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ime to Choose Your Major!
대부분의 한국 대학들은 지원할 때부터 특정 전공 혹은 단과대에 원서를 쓰도록 하므로 입학할 때부터 대부분의 학생들의 전공이 정해져 있지만, 다트머스는 전혀 그렇지 않다. 지원서에 희망 전공을 3순위까지 썼던 것 같긴 하지만 사실 이것은 학생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해보는 차원일 뿐 별다른 의미가 없고 학생들이 입학 후 무엇을 전공하든 그것은 100% 학생들의 자유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다트머스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학생이 다트머스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학생보다 입학 성적이 더 높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같은 대학교 안에서도 과에 따라 소위 커트라인이 달라서 인기 학과에 들어가려면 더 높은 수능 성적이 필요하지만, 다트머스는 애초에 전공별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기 때문에 전공은 학생의 관심사에 기반한 선택일 뿐 고교때의 성적이나 학업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걸러 들어도 좋겠지만, 유학 입시 코디네이팅을 꽤 오래 했던 사람으로서 지원자들이 알면 좋을 것 같아서 한번 적어본다. 100% 자유전공은 지원자에게 무슨 의미일까? 엄청난 확신과 열정이 있지 않은 이상 Common App의 희망 전공란을 굳이 Economics나 Engineering처럼 아시아계 학생들이 흔히 지망하는 전공으로 도배해서 "뻔한 학생"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물론 그게 정말 진심이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겠지만, 어차피 희망전공이 입학의 당락을 결정짓는 데 큰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희망전공을 적으면 그걸 꼭 전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별로 확신이 없는 상태라면 학업적 관점에서 좀 더 "흥미로운 학생"으로 보일 수 있는 전공을 적어 낼 것을 권하고 싶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학생이 Gender studies나 Philosophy, Theater에 관심이 있다면 얼마나 흥미롭겠는가! 오직 합격을 위해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의 전공을 희망한다고 억지로 꾸며내서 원서를 작성하는 것은 해서는 절대 안될 거짓말이지만, 평소 마이너한 과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었다면 제발제발 적어내서 어필하길! 정 찝찝하면 희망전공 2순위로라도...!)
다트머스에서는 각 과별로 정해진 최대 수용 인원도 없다. 즉, 신입생 1000명 중 900명이 경제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면 그래도 전혀 상관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면 모든 학생들이 취업 잘되는 과로 몰리는 부작용이 있지 않냐구? 초반에는 그럴 수도 있긴 하다. 인기 과의 개론 수업은 보통 수강 인원이 70명을 웃돌 정도로 다트머스 치고는 매우 많은 편이니까.
하지만 이런 수업은 보통 굉장히 어렵고 힘들어서 많은 학생들이 결국 "아, 경제학은 나랑 잘 안맞나봐. 이건 고작 개론 수업인데 중간고사 성적이 B- 밖에 안나왔어... 벌써 이런데 더 어려운 수업 들으면 망하겠지?"라고 생각하며 경제학 전공을 포기하고 다른 전공을 찾아 나서게 된다. '취업이 잘 될 것 같아서,' '부모님이 하라고 해서' 등의 어설픈 이유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과의 수업을 수강한 사람들이 인트로 수업을 거치면서 다 떨어져 나가고 진짜배기 학생들만 살아남기 때문에 이런 수업을 보통 "잡초 뽑기 수업" (Weeding class)라고 부른다.
학생이 전부 자유전공학부면 전공은 대체 언제 정하냐구? 1학년 때 다양한 분야를 충분히 탐색하며 시행착오를 거쳐보고 전공을 정할 수 있도록 학교가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덕분에 다섯 번째 학기 (보통 2학년 2학기)까지만 마음을 정하면 된다. 심지어는 한번 전공을 정한 후에도 선택한 전공을 무한대로 바꿀 수도 있다! (전공필수과목을 채울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졸업학기까지 계속 바꿔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이렇게 전공을 선택하는 것을 다트머스에서는 "Major Declaration (전공 선언)"이라고 하는데, 이 "선언"이라는 단어는 전공을 대하는 다트머스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결국 전공이란 학생들이 "나 이거 할거야!"라고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트머스 학생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때부터 전교권이었던 우등생이기 때문에 입학할 때부터 이미 마음 속으로 뭘 전공할지에 대한 야심찬 계획이 어느 정도 있다.
나 역시 1학년 때는 건축공학을 전공하려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1학년 때 이를 위해 수강했던 수학 수업, 컴퓨터 공학 수업 등 본격 공학 수업도 아닌 pre-requisite 수업에서조차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고 공부 자체도 나랑 잘 맞지 않았다. 나는 건축이 좀 더 디자인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상 하드코어 이공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4학기 동안 스스로를 건축공학 전공으로 생각하고 수업을 들어왔지만 결국 한계가 왔고, 결국 5학기 때 앞서 들은 수업들과는 하나도 관련이 없는 전공으로 declare를 하게 되었다. (실제 사정은 이보다 복잡하지만 나중에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사실 다트머스에서는 "전공"이라는 개념 자체도 꽤 유동적이다. 특정 전공을 다른 분야와 "modify"하는 modification 전공을 하면 전공 수업 중 몇 가지를 덜 듣는 대신, 보다 흥미가 가는 다른 전공의 수업을 들어서 학점을 채울 수 있다. 나는 Film and Media Studies modified with Theater 전공인데, 영화 전공자로서 들어야 하는 수업 중 지루한 이론이나 영화사 수업 몇 가지를 빼고 연극쪽에서 무대 디자인, 의상 디자인 수업을 더 들었다. (결국 한국 대학의 연영과와 비슷한 느낌이라 나는 편의를 위해 연영과라고 말하고 다닌다) 아예 D.I.Y로 새로운 전공을 창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환경과학 (Environmental Science)과 건축 디자인 (Architecture), 정책 (Public Policy)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세 분야를 합쳐 "친환경 건축 정책"이라는 전공을 만들 수도 있다. 물론 각 과에서 지도 교수님의 승인을 받아야 해서 절차가 꽤 복잡하긴 하지만 말이다.
프린스턴처럼 복수전공을 아예 허용하지 않는 아이비리그와는 달리, 다트머스에서는 복수전공이나 부전공도 꽤 흔한 편이다. 다트머스의 수업들은 보통 한 수업당 1학점으로 계산되는데,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하는 학점은 35학점이고 한 전공당 보통 10학점 전후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머리를 잘 쓴다면 복수전공 + 부전공 (대략 27학점 소요)이 가능하고,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트리플 전공 (대략 30학점 소요)도 불가능하진 않다. 나 역시 Studio Arts가 복수전공인데, 건축공학을 전공해보겠다고 깝치던(?) 시절 이수해둔 미술 학점이 이미 4학점이나 있어서 3학점 추가 이수 시 부전공, 6학점 추가 이수 시 복수전공이 가능한 상태였기에 이미 이수한 학점을 잘 활용해서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다.
Written by El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