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ent Tech Assistant Job at JMC
(1) 알바 구직: 무작정 문을 두드리다
떼때족이 되기 전, 산업 디자이너를 꿈꾸던 2학년의 나는 포토샵과 같은 프로그램을 잊어버리지 않고 꾸준히 연습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 대충 훑어본 교내 아르바이트 리스트 중에서 내 눈에 띈 곳은 존스 미디어 센터 (Jones Media Center, 약자로 JMC)!
다트머스 중앙도서관 2층을 온전히 차지하는 규모의 JMC는 19,000개가 넘는 DVD와 5,500개의 비디오 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는 다트머스의 미디어 센터이다. 이곳에서는 사진, 영상과 관련된 각종 장비를 대여할 수 있으며,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다. 수업 중 영화를 봐야 하는 과제가 있을 때, 또는 영상물을 만들어서 제출해야 할 때¹, 동아리나 개인 취미를 목적으로 동영상이나 포스터, 출판물을 디자인할 때 다트머스 학생들은 이 곳을 찾는다.
바로 이 JMC에서 학생기술지원직 (Student Tech Assistant)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왔다. Student Tech Assistant 의 역할은 세 가지. (1) 영상 촬영 장비를 관리하는 것, (2) 미디어 센터에 비치된 컴퓨터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문제에 부딪히거나 질문이 있을 때 도와주는 것, 그리고 (3) 미디어 센터 곳곳에 붙여 놓을 톡톡 튀는 포스터와 미디어 센터 입구의 프론트 스크린을 위한 각종 영상물을 제작하는 것이다. 공고를 꼼꼼히 읽어본 나는 생각했다.
'포토샵, 파이널컷 같은 소프트웨어도 자주 다뤄볼 수 있고... 포스터,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디자인 감각도 필요하고... 나한테 딱이잖아?'
바쁜 수업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디자인 작업은 항상 뒷전이 되기 마련인데 돈도 벌면서 디자인 연습도 되고, 반강제로 새로운 소프트웨어 공부를 하게끔 하는 일석삼조의 기회였다. 무식하고 용감한 2학년이었던 나는 JMC에 무작정 원서를 넣었다. 드디어 면접 날! 기술지원팀 총괄인 헬무트가 물었다.
"그래서 너 다룰 줄 아는 프로그램이 포토샵 밖에 없다고?"
나는 불안했지만, 속으로 패기만이 살길이라 외치며 패기 넘치게 대답했다. "네! 하지만 금방 배워서 다른 소프트웨어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다행히 헬무트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고,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그래 좋아.. 너 막 컴퓨터에 에러가 뜨면 패닉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 시니컬한 말투와는 다른 그의 긍정적인 표정에 조금 긴장이 풀린 나는 넉살 좋게 말했다. "당연하죠. 잘 모르는 게 나와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어요!"
(2) 첫 알바 1년: 막막하디 막막하다
면접 때야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를 외쳤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어찌 그리 막막하던지! 역시나 고등학교 때 간간히 취미 삼아 배운 포토샵을 다시 시작하려니 기억이 가물가물 했고, 전혀 다룰 줄 모르던 iMovie와 Final Cut 등을 배우는 건 꽤 큰 스트레스였다. 그 뿐 아니라 초창기에 아직 잘 아는 게 없는데 학생들이 나를 붙잡고 나도 잘 모르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질문을 할 때면, 무조건 모른다고 하기에 너무 낯이 뜨거워 없는 지식을 쥐어짜다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헬무트나 그 시간에 근무하는 학생인턴 - 전년도 졸업생 중에 1명을 인턴으로 선발해 1년간 근무시키는데 이들은 보통 미디어센터에서 쓰는 편집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높다. - 을 불러오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
포스터 디자인은 또 어떤가. 학과 공부를 하다 지친 상태로 JMC에 오면 다다음주까지 만들어야 하는 포스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어떤 아이디어로 할지 그림은 그렸는데 포토샵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아이디어 자체가 떠오르지 않아서 끙끙대며 모니터만 쳐다보곤 했다. 이 포스터들은 JMC를 장식하는 효과와 함께 미디어 센터를 홍보하는 목적인데, 영화 포스터를 패러디하거나 영화에서 따온 심볼을 이용하는 등 미디어센터만의 특징을 살린 재기발랄한 디자인이 필수였다. 산업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디자인 역량을 쌓고자 한 도전이었지만, 오히려 학과 공부에 더해 이중고를 안겨준 미디어센터... 첫해는 정말 막막하고 스트레스가 많았다.
(3) 알바 2년 차: 그래도 가끔 막막할 때가 있다
JMC 알바 2년 차가 되니 좋아진 것이 있었다. 점차 미디어센터에서의 루틴 (장비들을 점검하고, 포스터나 영상물을 디자인하다 질문을 받는다) 이 익숙해졌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도 친해진 것이다. 2년 차가 되면서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기기는 했지만 가끔 헬무트가 나에게 어려운 과제 - 가령 졸업생 환송을 위한 전지 2장 크기의 거대 포스터를 디자인하라고 한다던가 - 를 던질 때는 정말 출근하기가 싫기도 했다. 다행히 그 과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포스터를 따오자는 나의 아이디어를 헬무트와 같이 발전시키고 다른 기술지원 친구들이 십시일반 도와준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4) 4학년 겨울방학 - 직원들과 인간적으로 친해지다
학생기술지원직은 보통 저녁 6시 이후에 근무하다 보니 정직원분들과 같이 일할 일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평소에 학기 중에는 정직원 분들 개개인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휴학 직전인 4학년 겨울방학에 학교에 남아 미디어 센터에서 일하면서 이 분들과 시간도 많이 보내고 더 많이 친해진 것 같다. 특히 일하는 파트가 달라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했던 짐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내가 방문객의 하드드라이브를 날려버리는 실수를 했을 때 나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이를 정말 프로페셔널하게 해결하는 JMC의 수장 앤토니를 보며 K-Pop을 좋아하는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던 그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직원분들과 인간적으로 유대하고 다음 학기에 학생들이 돌아오기전 채비(설비와 서비스를 점검하고 개선하기도 하고, 미디어 센터 마스코트인 펭귄의 옷을 바꿔 입히는 등)를 하는 여지껏 보지 못한 JMC의 이면을 보기도 한 방학이었다. 이 겨울방학이 내가 진정으로 JMC를 내 "나와바리"로 느끼게 된 계기가 아닐까. 정말 많이 발전했다. 음하하!
(5) 휴학 그 후: 가족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4학년 1학기와 겨울방학 이후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나는 불가피하게 1년 휴학을 했었는데, 다시 학교로 돌아갈 생각을 했을 때 내 마음을 든든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JMC였다. JMC는 내가 떠났던 겨울학기에 대대적인 레노베이션 공사를 했는데, 바뀐 모습을 사진으로만 봐서 빨리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마음에 복학이 설레기도 했다. 내 설렘은 꼭 레노베이션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를 지원해주고 지지해주던 JMC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1년간의 공백을 무색하게 만들어 준, 나에게 있어 다트머스 생활의 Anchor(닻)같은 존재가 JMC가 아니었나 싶다. 존스 가족이 있어 대학생활 내내 언제나 마음이 든든했다.
(7) 부록1: 내가 기억하는 존스 미디어 센터의 좋은 점
- 플라스틱으로 된 펭귄인형이 데스크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이 펭귄이 어찌 보면 미디어 센터의 마스코트인데, 계절별, 기념일별로 입고 있는 옷이나 액세서리가 바뀐다. 할로윈 때는 마녀 모자를 쓰고 있고,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산타 수염을 붙히고, 봄에는 꽃 목걸이를 두른다.
- 할로윈 패러디 포스터. 할로윈 때 공포 영화 포스터를 패러디한 포스터를 만드는데 학생 직원들의 사진을 찍어 그 얼굴을 합성해서 만든다.
- 할로윈에는 직원들이 다들 분장을 하고 온다. 3학년 할로윈 때 앤토니는 앤디 워홀로, 짐은 햄버거, 수잔은 해적으로 분장하고 근무했다. 재밌는 사람들!
- 1년에 한번 학생 직원을 위한 Thank You Potluck Party가 있다. 직원들이 한가지씩 음식을 준비해 와서 학생 직원들을 초대해 같이 먹는다.
- 시니어 환송 포스터. 4학년인 학생 직원들을 환송하기 위해 매년 4학년 학생 직원들의 얼굴이 모두 그려진 포스터를 디자인한다. 마지막 근무일 2주쯤부터 게시해두고 4학년 직원들을 환송한다.
(8) 부록2: 존스미디어센터의 사람들
헬무트 - 독일계 미국인. 기술지원팀 총괄이다. 나이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운동을 좋아해서 그런가 군살이 하나도 없다. 독일어 억양이 남아 있는 영어로 나에게 "Hey! How's it going! Good?"을 묻는 게 주특기다. 내가 자신이 없어 쭈뼛해 할 때도 못한다고 눈치 주지 않고 잘하고 있다고 항상 기운을 북돋아준 좋은 분이다. (막상 실제로는 나만 쭈뼛거리고 자신 없어했지 그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한다고 생각했는지도.)
짐 - 영상물(DVD 등) 관리팀 총괄. 일도 참 잘하시고 (4학년 겨울 방학기간에 영상물 대여를 주관하는 데스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짐이 방문객을 응대하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시는 귀여운 분이다. 우연한 기회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JMC에 한국 드라마 DVD를 대거 주문했다고 한다.
앤토니 - 너무 부드럽고 편하게 대해주셔서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미디어센터 수장이셨다. K-Pop에 관심이 많으셔서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에 대해 이야기하다 내가 한국에 다른 음악도 있다며 버스커버스커를 추천해드리기도 했다. 4학년 1학기 때 내가 구직활동 때문에 힘든 이야기를 했더니 본인 아들 이야기를 해주며 나를 격려해주신 정말 좋은 분이다.
수잔 - JMC에서 파워포인트, 포토샵, iMovie 등 멀티미디어와 관련된 다양한 워크샵을 기획하고 가르치는 분이다. 에너지가 정말 파워풀하고 화통하셔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어린 아들을 가끔 데려오시기도 하고, 3학년 할로윈 때는 해적으로 분장하고 오셔서 마침 해적으로 분장하고 일하러 갔던 나와 투샷을 찍었다.
새라 - 헬무트와 함께 기술지원을 돕는 분. 처음에는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성격이 무뚝뚝하실 뿐 일도 정말 잘하시고 아는 것도 많은 좋은 분이다.
헤이즐 - 부드러운 헤이즐!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고 정말 좋은 분이다.
¹ 영화과 수업을 듣는 경우 Black Family Art Center의 편집실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수업에서 영상 과제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편집 프로그램이 없는 학생들은 JMC를 이용해야 한다.
Written by Hye Ryung