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nking Vodka for Survival
한 쿼터가 끝나고 다음 쿼터가 시작하기까지의 짧은 방학을 인터림(Interim)이라고 한다. 매 인터림마다 집에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하기 부담스러운 학생들을 위해, 다트머스에서는 조건에 맞는 사전 신청자에 한해 인터림 기간 동안 초과 비용 없이 기숙사 거주를 허용한다. 물론 다트머스 학생들은 기회가 된다면 무조건 해노버를 떠나고 싶어하는 관계로 실제로 신청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말이다.
1학년 첫 학기를 마치고, 딱히 겨울 방학 동안 할 일이 없던 나는 인터림 기간 동안 기숙사 거주를 신청했다. 반면 같은 층의 친구들은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밝은 얼굴로, “메리 크리스마스! 스카이프로 연락하자,” 라는 인사를 남기고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각자의 집으로 떠났다.
기숙사 동조교 (UGA) 마저 각 방에 대한 최종 점검을 마치고 집으로 떠나고, 브라운 3층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아니, 브라운 건물 전체에 나 혼자 남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Frat Row 바로 뒷편에 위치한 기숙사는 항상 시끄러운 편이었지만,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언제 그랬냐는듯 고요했다.
‘흠, 항상 방학 때 같으면 좋겠구먼. 완전 조용하잖아!’
기숙사 한 동을 전세낸 기분을 만끽하던 나는 인터림 시작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인터림 기간 동안은 기숙사에 난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트머스의 난방 시스템은 중앙 난방 시스템이라 특정 방만 난방이 되도록 조절할 수 없다. 이에 학교에서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동파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온도에 맞춰놓고 기숙사 난방을 일체 중지한 것이다. 물론 나 하나 때문에 기숙사 동 전체에 난방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겠지만, 난방을 꺼버리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매일 밤, 나는 레깅스 위에 두꺼운 츄리닝 바지, 기모 스웨트셔츠에 파카까지 껴입고 솜이불 위에 침낭까지 펼쳐 덮고서도 오들오들 떨며 추위와 싸워야 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 내가 강구한 특별 대책은 바로 술이었다. 내 방에는 몰래 마시려고 숨겨둔 보드카와 소주, 사케 등 각종 술이 있었는데, 나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이 술을 조금씩 따라 마시고, 술 때문에 몸에 도는 온기가 가시기 전에 빨리 잠을 청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왜 보드카를 그토록 많이 마시는지 정말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인터림 기간에 기숙사에서 지내는 것의 문제는 난방뿐만이 아니었다. 부지런한 청소 아주머니가 자꾸 복도 불을 다 꺼버리는 탓에,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복도에 나갈 때마다 의도치 않은 귀신의 집 체험을 해야만 했다.
‘학생이 안 사는 텅 빈 기숙사가 얼마나 으스스한지, 너희는 아마 모를걸?’
난 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지금도 팔에 닭살이 돋는다며 진저리를 쳤다.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복도와 화장실 불을 켜 놓으면 계속 다시 꺼버리는 청소 아주머니가 정말 원망스러웠다는 후문이다.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문제였다. 인터림 기간 동안에는 캠퍼스에 학생이 거의 없으니 식당 운영 시간도 굉장히 짧고, 운영하는 식당의 개수도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문을 연 유일한 식당은 내가 지내던 기숙사에서 먼 캠퍼스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가기 귀찮았던 나는 한 번 식당에 갈 때마다 이틀치 점심, 저녁을 사다 놓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마저 귀찮을 때는 방에 쌓아둔 컵라면과 당도 높은 과자 등으로 연명했다고 하니,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눈물겨운 이야기이다.
인터림이 끝날 무렵, 기숙사 친구들은 맛있는 집밥을 먹으며 푹 쉬어서 한결 나아진 얼굴로 돌아온 반면 나는 학기 중 그 어떤 때보다 더 피폐해진 상태였다. “앨리안, 너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무슨 일 있었어?” 친구들이 물을 때마다 나는 “야, 말도 마라,”로 시작해 약간의 과장을 보탠 인터림 기간의 고생담을 들려주며 겨울 인터림 기간의 기숙사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님을 강조했더랬다.
Written by El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