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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21. 2021

다트머스 대표 꿀알바, 교내 편의점 알바 후기

Liche's Convenience

(1) DDS의 대표 꿀알바

탑사이드는 콜리스 학생회관 지하에 위치한 편의점이다. 원래 포코¹ 2층으로, (Top) 위치해 있다고 하여 탑사이드 (Topside)라고 불렸으나, 포코 2층에 테이블을 추가로 배치함에 따라 콜리스 학생회관 지하로 옮겨왔고 이제 탑사이드가 아니라 바틈사이드(Bottomside) 불러야 하지 않냐는 우스개 소리를 종종 듣기도 했다. 이에 2013 공식 명칭이 콜리스 마켓(Collis Market)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내가 아르바이트를  동안은 직원과 손님 모두 탑사이드라는 이름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아무도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탑사이드는 3D 직업으로 가득한 DDS를 대표하는 꿀알바 중 하나이다. 우선 편의점이기 때문에 앉아서 근무한다. 탑사이드는 2인 1조로 근무하는 시스템인데, 한 명이 포스기를 보면, 다른 한 명은 스캔한 물건을 봉투에 담아주고, 매대의 물품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매장을 청소하는 등 잡일을 하는 식이다. 하지만 포스기를 보는 사람이 봉투에 담는 것까지 한번에 하면 되고, 잡일은 누군가 지켜보지 않는 이상 굳이 하지 않아도 되니 실질적으로 한 명이 해도 되는 일을 두 명이 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DBA를 탑사이드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막은 이후로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에 매 학기 초 샴푸, 린스, 세제, 필기구 따위를 사려고 손님이 몰려들 때를 제외하고는 크게 바쁜 일도 없다. 종종 물건을 못찾겠다며 찾아달라는 손님이 있지만, 한 번 근무할 때 한 명 있을까 말까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근무 내내 할 일이 별로 없다.


탑사이드 근무 배정은 두 시간 단위인데 매 학기 초에 열리는 직원 회의에서 직급이 높은 순으로 선택하며, 동일 직급에서는 오래 근무한 순으로 고른다. 한 번에 연속으로 4시간까지 일을 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근무 시간은 8PM-10PM 그리고 6PM-8PM이다. 저녁 6시가 넘으면 매니저 등 정직원은 대부분 퇴근하기 때문에 그들이 매장에 들러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할 일이 없다.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는 저녁 시간 직후라 디저트를 사먹으러 들르는 손님들이 심심치 않게 있지만 8시부터 10시 사이에는 손님도 별로 없는 편이다. 따라서 이런 근무 시간대는 대부분 오래 근무한 학생 슈퍼바이저들의 차지이다. 이런 시간을 잘 활용하면 돈을 벌면서 과제 리딩까지 끝낼 수 있다. 탑사이드 3년차일 때 나는 계산대 테이블 위에 미니 이젤과 팔레트을 세팅해놓고 미술 수업을 위한 유화 과제를 한 적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포스기 사용을 굳이 쳐다보지 않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손이 익숙해지고, 스캔이 되지 않는 물품의 가격도 외우게 된다. 이 때부터는 손님이 계산을 하러 오더라도 물건 스캔부터 봉투에 담고 결제를 진행하는 것까지 손님과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기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손님과의 대화 역시 비닐 봉투가 필요한지, 결제 수단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묻는 간략한 질문 외에는 없다. 탑사이드의 손님은 90% 이상 학생이고, 아르바이트생들도 그들과 같은 다트머스 학생이며, 굉장히 바쁘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감사하게도 이렇게 성의없이 근무를 해도 계산만 틀리지 않는다면 컴플레인을 하지 않는다.


(2) 탑사이드 토드

탑사이드의 매니저 토드는 큰 키와 마른 체구, 흰 머리의 인자한 할아버지이다. 프링글스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콧수염이 특히 인상적인 그는 굉장히 사교적인 성격으로 가족사를 포함한 옛날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으며 수다 떨기를 즐겼다. 은퇴를 얼마 앞두지 않은 토드는 귀엽고 동글동글하지만 단정한 글씨체를 가졌고, 미술을 좋아해서 취미로 수업을 들으러 다니기도 했다. 종종 탑사이드에서 일하는 학생들의 캐리커쳐를 그렸는데 솜씨가 좋은 편이라 매번 꽤 닮은 구석이 있었다.


토드는 DDS의 매니저 중 가장 직원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자상한 매니저였다. 아르바이트생들이 펑크낸 근무 시간을 대신 기꺼이 채워주기도 하고, 한 명 한 명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전공하는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DDS의 총괄 대표는 탑사이드가 2명의 근무자를 쓰는 것을 항상 못마땅해 했는데, 그에 맞서 매 번 학생들의 일자리를 사수해 준 것도 토드였다. 때문에 DDS 대표는 탑사이드에 수시로 순찰을 와서 청소 및 매장 정리 상태, 근무 복장 상태 등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고는 했는데, 탑사이드 티셔츠를 입지 않고 근무하는 학생들이 문제가 되자 토드는 센스있게도 여벌 티셔츠 몇 벌을 카운터 아래 넣어놓고 급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언제든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은퇴하고 아내와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을 토드, 그가 없는 탑사이드는 나로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3) 대체 근무자 급구

학기 초, 직원 단체 회의를 통해 근무 배정표를 짜지만, 대부분 아르바이트생들은 학기 중 시험, 과제,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이유로 본인이 배정된 시간에 근무를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이 때는 탑사이드 직원 단체 이메일로 대체 근무자 급구 이메일을 전송한다. 탑사이드에 근무하는 직원 모두에게 전송하면 가장 먼저 전체 답장을 하는 사람이 대체 근무자가 되는데, 이 대체 근무는 추가로 돈을 벌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이다. 대체 근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시험기간과 파티 시즌, 그리고 학기말이다. 영화와 미술을 전공해서 상대적으로 중간, 기말고사 시험 준비가 필요 없었던 나는 시험기간마다 다른 사람의 근무 시간에 추가로 대체 근무를 해서 쏠쏠한 수입을 올렸다.


파티 시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베테랑 아르바이트생들이 선호하는 저녁 시간대 배정은 파티 시즌이 되면 애물단지가 된다. 그 시간이 바로 한창 캠퍼스 곳곳에서 재미있는 파티가 벌어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파티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는 파티 시즌마다 사람들이 버린 “황금 시간대” 근무 주워먹기를 통해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학기 말 역시 기말고사가 일찍 끝난 아르바이트생들이 집에 일찍 가기 위해 공식 학기 종료일 전에 비행기표를 예매하기 때문에 대체 근무자 급구 메일이 수시로 오는 시기이다.


(4) 어색한 순간들

탑사이드는 베리 1층 못지 않게 많은 페이스 타임을 가질 수 있는 장소이다. 캠퍼스 외부로 나가지 않고 각종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스 타임이 많기 때문에 어색한 순간도 많다.


1학년 때 나의 절친한 친구였던 한 여학생은 동급생인 D군이 늦은 새벽, 혹은 아침에 그녀의 방에서 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여러 목격담에도 불구하고 D군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와 친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D군이 내가 근무하던 중에 탑사이드에서 콘돔을 사가는 바람에 그들의 관계를 인정한 꼴이 되었다.


그릭 하우스 멤버의 선발 과정인 러쉬에는 짖궂은 미션들이 많은데, 그 중 일부 프래터니티는 지원자 (PNM)에게 탑사이드에서 무언가를 훔쳐오라고 시킨다. 사실 탑사이드는 아르바이트생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지 않기도 하고, CCTV가 달려있지 않기 때문에 뭔가를 훔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종종 아르바이트 중 의도치 않게 물건을 슬쩍하는 PNM을 볼 때는 굉장히 난감하다. 이런 PNM들은 주로 프래터니티 PNM이고 단체로 몰려다니기 때문에 절도를 지적했다가 시비가 붙으면 오히려 내가 곤경에 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나는 러쉬 기간 동안 PNM들의 절도를 목격하면 어쩔 수 없이 그냥 두었는데,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은 또렷히 기억하기 때문에 다시 탑사이드에 왔을 때 알아볼 수 있었다.


‘이봐 너, 내가 모르는 줄 알겠지만 사실 그때 너가 물건 훔친거 다 알고 있다고…!’


탑사이드의 비 학생 이용객 중 대다수는 캠퍼스 견학을 온 고등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님이다. 이들은 종종 탑사이드 알바생에게 다트머스 후드티를 살 수 있는 가게를 묻기도 하고, 기타 캠퍼스 내 장소들에 어떻게 가는지를 물으며 귀여운 관광객 티를 팍팍 내곤 한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이들 중 일부는 열심히 리딩을 하고 있는 내가 다트머스 학생임을 눈치채고 SAT에서는 몇 점을 받았는지, AP는 몇 과목 수강했는지, GPA는 몇 점인지 등 입시와 관련된 폭풍 질문을 쏟아낸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다소 개인적인 질문들을 거리낌없이 묻는 견학생들과 학부모를 상대하는 일은 종종 굉장히 난감하다. 투어 가이드한테 안 물어보고 왜 편의점 알바생에게 그런 것들을 묻는지, 나 원 참!


(5) 인종 역차별

탑사이드 학생 매니저 중에는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는 흑인 학생이 있었다. 그녀와는 같은 수업에서 프로젝트 팀을 한 적도 있는데 굉장히 똑똑하고 본인의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할 줄 아는 멋진 선배였다. 거기에 사교적인 성격으로 친구가 굉장히 많았는데, 그녀는 학생 슈퍼바이저의 권한을 이용해 친구들을 탑사이드 아르바이트로 꽂아주고는 했다. 사실 친구를 꽂는 것은 큰 문제는 아니다. 다트머스 대부분의 꿀알바는 친구를 통해 알음알음 얻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학생 슈퍼바이저였던 내 입장에서 그녀가 꽂은 친구들이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조금 문제가 되었다. 근무 시간 내내 친구를 불러다 카운터 바로 앞에 세워 놓고 수다를 떨며 손님의 동선을 막는다거나, 자주 늦는다거나, 과자를 뜯어먹고 계산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문제였고, 토드 또한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열심히 하지 않는 친구들을 몇 번 개인적으로 불러다가 혼을 낸 적도 있다고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듯, 탑사이드는 짬밥에 따라 근무 시간을 배정한다. 이렇듯 근무 태도가 좋지 않은 매니저의 친구들은 짬밥이 참에 따라 점점 더 좋은 시간을 배정받게 되었고, 이 좋은 시간이란 토드의 손에서 벗어난 시간이기 때문에 그들의 근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보다못한 나는 토드에게 이 정도면 해고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토드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물론 해고 하고 싶지. 진작에 해고 했으면 좋았을거야. 그런데 나는 분란이 일어나는게 싫어. 탑사이드에 흑인 애들이 얼마나 많니? 한두명을 해고했다가 흑인 애들 전체가 들고 일어나서 나를 인종 차별주의자로 몰고 가면 어떡해?”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인종 차별주의자로 몰릴까봐 근태가 심각하게 불성실한 직원을 해고하지 못하다니, 그야말로 갑과 을이 바뀐 일이었다. 이 황당한 인종 역차별 덕분에 나는 정말 꼴불견인 특정 몇 명의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감당해야만 했고, 내가 졸업하며 탑사이드를 그만 둘 때까지 그들의 근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6) 기억에 남는 손님들

탑사이드에서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파는 반면 초를 팔지 않는다. 기숙사에서 생일 초를 켜는 것이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숙사 조교 (UGA)를 포함하여 학생들 중 어느 누구도 그런 규칙 따위 신경쓰지 않고 생일 초를 켜지만, 교내 편의점인 탑사이드에서만큼은 교칙에 의거해 기숙사에서 사용할 수 없는 물품을 비치해두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터는 판다.) 덕분에 아르바이트생들은 종종 이에 대한 투덜거림을 듣게 된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날게 돋힌 듯 팔려나가는 것이 있다. 바로 1.5L 크랜베리 주스이다. 아마도 크랜베리 주스가 보드카와 섞는데 사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큰 체구의 남학생들 여럿이 와서 무거운 병을 싹쓸이해가곤 하는데, 그 덕에 탑사이드 내부에서는 크랜베리 주스는 몇 병을 입고시켜 놓던 무조건 금요일에 품절이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품을 주문할 때 재고를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많은 물량을 입고시키지는 못했다.


그 밖에 기억에 남는 손님은 항상 레드불을 박스채로 사가던 남자 손님이다. 한 박스에 60달러가 훌쩍 넘는 박스를 꽤 여러 번 사 갔는데, 본인이 다 먹는거라면 어쩐지 건강이 걱정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¹포코: Food Court의 앞 두글자씩을 딴 약자. 다트머스의 학생식당 중 하나로, 현재 공식 명칭은 '53 Commons이다.


Written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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