빛가리개 뒤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음악을 껐다. 이제 어떤 노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차 안을 채웠다. 나는 계속해서 해안도로를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길가의 작은 포구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차를 세우고 방파제 끝으로 걸어갔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 아이와 함께 갈매기에게 새우 과자를 던져주는 가족, 손을 잡고 바다를 보는 연인. 모두가 누군가와 ‘함께’였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투명인간처럼 서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봤다.


나는 늘 자동차 안이 나만의 완벽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성역이라고.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그 공간의 의미는 언제나 타인에 의해 규정되었다는 것을. 선율과 함께 였기에 희망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였기에 거실이었으며, 그녀와의 침묵 속에서 잠수함이 되었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지금의 이 완벽한 고요는,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텅 빈 공백일 뿐이었다.


나는 차로 돌아왔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운전대에 이마를 기댄 채 한참 동안 눈을 감았다. 자유를 향한 나의 이 질주는, 결국 기억이라는 이름의 원점 주변을 맴도는 것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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