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dden Pre-Med Death Syndrome
다트머스 1학년생의 30%가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30%가 금융계나 컨설팅 취업을 준비하고, 30%가 의학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워낙 경기가 어려운 탓에 비교적 안정적이며 고소득인 전문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이로 인해 특정 학문에만 학생들이 쏠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농담이다. 재미있는 점은 학년이 올라갈 수록 해당 전공에 진짜 관심이 없던 학생들이 걸러지고 걸러져 결국에는 모든 전공에 골고루 분포된다는 것이다.
의예과(Pre-Med)도 예외는 아니다. 1학년 때는 전세계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과학 좀 했다 하는 학생들 중 상당수가 의예과를 전공하겠다고 덤비는 통에 사람이 정말 많지만, 그 수는 점점 줄어든다. 정말 의예과를 감당할 수 있는지, 그만큼의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문 수업들이 매우 혹독하기 때문이다.
“미국 영주권 없어? 그럼 그냥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학점만 버린다니까!”
고등학교 졸업 후 하루가 멀다 하고 빈둥거리며 놀던 대학 입학 전 여름, 다트머스 한국인 모임에서 내가 미국 의대에 관심을 보였을 때 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시작해보기도 전에 포기하라니, 대체 얼마나 힘들길래? 초중고 전부 한국의 치열한 교육환경 속에서 자라온 나는 앞으로 이보다 고된 공부는 없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의예과는 정말이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의예과 선수과목들의 평균 학점은 B 정도이다. 그 말인 즉, 학구열과 경쟁심만큼은 뒤지지 않는 다른 의예과 학생들 그리고 그 외 과학 전공을 하는 소수의 과학 천재들과 함께 겨루며 머리가 터질 정도로 열심히 해도 수업을 듣는 학생 중 반 이상은 B 아래 학점을 받을 수 밖에 없게끔 설계된 수업들이라는 것이다. 노력한 것에 비해 너무도 낮은 학점에 좌절한 학생들이 포기하고 다른 전공을 찾기 때문에 이런 선수과목들은 이른바 '잡초 뽑기 수업'으로 불리며 필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1~2학년 때 수강하는 바로 이 ‘잡초 뽑기 수업’들에서 나는 한 포기 잡초로 걸러지지 않기 위해 뒤뚱뒤뚱 끊임없이 달려야 했다. 하지만 학기말까지 발에 땀나도록 숨차게 쫓아가 마무리 짓고 나면 돌아오는 성적은 보석처럼 소중한 B 하나. 2학년 중반 이후 아직도 의예과를 하고 있다고 하면 동정 어린 눈빛이 돌아왔다.
"야, 너 아직도 의예과야? 행운을 빈다!"
그만큼 의예과는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 우선 의예과는 전공이 아닌 "의과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한 선수과목을 수강하는"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생물학, 화학, 의공학, 심리학 등의 전공 과목은 별도로 선택해야 하고, 그에 덧붙여 최소 13개 정도의 선수과목을 들어야 한다. 또한 MCAT이라는 의과 대학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고, 봉사 활동, 연구 참여는 필수 아닌 필수이다. 참, 높은 학점은 기본 중에 기본!
이런 엄청난 스트레스와 정신적 압박을 4년 동안 견디면서 의예과 학생들은 말 그대로 푹 삭아버린다. 우울증에 걸리는 학생들 심심치 않게도 있고,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종양이 생기는 학생, 갑자기 시력에 이상이 생기는 학생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종종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그야말로 의사 되기 전에 환자 될 판이다.
"이 정도면 <Sudden Pre-Med Death Syndrome>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 우리 이러다가 의대 가기도 전에 급사 하는건 아니겠지? "
"안 돼! 꽃다운 20대를 이렇게 살다 죽는다면 억울해서 눈도 못 감을 거야..."
1학년 때부터 지속된 의예과 학생의 팍팍한 삶으로 인해 해탈의 경지에 오른 나와 친구들은 종종 공부를 하다가 이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여느 날과 다름 없이 몰아치는 과제를 하며 <세포생물학>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대학에 와서 문학도 배우고 싶었고, 역사도 배우고 싶었고, 음악도 배우고 싶었는데… 그런데 이 쳇바퀴 같은 생활은 뭐람! 더 이상 못해먹겠어. 나 이제 의예과 때려 치울래!’
영혼 없는 과학 수업이 영혼을 쪽 빨아먹는 것에 지친 나는 문득 그간의 대학 생활에 엄청난 회의를 느꼈다. (물론 이것은 시험 전 날이라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날씨 좋은 날 베이커 베리 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여유롭게 문학 수업의 책을 읽는 분위기 있는(!) 모습. 그 것이야말로 내가 꿈꿔왔던 대학 생활이었다. 그 날 밤, 나는 공부하던 책을 덮고 아주 편하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시험 한 시간 전에 일어나 샤워하고, 화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시험장에 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험지를 첫 번째로 제출하고 나왔다.
“시험이 그렇게 쉬웠어? 어떻게 그렇게 빨리 풀었어? 나는 완전 망했나 봐 어떡해…”
시험이 끝나고 마주친 같은 수업을 듣는 한 친구가 나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 나 이제 의예과 안 하기로 했어.”
그렇게 미련 없이 세포생물학 수업을 드롭했던 나는 결국 다시 의예과로 돌아왔고, 선수과목을 모두 이수하며 생물학과 심리학 복수전공으로 졸업했다. 의예과라는 개미지옥은 종국에는 그 동안 고생한 것이 억울해서라도 그만두지 못하게 만드나 보다.
졸업반이 되고서야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 같이 불안하기만 했던 의예과 생활도 적응이 된 것인지 요령이 조금 생겼고, 나는 비로소 공부도 챙기고 마음의 여유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의학 대학원, 인턴, 레지던트 등 앞으로 의사가 되기까지 남은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하기만 하니, 계속 하기로 선택했지만 진퇴양난의 상황이긴 하다. 역시 처음부터 의예과 하지 말 걸 그랬나...?
Written by Song Heu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